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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지금 .. ”

“ 그쪽이 먼저 놓으시죠. ”
스윽,

“ 내가 왜 놓아야 하지 ? “
“ .. 미치겠다 진짜 ”
아침부터 이게 무슨 때 아닌 기싸움인가 .. 이 기싸움의 시작은 불과 1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1시간 전,
“ 주야 ~ 뭐해 ? “
” 과제. “
” .. 저번에도 과제 중이지 않았어 ..? “
“ 대학생의 삶은 늘 과제로 꽉 차 있다고 ”
“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 ”
“ 혼자 나가서 사 먹고 와. ”
“ .. 나 길 몰라 ”
그렇다. 최범규는 아침부터 과제 중인 내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고 혼자 사러 가기엔 길을 하나도 몰랐다. 늘 내가 사온 것만 먹었지
“ .. 여진한테 같이 가달라고 해. ”
참고로 여진은 내 남동생의 이름이다. 이름은 처음 알려주는 것 같네
“ 진이 아까 아침에 친구들 만난다고 나갔는데 .. ”
“ .. 하 “
결국 그렇게 난 최범규와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집 근처 할인 매점으로 향했다. 그래 운동 .. 아니 리프레시라고 하자.
” 얼른 골라. “
” 응 ! “
그래도 지구로 올 때 돈을 꽤 많이 들고 온 건지 막 궁핍해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아이스크림도 자주 사러 가자고 하고 늘 옷도 바뀌는 것 같고 ..
어쩌면 나보다 돈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 주 ! 초코바 먹을거지 ? “
” 응응. “
최범규랑 같이 지낸 지 이제 거의 2주가 되어가는 듯 싶다. 그 사이 최범규는 내 디저트 취향까지 파악한 것 같고
아 참, 2주 정도 되었다는 건 ..
” .. 이제 곧 “
” 응 ? “
” .. 아니야. 다 골랐어 ? “
” 아니 ! 이것만 고르고 “
” 그래 “
같이 지낸 시간이 2주가 되어간다는 건 .. 최범규가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 그때는 어서 2주가 지났으면 했는데 ..
나도 언제부턴가 정을 붙인건지 좀 많이 아쉽게 다가왔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었으니까.
” 계산도 끝 ! “
” 헐 .. 많이도 샀네 “
” 같이 먹을꺼잖아. 나랑 주랑 진이랑 어머니도 “
” .. 그치. “
정말 이렇게 들으니 가족이 된 것만 같다. 몇 년간 비어있던 아빠의 자리가 조금은 .. 채워진 것 같기도 하고
그때,
“ 아 .. 오랜만에 먹고 싶어서 왔는데 ”
“..?”
“ 그럼 그거 말고 다른 걸 먹어. ”
휙,
“ .. 거짓말 “
” 응 ? “
” 저기 쟤 .. “
스윽,

“ 아니 저기 저것도 맛있다니까 ? ”
“ 쟤 .. 최연준 맞지 ? ”
“ .. 글쎄 ? ”
“ 아냐. 맞아 .. ”
몇 년만에 만난 건지 모르겠다. 전학을 간 이후로 보질 못했으니 아마 5년은 넘은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 왠지 모르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때의 최연준이랑 너무 다르잖아 ..!!
내가 아는 최연준은 안경 쓴 감자머리였는데 ..
그때,
” 야야 .. 저기 저 여자가 너 계속 쳐다본다 “

” 응 ? “
"..!! "
최연준은 옆 친구의 말을 듣고는 내 쪽으로 돌아봤고 나를 보자마자 눈이 엄청 커졌다. 와 .. 눈 엄청 컸네
“ 여주 ..? ”
“ 어 .. 그 안녕 ”
“ 미친 .. 진짜 여주야 ? ”
“ 응 .. ”
꼬옥,
“ ..!! 이게 무슨 .. ”
갑자기 내 쪽으로 걸어와 나를 덥썩 안아버렸다. 아니 이게 무슨 대낮에 미드 같은 상황이야 ..?
“ ㅈ.. 저기 ”
“ 보고 싶었어. 주야 ”
“..?! ”
스윽,
” 진짜 오랫동안 찾았는데 .. 이제야 만났네 ”
“ 찾았다고 ..? ”
“ 그때 그렇게 전학 가고 나서 연락 할 방법을 찾았거든 ”
“ 그런데 ? ”
“ 너희 집 전화번호를 몰라서 .. 연락 못했지 ”
“ 그랬구나. ”
“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 ”
“..?”
“ 같이 커피 마시면서 얘기할래 ? ”
“ 아냐. 옆에 친구 분은 .. “
” 쟨 그냥 가라고 하면 돼 “
” 어 ..? “
” 그러니까 나랑 한 번만 커피 마시자 “
” 아 .. “
그때,
꼬옥,
” ..? 범규 ? “
” 아이스크림 녹겠다. 얼른 가자 “
” 아 그렇네 “
” .. 누군지는 몰라도 나중에 따로 얘기하세요. “
그 한 마디를 던지고 최범규는 내 팔을 잡고 무작정 밖으로 끌었다. 아니 얘가 갑자기 왜 이래 ..?
그때,
탁,
"..!! "
” 뭡니까. “
” .. 돌아가려는 거 안 보입니까. “
” 누가 그거 물었습니까 ? “
” 죄송하네요. 제가 여기 사람이 아니라서 “
” .. 아무튼 제가 먼저니까 팔 놓으세요 “
”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 “
” 뭐요 ? “
” .. 이게 무슨 “
다시 현재,

” 아무리 외국에서 왔다고 해도 이런 건 문화차이라고 보기 어렵네. 그냥 예의가 없는 것 같은데 “

” 난 외국에서 왔다고 한 적 없는데 그리고 감히 내 앞에서 예의를 논해 ? “
” 뭐요 ? “
” 한낮 백성 주제에 감히 왕자..ㅇ “
탁,
” 하하 .. 무슨 소릴 하는거야. 사극을 너무 많이 봤다 “
” ㅁ.. 므흐는그느 “
” 닥쳐 .. 넌 집에 가서 죽었어 “
” 집 ..? “
” 아 그 사실 여기는 우리 집 하숙생이야. 나랑 같은 대학이고 ..! “
” 뭐야. 그럼 외국에서 온 거 맞나보네 “
” 내가 나중에 따로 연락할게 ..! 그때 마시자 “
” 지금은 안되는 거야 ..? ”
“ 그 .. 과제 하던 중에 잠깐 나온거라서 ”
“ 그럼 어쩔 수 없네 .. ”
“ 전화번호 ..! 줄래 ? ”
“ 그래그래. 아 그 전에 “
"..?"
스윽,
” ..!! 이거 ”
“ 전학 가던 날에 주려고 했다가 못 준 건데 어떻게 딱 오늘 들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
” 진짜야 ..? “
” 어 ..? “
” 이거 .. 네가 나한테 줬었던 거야 ..? “
“ 당연하지. ”
“ 뭐 ..? ”
“ 어릴 때 기억 안 나 ? 내가 .. ”
“ … “

“ 너 기분 풀어준다고 내가 그때 네가 좋아하는 핑크색 보석 줬잖아. ”
“ ..!! 그게 너였다고 ..? ”
“..?!!”
최연준이 내게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어릴 때 내가 그 아이에게 받았던 분홍색 보석이었고 난 너무 놀라 최연준만 빤히 쳐다보았다.
그 이후, 정신 없이 전화번호를 교환한 후 난 빠르게 최범규를 끌고 할인매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이게 진짜 대체 무슨 일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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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 ”
“ 그 보석 때문에 그러는 거야 ? ”
“ .. 응. 진짜 꽤 오래 찾고 있었거든 ”
“ 뭐 ..? ”
“ 걔랑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쭉 .. ”
생각해보니 최연준도 말 없이 갑자기 전학을 가버렸지. 근데 뭔가 좀 이상한데 .. 분명 그 아이가 최연준이라면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최연준과의 기억으로 떠올라야 하는데
난 왜 자꾸 다른 사람으로 생각이 나는 걸까 ..
“ .. 아주 빠졌네 ”
“ 뭐 ..? ”
“ 지금 쭉 최연준 생각 했잖아. ”
“ 최연준 생각이 아니라 ..! 아니 그것보다 ”
“ … “
” 너. 네가 다른 별에서 온 걸 말해버리면 어떡해 ? “
” .. 안될 이유라도 있어 ? “
” 뭐 ..? “
쟤 말투가 왜 저렇게 딱딱해졌지 ..? 아까 최연준에게 쓰던 말투를 왜 나한테까지 쓰고 있는 거냐고.
그리고 왜 저렇게 당당해 ..? 걱정이 없나 ?
순간 느껴지는 차가움에 나 또한 빠르게 식어갔다. 아니 정확히는 꽁꽁 얼어붙어갔다.
” 내가 최연준한테 어디서 왔는지 말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냐고. “
” 아니 ..! 걔한테 말했다가 네가 무슨 짓을 당할 지 어떻게 알아 “
” .. 차라리 또 내가 무슨 짓을 당하는 게 더 나아 “
“ 또 ..? “

” 넌 .. 걔를 믿고 있으니까 모르겠지. “
” .. 알아 듣게 말해. 아까부터 이상한 말만 하고 .. ”
“ 이상한 말 ? 넌 아까부터 내 말들이 다 이상하게 들렸던거야 ? “
“ 그야 당연히 ..! ”
네가 자꾸만 내 복잡한 그 기억들을 하나 둘 씩 건들이니까. 간신히 정리해놓은 것들도 전부 다 뒤섞어버리니까. 난 그게 싫은데 ..
그 아이를 기억하고 싶단 말이야.
“ 넌 대체 아까부터 뭐가 불만이길래 이렇게 화가 난거야 ? “
” .. 내가 화가 난 건 네가 아니야. “
” 그럼 뭔데 ? 나한테 화난 것도 아니면서 왜 나한테 .. “
” … “
” 말 해봐. 뭐냐고 대체 “
” .. 2주 뒤에 나갈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 “
” 뭐 ? “
2주 뒤에 나갈 사람이라고 ..? 쟨 그게 그냥 저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건가 ..? 하나도 아쉽지 않은 거냐고
아니 어쩌면 보내기 싫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못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말을 하는 내내 울컥함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저런 말투를 처음 들어봐서 그런건지 아니면 .. 내게 짓고 있는 지금 저 표정이 날 아프게 해서인지
” .. 2주 뒤에 넌 그냥 나가면 끝이란 거야 ? “
” 아니 .. 그게 아니라 “
” 넌 그냥 2주 뒤에 나가면 끝일 순 있겠지만 나는 .. “
” … “
” 나는 또 한 번 그 빈자리를 견뎌야 하는데 .. “
주르륵,
“ 주야 .. ”
결국 참고 참던 울음이 오랜 시간 날 괴롭혀온 고통과 그 불안함에 터지고 말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쭉 날 괴롭혀오던 그 공백이 다시금 채워진 지금, 그 공백이 다시 내 마음 속에 구멍을 낼거란 불안감. 정확히 그것이었다.
“ 네가 들어왔잖아 .. 겨우 메꿨단 말이야 .. “
“ … “
” 네가 .. 내가 싫다는데도 들어왔잖아 .. “
” … ”
“ 그 빈자리를 또 어떻게 견뎌 .. 또 ”
“ .. 주야. ”
결국 난 못된 말을, 내가 범규에게 할 수 있는 아주 모진 말을 내뱉었다.
“ .. 최범규 너 진짜 ”
“ … ”
“ 미워. ”
“..!!”
알고 있다. 이 말은 최범규가 가장 상처 받는 말이라는 것을 하지만 .. 이 못된 생각은 이미 마음을 앞질러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마치 그때처럼
내가 그 아이를 우리 집에서 한 번 쫒아냈을 때처럼
“ .. 미안해. ”
“ … ”
“ 그냥 .. 오늘 바로 나갈게. ”
“ .. 네 맘대로 해. ”
“ .. 응. ”
그렇게 최범규는 내 방을 나갔고 난 그대로 울다 지쳐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처음으로 범규와 내 사이에 아주 긴 공백이 생겼다.
다음날,
“ .. 정말 갔나 ”
아침을 먹으려 내려가니 최범규는 없었고 전처럼 동생과 엄마만 있었다. 정말 이렇게 바로 갔다고 ..?
“ 야. 진아 최범규 말이야. 어제 나갔어 ? ”
“ 최범규가 누군데 ? ”
“ 뭐 ..? ”
“ 최범규가 누구냐고. “
“..!!”
생각보다 그 아이는 내게 큰 공백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어쩌면 아빠보다도 더 클, 내가 도저히 메꿀 수 없는 공백을 말이다.
나의 우주는 그날 그렇게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