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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저 니가 싫어
괜한 오해를 한다고 생각하진 마라.
전가 담당 약사에게 물어봐 알게 되었어."
"..."
"백번 양보하여 너도 어쩔 수 없었을 거라 믿는다.
아니라고 말해.
실수 였다고 말해."
한편으론 권순영이
나처럼, 전원우 처럼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손에 이끌린 행동이라고 믿고 싶었지.
우리 셋은 계속 친구일 것이라고
믿고 싶었지.

"미안하게 됐다.
너한테도, 전원우한테도."
그 믿음이 헛됐다는 것을 알아차리기엔
얼마 걸리지 않았지.
"겨우 이것 밖에 안되는 아이였구나."
"피부터 더러운 자가
어떻게 깨끗할 수 있겠어 정한아.
맞아 전원우에게 독이 든 담금 주를 보낸 거 나야.
아버지의 지시도 아니고
내가 자초한 일이야."

"뭐..?"
"난 너희와의 우정 보단
가족에게 받을 사랑에 더 목이 말라 있어.
우리 가문에 해가 된 전가의 유일한 핏줄인 전원우를
어떻게 살려 두겠냐."
"망나니 같은 놈..."
"어쩌면 전원우도 그걸 원하는 것 같은데."
"뭐?"
"내가 이렇게 전원우 자신에게서 등 돌린 것 처럼
너 또한 등 돌리길 바라는 거야.
우린 예전 처럼 철없이 웃고 떠들 수 없어."
"...아니야"
"전원우의 방황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희 집안도 전가와 그닥 돈독 하진 않은 걸로 아는데.
너희 아버지가 전원우가
아닌 나를 선택했던 이유잖아."
"...이렇게 말하는 니가 정말
독하다고 생각하는 게야?"
내가 자기를 어떻게 할 줄 알고
모든걸 털어 놓은 권순영이었다.
전원우를 죽이려 마음 먹었을 그 아이가
그러는 이유가 없었을 테지.
"... 나를 너무 잘 아네 윤정한 ㅋㅋ"
"?!"
내 마지막 발버둥과도 같았던 말에
반응한 권순영.
그 아이는 그만큼 독해지기엔
우정에도 목마른 아이였다.
순영은 절벽 위로 달려가 위태롭게 섰다.
"뭐..뭐하는 거야 권순영!"

"난 네 말대로 우리 아버지에게 복종할 만큼,
가족에게 사랑받을 만큼,
원우를... 죽일 만큼 독하지가 않다 정한아."
"뭐..?"
"너라면 그 독극물이 원우에게 가기 전에
찾아 막아낼 줄 알았어 ㅋㅋ
내가 정말 아버지의 노예였다면...
이 더러운 피에 복종 했다면
우리 집안에서 보낸 선물이라 말하진 않았겠지."
"아..알겠으니까 일단 내려와 권순영!
너무 위험해...!"
"여기 정말 좋아하는 곳이었는데
마지막도 여기여서 다행이야!"
"권순..영..."
"양반이면 뭐해.
너희와의 관계를 마음 놓고 우정이라 칭할 수 없는데.
차라리 천놈이었으면 편했을까?
전가를 용서한 건 아니지만
원우가 허무하게 죽지 않게 니가 잘 지켜~
너는 나처럼 독해지려 애쓰다
이런 비극을 맞진 않았으면 좋겠다 정한아 ㅋㅋ

잘 지내."
순영은 절벽쪽으로 몸을 눕혔다.
그리고 끝내 저 밑 바닥에 순영이 떨어지는 소리가
숲 속에 크게 울렸다.
권순영은 그렇게 자신을 비롯한 모두에게
원망만을 안은 채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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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영은 죽음을
섣부르게 선택 한 것이 아니었다.
유서까지 써 놓고 간 권순영이었다.
그 유서를 읽은 권가는 이 마을을 떠났다.
유서에 권순영이 어떤 말을 써 놨는지
나는 모른다.
아마 권가에 대한 비판이었을 테지.
전원우는 권순영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은 듯 했으나
티를 내지 않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최승철, 이찬
줄줄이 전원우의 곁을 떠났다.
이찬의 마지막은
나 또한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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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 나는 아침에 방문했던
전원우의 집을 들렀다.

"아무도 없느냐?"
이상하게도 대문은 열려있고
밤중에도 지켜야할 마당엔 그 누구도 없었지.
"다 어디간 거야.."
나는 전원우의 방으로 향했다.
전원우의 방이 가까워지자
요상한 소리가 들리더군.
방에 가까워 졌고,
다시는 듣지 못할 줄 알았던
전원우의 울음 소리를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