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은 그날 이후로 순을 제대로 마주 보지 못했다.
순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좋은데?
담담했다. 너무 담담해서 농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더 믿기 어려웠다. 정말로 훈을 좋아해서 고백을 받아준 건지, 아니면 그냥 흥미가 생겨서인지.
- 야
뒤에서 들리는 순의 목소리에 훈은 흠칫했다.
교실 문 앞, 친구들 사이에 섞여 서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혼자 집에 가는 훈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 응, 어… 왜?..
- 같이 가.
덧붙이는 말 없이 본론만 말했다.
훈은 잠깐 망설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사귀는 사이라고 챙겨주는 건가? 순의 친구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순의 옆에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둘은 말없이 복도를 걸었다.
훈은 어색함에 손에 쥔 가방끈만 괜히 만지작거렸다.

- 그… 우리 사귄다고 한거…
결국 입을 연 건 훈이었다.
- 후회 안 해?
순은 잠시 걸음을 늦췄다. 그리고 훈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훈은 괜히 심장이 빨라졌다.
- 왜? 후회했으면 좋겠어?
- 아니! 아니 그건 아닌데…
순은 씨익 입꼬리를 들어 웃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웃음이었다.
- 괜찮아.
훈은 안도하면서도 심장이 시려왔다. 괜찮다고? 좋다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 내가 괜히 의미부여 하는건가…
그날부터 둘은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됐다.
적어도 겉으로는.
훈은 순이 좋아서 뭐든 조심스러웠다.
연락 하나 보내는 것도, 학교에서 말 한마디 거는 것도. 혹여 내 연락을 귀찮아하진 않을까, 친구들에게 나를 보이는게 창피하진 않을까.
반대로 순은 훈에게 먼저 연락하지도 않았고, 학교에서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 너랑 걔 진짜 사귀는 거 맞아?
순은 어깨를 으쓱했다.
- 어? 맞지ㅋㅋ
- 아는 척도 안하고 뭘 그러냐
- 내가 얘기 안했나? 갖고 놀다 버린다고.
순은 그렇게 말하며 훈을 힐끔 봤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애들 눈치만 보며 서 있는 모습. 순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진짜 순진하네.
훈은 몰랐다.
자기가 좋아하는 마음이 얼마나 투명한지.
그리고 그 투명함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쉬운 대상이 되는지.
그날 집에서 훈은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다.
순에게서 연락이 올까 봐. 사귀고 난 후부터 매일 그랬다. 하지만 그 어떤 메세지 하나도 오지 않았다.
혹시 내 전화번호 저장을 안했나? 전화번호를 준 날에 내가 잘못 알려준건가. 전화번호 교환한 건 확실할텐데.
띠링.
초조해하던 와중 알림음이 울렸다. 늘 흔하게 듣던 알림음이었는데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 했다.
[순]
지금 바빠?
고작 네 글자였지만 훈은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순]
지금 바빠?
답이 늦네. 무시하는거야?
아, 너무 들뜬 나머지 답장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짧고 간단한 대꾸 한 마디면 되지만 그 한 글자라도 신중히 보내기 위해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순]
지금 바빠?
답이 늦네. 무시하는거야?
[훈]
미안해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나 지금 안바빠!
[순]
너 숙제했지?
한번만 찍어서 보내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