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좋아한 잘못 (bl)

02. 기대


훈은 잠깐 화면을 내려다봤다.

숙제. 그 단어 하나에 마음이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아, 이래서 연락한 거구나.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털어냈다.

그래도 연락한 게 어디야, 나를 먼저 생각했다는 거잖아.


훈은 책상 위에 펼쳐둔 노트를 급하게 정리했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낙서 자국을 깔끔하게 지웠다.


[훈]

응! 했어

잠깐만


훈은 애써 침착하고 밝게 대답하려 노력했다.


사진을 찍기 전 괜히 숙제를 한 번 더 훑어봤다.

틀린 건 없을까, 글씨가 너무 못 쓰진 않았을까,

순이 보고 비웃진 않을까.


[훈]

이거야!


몇 초 뒤, 바로 답장이 왔다.


[순]

땡큐 ㅎㅎ


땡큐

끝이었다.


훈은 화면을 보며 가만히 기다렸다.

혹시 이어서 뭐라도 오지 않을까 했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괜히 손바닥에 땀이 찼다.

이대로 대화를 끝내는 게 맞는지,

아니면 먼저 더 말을 걸어야 하는지.


훈은 용기를 내 폰 화면을 두드렸다.


[훈]

순아

오늘 학교에서 말 못걸어서 미안해 


보내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괜히 부담 되는 건 아닐까?

나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답장은 아까보다 늦게 왔다.


[순]

왜 미안해

그냥 그러는 거지 뭐


그냥 그런 거.


훈은 마음이 싱숭생숭 해졌다.

그래도 대화가 이어지는 게 좋아서 다시 물었다.


[훈]

우리 내일은 집에 같이 갈래?


용기내어 보낸 메세지 옆 1은 야속하게도 금방 없어지지 않았다. 훈은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하고 손에 쥐고 있었다.


띠링


[순]

내일?

 봐서 ㅋㅋ


'봐서'

그 단어가 훈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확실하지 않은 대답

기대하지 말라는 듯한 말투


그래도 훈은 밝게 답했다.


[훈]

응 알겠어!


순은 그 뒤로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다음 날, 훈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괜히 교실 앞을 서성이면서

순이 눈에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곧 수업 시작인데 순은 오지 않았다. 늘 그러는 애였지만 오늘은 괜히 신경쓰였다.

창 밖에서 저 멀리 학주쌤께 잡힌 장난끼 섞인 얼굴을 발견했다.

역시나 친구들 사이에 껴있었다.


교실로 들어온 순을 보고도 담임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벌점만이 계속 쌓여갈 뿐이었다.

순은 교실에 들어와 훈을 아는 체 하지도 않았다.

마치 어제 밤의 대화가 없었던 것처럼.


훈은 얼굴이 굳었다.

손에 쥔 샤프를 꼭 쥐었다.


그래도…

사귀는 사이는 맞겠지.


훈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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