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두 분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엄청 내향적이거나 엄청 외향적이거나 딱 둘. 근데 그 둘이 한 배를 갈라 나왔다면, 둘은 아마 서로에게 의지할 것 이다.
“자, 다음 김여주가 읽어봐“

“내향인의 피가 솟아오른다면 멘델라가 당신을 찾아가 진실의 키스를 전달할 것이오. 외향인의 피가 솟아오른다면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 세상의 빛을 모두 차단할지니..”
국어시간은 내가 가장 안 좋아하는 시간이다. 파도타기마냥 국어지문을 읽고 소통해야하는 수업은 나같이 조용한 사람에겐 전혀 맞지 않는 수업이다.
“2인숙제를 내주려고 하는데 우리반이 홀수라 1명은 혼자하게 될 것 같아. 누가 혼자 할래?“
누군가 손을 번쩍들어 나에게 손가락 끝을 조준하더니 내 이름을 외쳤다. 다른 이들은 비웃었고 나는 눈동자만 굴려댔다.
”김여주요. 쟤 어차피 친구 없어서 혼자 해야해요“
내가 이 학교에서 살아남는 법은 어떤 불리한 상황이
와도 그냥 마주하는것이다. 피하지 않고 그냥 당하고 있는게 시끄러워지지 않는다.
나 김여주의 생존 전략
‘눈 마주치면 패배’
절대 복도를 지나다닐 때, 다른 누구랑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혹여 말을 해야할 상황이더라도 다른 이들의
눈은 절대로 마주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면 진다.
”야 김여주, 사람이 말을 하면 눈을 봐야지?“
“시X 벙어리냐?”
‘말하면 존재 인증‘
내가 입을 열면 내 존재를 인증해버린다. 최대한 조용히 지내는게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제이다.
“아까 발표는 잘만 말하더만, 왜 자꾸 내 말에 답을 안 하지? 여주야? 무시하냐?”
“…”
내향인은 멘델라가 찾아와 진실의 키스를 전달해준다던데, 나의 멘델라 왕자는 어디에 있을까, 멘델라는 구원의 존재가 아니다.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날 구해주는 왕자가 아니라 나를 나대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이다.

담임이 들어와 교탁 앞에서 문쪽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더니 멀쩡하게 생긴 남자애가 가방을 가지런히 매고 조심스럽게 들어와 담임 옆에 머리를 긁적이며 섰다.
“오늘은 전학생이 왔다. 자기소개하고 빈자리에 들어가 앉아라.”

“잘 부탁해. 난 김석진이야”
석진은 이리저리 빈자리를 찾더니 창가끝 쪽에 앉아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빈자리라고 해도 내 옆자리밖에
없었으니 난 얼른 눈을 피해 창가를 바라보았다.

“안녕, 나 여기 앉아도 될까?”
언제 온건지 그의 얼굴은 내 바로 앞에 나타나있었다. 너무 놀랐지만 눈만 댕그르르 구르며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예쁜 얼굴에 오똑한 코, 앵두같은 입술이 자꾸만 내 눈에 그려졌다. 옆을 힐끔 힐끔 보며 그를 의식했다.
“전 수업이 국어 시간이였나보네”
“…”
“멘델라 왕자라..참 신기해. 내향인은 자신의 키스를 피할 것이고 외향인이 키스를 받아줄 것 같은데, 내향인이 키스를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는건가..“
“…”
그러고도 한 10분을 같은 주제로 떠든 것 같다. 난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는 한결같이 내 옆에서 조잘거리기만 했다. 앞으로 무엇이 내 학교생활을 변하게 할지 위험요소가 생겨 걱정스러웠지만, 왠지 모를 설레임이 그를 의식하게만 했다.
.
.
.
태형 시점
“그니까 둘이 그꼬라지가 된게 다 어제 있던 국통사건이라는거지? 반장 너는 가 봐.”
“네 안녕히 계세요”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다. 저 새X가 날 빡치게 한다, 참아도 욕먹을 거 선빵을 날린다, 문제아 이미지+1

“담임쌤? 먼저 제 손이 날아가게 한 건 저 자식이라니까요?”
“너 말 잘한다. 먼저 때렸단거지? 도대체 언제 철 들려고 그러는거야?”
어제 있던 사건은 반장 책상 위에서 개 지X떠는거에서 끝났지만 오늘 사건은 등교 후에 일어났다. 반장은 자신의 책상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내가 앉아있던 책상을 발로 차고는 내 아침잠을 불편하게 했다.
쾅-
“야 시X 어제 제대로 닦으랬지? 냄새 존X 나잖아?”

“너 시X 분명 어제 아가리 하라고 했을텐데“
퍽-
오늘 내 불쾌지수가 하나 올랐다. 내 학교 생활에서는 누나처럼 인내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학교생활 생존법은
존X 간단하다.
나 김태형의 생존 전략
‘어차피 욕먹을거 선빵‘
싸움을 먼저 걸진 않지만 싸움이 걸려온다면 대부분 불만이 있거나 그거 아니면 이유없는 시비일텐데 입 열기 전에 주먹으로 먼저 상대의 심기를 건들여준다.
“야야 김태형 뭐하는거야”
모두가 수근거리며 반장을 일으켜세운다. 반장은 자신의
입가를 닦으며 날카롭게 날 바라본다.

“그래 이제야 좀 조용하네”
드르르륵-
“김태형 나와.”
담임의 호출에 난 자리를 벅차며 교실을 나왔다. 그렇게된 사건인데 이걸 내 책임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난 절대적으로 피해자다. 반성문으로 마무리하고 교무실을 나와 복도 옆 벽에는 학교폭력예방포스터가 붙어있다.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됩니다.‘
난 잠깐 멈춰 서서 포스터를 응시했다.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된다는 건 다 아는데, 이미 다쳐버린 상처는 누가 치유할 것일까.. 항상 이런 포스터들은 가해자의 행동을 논한다. 정작 피해자의 다친 마음을 치유하거나 들여다보는 메세지는 볼 수 없다. 난 펜으로 아래에 덧붙여 글을 적었다.
‘그래서 난 말 안 함’
딱 여기까지였으면 내가 하루에 두 번 교무실을 불려가지
않는다. 그랬을텐데 난 옆에 내 사인까지 해줬다.
‘그래서 난 말 안 함’
2학년 3반 김태형

“이거..이거 우리 김태형군이 그랬을까? 금상받은 이 포스터에 예쁘게 사인까지 해준 이거..?“
”저 맞는데요“
”왜 썼어?“
”포스터가 질문하는 것 같아서요“
”뭘?“
”왜 상처받냐고요. 왜 말이 상처받는지는 안 묻잖아요. 그래서 제가 대신 물어보는거예요.“
잠깐의 정적으로 선생님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날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지만 난 그 마음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너는…진짜…”

“문제아죠"
.
.
.

“김태형, 너 오늘 포스터에 낙서했다고 소문 짱짱하던데 좀 조용히 좀 살면 안 돼?

“누난 좀 살아있는 티를 내면 안 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