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왕따가 산다

03 고양이는 담벼락을 오르기 전 가장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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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몽롱한 꿈이였다. 내 졸업식엔 친구들이 날 보며 웃어줬고 내 오랜 벗이 생겨 웃고 떠드는 내 사진을 한 장 한 장 마음을 담아 찍어주는 그 예쁜 꿈을 꾸었다.

순간 그늘이 져 눈을 찌푸리며 얕게 떴다. 내 앞에는 내 얼굴만한 손이 내 얼굴을 덮고 있었다. 손을 따라 눈을 따라가니 그 끝엔 석진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햇살이 괴롭히길래“

석진의 얼굴은 충분히 붉어져있었다. 손은 점점 떨어져갔고 자신의 애꿎은 머리만 만져댔다.

”이동수업인데 안 가?“

"…"

난 말없이 시간표를 바라봤다. 다음 수업은 체육수업이였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사물함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열리지 않는 자물쇠만 바라보고 있으니 석진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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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체육복 안 가져왔구나? 나돈데. 같이 혼나지 뭐“

석진의 살짝 열려있는 가방을 보니 체육복 손무세가 사이로 보였다. 난 모른척 교실을 나가 체육관으로 향했다.

“근데 넌 말이 없는데 되게 안정적이고 좋다.“

석진의 그 말 한마디에 괜히 얼굴이 붉어졌지만 금세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뭐야, 애..? 고장났나?“)

체육관으로 향하니 이미 출석은 다 부르고 준비운동 중이였다. 이 학교 선생님들은 출석도 안 한 사람은 학생취급도 안 해주는 듯 했지만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 석진이가 어디 아픈가? 출석을 안 했네?“

석진의 이름만 불러댔다. 난 조용히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무리 끝에 들어가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운동장인 줄 알고 운동장으로 갔네요“

”뭐야 김석진, 넌 전학 오자 마자 체육복도 안 입고?“

”깜빡하고 집에 두고와서요 죄송합니다“


석진의 꾸중듣는 일로 내 출석과 체육복사건은 모른척 지나갔다. 이거 이후로도 석진은 내 옆에서 계속 조잘거리기만 했다. 학교가 끝나고 가방을 싸는데 석진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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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생 많았어.“

석진은 그 말을 뒤로 교실을 나갔다. 나도 뒤따라 나가려는데 이번엔 다른 여자애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김여주, 너 쓰레기장으로 좀 따라와라“

”존X 시X 우리가 뭐 너 죽이냐? 표정 좀 풀고? 응? 이왕이면 눈도 좀 마주치도 병X아ㅋㅋㅋ“

참 많은 일들이 스쳤지만 날 따로 부르는 일은 없었다. 화장실 문을 대걸레로 잠구는둥, 내 사물함을 망가트리는 둥 그런 일은 많이 겪었지만 대놓고 날 불러내는 일은 없었다. 난 그들의 뒤를 따라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여주야, 너 진짜 벙어리야?ㅋㅋㅋ”

“이딴 X이 어디가 좋다고 석진이는 너 뒷꽁무늬만 쫒아?”

딸랑-
그들의 손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다름아닌 열쇠였다. 그 열쇠를 내 눈앞에 가져다대더니 입을 열었다.

“이거 니 사물함 열쇠인데? 가지고 싶지?”

“주세요~해봐”
“…”
“주세요 해보라니까?”
“…”
“썅X이 박박 개기네?”

탁-
그들은 그 열쇠를 쓰레기장 뒤로 던졌다. 

“여주야, 니가 아가리 안 열면 몸으로 떼워야지?”

“내일 냄새 존X 나겠당..더러워 ㅋㅋ”

그 말을 끝으로 쓰레기장을 나갔다. 난 그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쓰레기더미로 몸을 던졌다. 그렇게 1시간 2시간 쓰레기더미를 헝크려 열쇠를 결국 찾아냈다.

“찾았다.”

.
.
.
태형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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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누나네? 옆엔 친구들인가? 엥? 쟤 친구도 있어?”

난 다 예상하겠지만 친구가 있어본 적이 없다. 친구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어떻게 노는지 아예 모르지만 친구들끼리
하지 않을 짓거리는 안다. 그걸 누나가 당하고 있다.

“여주야, 니가 아가리 안 열면 몸으로 떼워야지?”

“내일 냄새 존X 나겠당..더러워 ㅋㅋ”

“…”

가방을 떨궜다. 심장박동 수는 점점 빨라져만 갔고 뭔지 모를 화가 자꾸만 내 머리를 데우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쏘아질 총마냥 달궈져있었다. 그때 언젠가 누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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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남매란 사실은 절대 들키면 안 돼. 너도 알잖아. 나 왕따인거. 너 우리학교 대표 문제아고, 나 우리학교 대표 벙어리 왕따인데 남매인것까지 알려지면 조롱거리만 만들어지는거야. 그니까 모른척 해. 나 더 힘들어져.
알았지?”

그 누나의 부탁이 떠올랐다. 누나의 간절함이 내 발목을 붙잡았고 내 애꿎은 손주먹만 더 궂게 붉어졌다. 난 다급히 교무실로 달려가 교무실 앞에 자리를 잡고 손을 들고는 무릎을 꿇었다.

드르륵-

“너 또 뭐 잘 못했냐? 왜 그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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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했어요. 곧 할 예정.”

“내가 몇 십년을 이 학교에서 일했지만 너 처럼 미리 벌서는 애는 또 처음이다. 얼른 집이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