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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쓰레기
오늘은 내가 연애를 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남친과의 데이트로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씻고 거울 앞에 앉아서 화장을 하고있었다.
시선이 느껴져 옆을 힐끔 쳐다보니 원우가 문에 기대어 날 아니꼽게 쳐다보고 있었다. 화장을 하는 중간중간에 시비를 걸어오는 원우였지만 오늘은 너무나도 기쁜 날이라 그런지 내게 시도때도 없이 시비를 걸어오는 원우가 귀엽게 보였다. 궁시렁거리는 원우를 방 밖으로 내보내고 어제 밤 미리 골라놓은 옷을 갈아입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1시쯤 방 밖으로 나와 구두를 신고있었다.

" 뭐야? 너 오늘 어디 가? "
" 응! 데이트!! "

" 얘 오늘 3주년이래. 나랑 놀기로 했으면서. "
" 원우, 기분 풀어~ 갔다와서 놀아줄게. "
" 치. " 원우

" 오늘 예쁘네? 뭔 중요한 날이야? "
" 지수형 뒷북 오지네. 얘 오늘 남친이랑 3주년이래. " 원우
" 아, 그래? 아영아 잘 다녀와. " 지수
" 웅!! 너네 사고치지 말고있어!! "
" 사고는 김민규가 치는거고. " 원우

" 뭐? 형!! "
아직도 궁시렁 대는 원우가 귀여워서 머리를 가볍게 쓰담아주니 이제서야 조용해 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 밖으로 나왔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약속장소로 나갔다.
***
버스로 두 정거장이 지나야 나오는 카페가 약속장소였다. 아직 안 온건지 약속장소에 보이지 않았다. 먼저 카페로 들어와 커피를 시킨 뒤 자리를 잡았다.
정말 이렇게 예쁘게 꾸민건 작년 2주년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설레고 오늘이 정말 기대되었다. 내가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오고 얼마 후 카페 문이 열리더니 남친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반가워서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려고 했는데, 남친의 뒤로 어려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카페에 들어온 남친과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선 나를 향해 다가왔다.
' 백아영. '
" 이쪽은 누구셔..? 여동생? 친척..? "
' 나 여동생이랑 친척 없는거 알잖아. '
' 모르는 척 하지 마. '
" 그럼 뭔데..? 설마... "
' 응. 나 얘랑 연애해. '
' 오늘 나온건, 너 차려고 나온거야. '
" 미친놈. "
' 우리 오빠랑 헤어져주실래요? '
" … 너 오늘이 우리 3주년인건 알고 있긴 한거야? "
' 알아. 그래서 너 힘주고 나온거잖아. '
" 근데 왜 이렇게 당당해..? "
눈시울이 붉어져서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3년이나 사귄 남자친구가 지금 내 앞에 다른 여자와 팔짱을 끼고 당연하단듯이 나를 차고있다. 물이나 음료수를 붓는건 다 드라마에서나 하는 줄 았았는데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들고있던 커피를 남친에게 냅다 부었다. 아니, 남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쓰레기였다.
재활용도 안되는 그런 쓰레기.
' 야!! 백아영!!! '
' 오빠!! '
" 기다리다가 다 식어서 데이진 않았을거야. "
" 그리고 앞으로 내 눈에 띄지마. "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너가 내 전부였던적도 있었는데...
***
그 카페에서 도망치 듯 나온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계속 울었다. 끊임없이 울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지 신경도 안쓰고 엄청 울어댔다.
이 상태로 집 안으로 들어가면 아침에 너무 설레었던 내가 너무 쪽팔릴 것 같았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서 그치지 않는 눈물을 계속해서 흘렸다.
혼자서 울고있기가 너무나 외롭고 쪽팔려서 집에있는 나와 알고지낸지 가장 오래 된 여우에게 전화를 걸어 나오라고 했다. 전화를 한 지 몇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내 앞엔 숨을 헐떡이며 서있는 권순영이 있었다.

" 헉.,, 헉,, 야,, 너 왜, 울고있어. 오늘 너 남친이랑 3주년이라 약속있던거 아니었어?? "
" 권수녕… 흐으,, "
" ... "
" 그 새끼랑 뭔 일 있었구나."
" 일어나, 집 가자. "
" 끕, 안가. 못가,.. "
" 그럼 그만 울어. "
" 킁,, 술먹자... "

" 너 술 싫어하잖아. "
" 그치마안… "
***
순영이와 포장마차로 왔다. 시간이 지나 눈물은 저절로 그쳐졌지만 너무나 분하고 슬퍼서 누군가가 날 툭하고 건들이면 다시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와 순영이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소주 두 병을 시키고 앞에있는 안주와 같이 계속계속 먹기시작했다. 순영이는 술을 먹지 않고 턱을 괸 채 날 쳐다보기만 하였다. 내 말에 맞장구도 쳐주면서.
" 그, 개새끼 바, 끅, 바람났어... "
" 나쁜새끼네, 그 새끼. "
" 응.. 개새끼야... "

" 이 소리 들으면 김민규 울겠다. "
" 우,리 민규 울면 안돼.. 끅, "
빠르게 소주 두 병을 비운 나는 주량을 넘어 취해버렸다.
순영이는 계산을 하고 내 허리에 자신의 겉옷을 묶고 나를 업은 상태로 포장마차에서 나왔다.
***
순영이가 날 공원 벤치에 앉히더니 시선을 마추었다. 꿈뻑꿈뻑 권순영의 눈만을 바라보았다. 순영이는 아무말 없이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내 머리에 손을 올려놓고 말했다.

" 상처받지 마. "
***
집에 들어오자 애들이 놀란 표정으로 순영이 등에 엎혀있는 날 쳐다보았다. 정한이는 아무말 없이 순영이 등에 있는 날, 옮겨 받고 공주님 안기로 내 방까지 데려다주었다. 정한이가 날 침대에 눕혀주고선 나가려 할 때 못 나가게 내가 정한이의 손을 잡았다.

" ... 울었어? "
" 헤어졌어.. "
" 그럴 것 같았어... 나쁜놈이다, 그치."
" 정한이... 나 헤어진 이유 알아..? "
" 아니, 모르지. "
" 근데 어떻게 걔가 나쁜 놈이라는 걸 알아..? "
" 너가 잘못하진 않았을거 아니야. 무조건 걔가 나쁜 놈이고 쓰레기야. "
" 푸흐- 그게 뭐야. "

" … 그니까 울지말고. "
" ... "
" 나 나갈게. 쉬어. "
정한이가 문을 닫았다. 어둠이 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울음소리가 방 밖으로, 애들 귀에 안들리게 끅,끅, 거리며 울음을 참고있었다.
이불 안에서 무언가가 꼼지락 거렸다. 온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 야 - 옹."
" 원우...구나. "
어느새 사람으로 변한 원우가 날 꼬옥, 안아주고있었다. 난 원우의 품 속에서 계속 끅,끅, 거릴 뿐이었다.
원우가 내 눈 밑을 쓸며 말했다.

" 집사야, 나 안놀아줘도 되니까 울지 마. "
원우의 따뜻한 미소에 울음을 멈칠수가 있었다.
쓰레기한테 흘린 내 눈물이 아까웠다.
그 예쁜애를...
정인아 미안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