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역은 종점입니다.

장난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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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스럽게

#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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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거리에 나올 시간이 닥쳐 밥상을 대하면 눈엔 아직 붉고 누른 꽃만 보이었다. 눈만 아니라 코에도 아직 꽃향기였다.


그러던 꽃이 다 졌다. 몇칠 동안 그림 구경하듯 아침저녁으로 한참씩 돌아가며 바라보던 꽃이 간밤 비에 다 떨어져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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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의 적막! 다른 봄에도 낙화를 보았겠지만 이반처럼 마음을 찔려 본 적은 없었다.

나는 낙화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꽃이 열린 나뭇가지는 자주 손질을 하였으나 꽃이 떨어질 자리는 한번도 보살펴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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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낙화의 적막>





” 낙화가 지닌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고찰… 꽃이 떨어질 자리를 한 번도 보살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의 정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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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 


옆자리 한동민은 여주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대꾸하기 귀찮았던 여주는 휙 고개를 돌렸다.


콕.-


고개를 돌리자 뭉뚝한 무언가가 뺨을 콕 찍었다. 순간적으로 확 느껴지는 인공적인 잉크 냄새. 여주의 오른쪽 뺨에 닿은 건 다름 아닌 수성용 컴싸였다.


"야, 미쳤냐..?"


김여주는 한동민을 향해 입만 뻐끔거렸다. 수업 중이라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한동민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끅끅 웃음을 참아댔다. 지금 웃음이 나와? 김여주는 당장이라도 저놈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한동민에게 또 당했다는 굴욕감에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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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게 너도 대" 


여주는 수업 끝 종이 울리자마자 한동민의 얼굴 앞으로 수성용 컴싸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한동민은 끝까지 여주가 들이미는 손목을 탁. 붙잡고는 이리저리 얼굴을 피해 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얄밉던지. 여주는 기필코 저 녀석의 얼굴 중앙에 10원짜리 동전만 한 점을 찍어주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5분 가까이 실랑이 끝에 김여주의 체력이 먼저 다했다. 한동민은 끝까지 여주의 손목을 붙잡고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힘에 차이가 어쩔 수 없다는 걸 김여주 또한 잘 알았지만, 끝끝내 져 줄 생각조차 없는 한동민의 고집에 더욱 괘씸하다. 


"솔직히 양심 있으면 너도 당해라;;"


"싫은데ㅋㅋ"


김여주의 두 손목은 허공에 한동민의 양쪽 손에 제지되어 후들거렸다. 한동민은 휘어진 눈매로 장난기 그득한 미소를 지었다. 여주는 한동민의 미소에 더 열받기만 했다. 내 자존심을 쿡쿡 건드리는 데에 소질 있는 녀석이다. 


... 그래, 두 손이 붙잡혔으면 나머지 두 다리가 남아있지 않은가.


터억.-


김여주는 앉은 한동민의 가랑이 사이로 터억. 무릎을 집어넣었다. 이건 김여주의 일종에 협박이었다. 한동민은 남자로서의 위험신호를 느꼈는지 잠깐을 외치며 빠르게 한 손으로 여주의 무릎을 막았다. 


"이건 아니지"


"뭐가, 어쩔. 얼굴이나 갖다 대ㅋ"


한동민은 당황한 듯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온 여주의 무릎을 간간이 막으며 말했다. 하지만 여주는 굴하지 않았다. 이미 저놈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한 뒤라 앞뒤 안 가리는 여주의 성격상 멈추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한동민은 그런 여주의 성격을 알기에 붙잡던 여주의 손목에서 서서히 힘을 풀었다. 여주는 이때다 한동민의 이마에 컴싸를 툭.


슥.


빙글빙글...



한동민의 이마 중앙 위로 컴싸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얼마나 큰 점을 그리겠다는 건지 컴싸는 한동민의 이마에서 5바퀴 째 빙글 돌았다. 적당히 하자 적당히 라는 한동민의 말은 여주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렇게 1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가 되서야 여주의 손이 내려갔다. 


"야, 이쁘다ㅋㅋㅋ"


"...나 이마 한대 맞았냐"


여주는 그제서야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동민은 자신의 이마를 보곤 허탈해졌다. 괜한 김여주의 승부욕을 지핀게 아닌가. 하지만 좀 웃겼다는 생각에 한동민의 한 쪽 입꼬리는 삐죽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자? 며 운을 뗀 한동민은 여주의 앞으로 컴싸를 집어 들었다. 합은 얼마나 척척 잘 맞는지 김여주 또한 한동민의 얼굴로 컴싸를 들이댔다. 


"너 지금 진짜 이쁨"


"넌 지금 졸라 귀여움"


서로가 얼굴에 낙서를 하면서 예쁘다, 귀엽다. 온갖 칭찬을 남발하며 키득키득 웃어댔다. 그렇게 빠르게 지나간 쉬는 시간.








*


드륵.-


교실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교탁 앞에 선 선생님은 출석체크를 위해 반 아이들을 슥 훑어보더니 오른쪽 창가 자리 23, 24번에 순간 멈칫. 당황한 기색이 여력했다. 선생님은 큼큼 목을 가다듬고서는,


"누가 학교에 동물을 풀어놨을까" 라는 말과 함께 반 아이들은 웃음을 빵 터트린다. 아이들의 시선이 몰린 곳은 자리 23, 24번. 여주와 동민의 자리였다.



쉬는 시간, 서로 더 많이 그리겠다는 의지에 결국 둘 다 얼굴을 지울 새 없이 수업 종이 울리고 말았다. 그탓에 서로의 얼굴은 얼룩 덜룩. 여주의 이마로 뚱뚱한 귀와 코 정중앙엔 돼지코가. 동민의 이마에는 뾰족한 고양이 귀와 까만 코, 수염까지. 동물의 농장이 따로 없다.



"하하;"


"..."



여주는 민망함에 하하 웃음으로 무마하였다. 한동민은 한 손으로 자신의 이미를 탁 집고 실시간으로 푸쉬이이... 바람 빠진 풍선 마냥 고개가 축 내려갔다. 지도 부끄럽긴 한가 보다. 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는 놈이다.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 샤이보이 한동민. 고등학교 2학년 2년동안 한동민을 지켜봐 온 모습은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김여주에게 한동민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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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봄.


입학식을 알리는 교장선생님의 고리타분한 훈화말씀. 빼곡하게 정렬된 철제 의자에 허리가 뻐근해졌다. 나는 익숙하지 않는 교복에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러자 순간 마주친 옆자리 낯선 남학생. 같은 반인 것 같은데. 말이라도 걸어볼까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차갑디 시린 무표정에 싸늘한 눈매가 나를 향해서 벽을 쳐내렸다. 인상 한번 무섭네 라고 생각했다. 소위 날티상이라고 하는 양아치 무리 중에과묵한 힘숨찐 포지션일 것 같은. 그런 아우라에 압도 되어 고개를 돌렸다. 교복 마이 위로 한동민이라는 명찰과 저 녀석은 되도록 피해다녀야겠다고 생각했던 여주였다.


"야, 김여주"


그때 앞에 앉은 김동현이 빼꼼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집중력 하나는 그리 길지 못하는 김동현은 내게 잡담을 걸어왔다. "우리 같은 반이냐" 김동현은 중학교 동창으로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 받았다.


"그니까, 반배정 망했네"


"...야;"


여주의 말이 농담인 걸 알고 있었지만, 김동현은 진심으로 서운한 티를 팍팍 내었다. 


"농담~"


먼저 말을 건 김동현으로 점차 마음이 편안해졌다. 역시나 아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는 것이 얼마나 안심인지. 이제야 목 끝까지 단정히 잠긴 교복 위로 숨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어, 한동민?"


김동현은 여주 옆자리에 앉은 한동민을 발견하자 반가운 얼굴로 손을 들어 올렸다. 뭐야, 아는 사이야? 라는 눈치로 동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김동현은 "아, 같은 학원다녀" 라며 한동민을 가르켰다.


"어떻게 이렇게 같은 반이냐"


"그러게"


한동민은 김동현을 보자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 웃었다. 무심하게 고개를 돌릴 때는 언제고 김동현이 말을 걸자 경계 풀린 고양이 마냥 활짝 미소를 보였다. 한동민의 풀어진 표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여주는 방금 전 다짐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한동민은 그저 낯을 가린 것 뿐이었다는 것. 여주는 혼자 지레짐작했던 자신이 민망해졌다.



그때부터 빠르게 한동민에 대한 인식이 금세 풀어졌다. 김동현의 친구라면 조금 이상해도 착한 놈일 게 뻔했으니까. 내게 김동현은 보증수표였달까. 하여튼 믿은 만한 녀석이라고. 그렇게 김동현의 매개체로 우리 셋은 자연스레 무리를 형성했다.



사실 처음부터 한동민과 장난을 주고받는 허물없는 사이는 아니었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우리 둘 사이에 김동현이 없으면 약간 어색한 정도. 딱 그정도 사이였는데, 어쩌다 보니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반이 바뀌었다. 반은 한동민과 나만 붙고 김동현은 저저저 맨 앞반으로 배정받았다. 하필이면 둘이 있으면 약간 어색한 녀석이랑 반이 붙어버렸다. 그럼에도 2학년 새학기 첫날, 조금 어색할 줄 알았던 우리는 생각보다 끈끈하게 붙어다녔다.


첫날 자리는 출석 번호인지라 나는 맨 왼쪽 창가 자리 6번째, 한동민은 교실 뒷문이 있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꽤나 멀리 떨어진 자리여서 누군가 먼저 오지 않는 이상 접점이 생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한동민이 먼저 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급식이라는 이유로 다음에는 겹치는 이동 수업이라는 이유로 내 자리로 슬금슬금 오는 게 아닌가.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제 나도 그런 한동민이 익숙해졌다. 


"한동민, 나 윤사 안 가져옴"


"공부도 안 하면서 왜 가져갔냐"


한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자신의 교과서를 반쯤 밀어넣었다. 보여줄 거면서 틱틱 대긴. 한동민 답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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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레네 학파는 행복=괘락, 아리스티포스는 쾌락을 극대화하는 것이 행복을 달성하는 유일한 길이라 말한다. 이는 저번 시간에 말했던 쾌락의 역설을 야기하겠지? 애들아?"




꾸벅..-


여주는 당당하게 턱을 괴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동민은 그런 여주를 보더니 허... 한번 숨을 내쉬고 다시 칠판 앞을 보았다. 아무래도 김여주에게 교과서를 내어준 것은 무용지물이었다. 



휘이이..-


환기 때문에 열어 놓은 창문으로 달콤한 라일락 향기를 싣은 바람이 불어왔다. 운동장 사방으로 교장선생님의 취향에 맞게 심어 놓은 보라색 라일락 꽃임이 틀림없다. 60대 지긋하신 교장선생님의 소녀 감성. 타인의 감성은 옮기라도 하는 건가. 은은하게 라일락을 밴 공기는 내 코끝을 한 번 슥 훑고 지나쳤다. 본능적으로 한동민은 향기가 스치고 간 자리에 고개를 돌렸다.



까닥..-


여주는 잠결에 고개를 까닥였다.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받아내기에 여주의 잠버릇은 고약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머리에 떡하니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고여있었다. 무방비하게도 잠든 여주를 관찰하던 한동민은 혼자 쿡쿡 웃음을 참는다. 이 모습을 김동현도 봤어야 했는데 라며 놀림감을 적립해 나갔다. 아니, 사실은 어쩌면 나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으면 하는 약간의 바램도 있었다. 저 못난 얼굴은 나만 알고 싶은 이상한 소유욕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아마 저 바보는 끝까지 눈치채긴 글렀겠지. 아니 애초에 이 녀석은 내게 일말의 이성적인 감정이 없을 것이다. 솔직히 1년 정도 자기 앞에서 알짱거렸으면 좀 알아챌 만도 한데. 김여주에게 나는 그저 친구1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괘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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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바보-"


"?"


복도에서 마주친 김동현은 잔뜩 휘어진 눈웃음을 짓고 김여주를 향해 손짓했다. 뭐야, 갑자기 시비야. 김여주는 저 능글거리는 미소에 기분이 언짢았다. 주머니 속에 손 거울을 찾아 얼굴 한번 더듬더듬. 멀쩡한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뒤통수에 삐죽 튀어 나온 노란색 포스트잇이 거울 안에 비쳤다.


슥.-


"나는 바보입니다"


포스트잇에 적힌 글씨체를 보아하니 이건 빼박 한동민인 게 분명했다. 하... 한동민. 이 새끼는 한시라도 내게 장난을 치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걸까. 항상 먼저 적막을 깨고 전쟁 선포를 외치는 건 한동민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김여주의 한동민 추격전 시작을 알리듯 종소리는 댕.- 긴 복도 안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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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겁나 더워...-"


"이제 7월이니까"


김여주는 맥 빠지는 한동민의 T모먼트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걸 내가 지금 모르겠냐고... 


"그래도 우리 반보단 낫지"


"왜?"


"쟤네 반 에어컨 고장이잖아"


"헐.."


이 날씨에 에어컨 고장이면, 사람이 살 수 있나. 김여주는 동현을 향해 짠한 동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 아, 맞다. 김여주"


김동현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손뼉을 착. 치고 일어섰다. "왜 뭔데?" 흔치 않은 김동현의 격한 반응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니 소개 안 받을래?"


"소개?"


"우리 반 00알지? 걔가 너 소개받고 싶대"


김동현은 사랑의 작대기를 자처하고 싶은 눈치인지 지가 더 설레어하는 게 조금 웃기기도 했다.


"나를?"


"응, 연락처 줄까?"


"뭐, 일단.."


나 좋다는 사람 당연히 환영이지. 여주는 동현이 건네는 연락처을 덥썩 받아냈다. 


"너희 반 00이면, 그 키 큰 얘 말하는 거지?"


"응ㅋㅋ"


"...그 친구, 더위 먹었나보네"


산통 깨기 최고봉 한동민은 여주의 앞에서 빈정거렸다. 김여주는 그런 동민을 향해 찌릿 따가운 눈빛을 보냈다. 시비 걸지 말라는 일종의 눈치였다. 한동민은 싸악 눈치껏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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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낮은 길었다. 낮이 길수록 함께 있는 시간의 길이와 비례했다. 한 달 치 결제한 독서실을 빼먹고 김여주와 코노에 3시간을 때웠다. 한동민은 자연스럽게 여주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면서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낼 한동민의 꼼수였다. 그렇게 김여주는 한치의 의심 없이 한동민의 계획대로 일상처럼 둘은 그네에 걸터앉았다. 


톡, 토독.- 


여주는 한 손에 폰을 들고 서 잠시 잊고 있었던 속 김동현에게서 받은 연락처를 저장했다.


"진짜 연락 하게?"


한동민은 결국 저장을 마친 여주에게 물었다.


"안될 건 또 뭐야"


"니 얼빠잖아"


김여주가 좋아하는 연예인 얼굴만 봐도 전혀 걔랑 겹치는 것 조차 없는데. 뭔 바람이 불었는지. 김동현이 소개해 준 연락처를 덥석 받질 않나. 호감이 있으면 직접 나타날 것이지. 암만 봐도 개수작 같은데. 한동민은 계속해서 걘 아닌 이유에 대해 늘어놓았다. 하지만 김여주는 한동민의 말을 들은 채도 않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카톡을 두들겼다.




안녕, 김여주 맞지?

20:04 PM


엉, 안녕!

20:04 PM


연락 받아줘서 고마워

20:0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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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익.-


"야, 듣고 있어?"


한동민은 여주가 앉은 그네 줄을 자신 쪽으로 쑤욱. 끌어당겼다. 여주는 끌어당겨진 그네에 휘청이다 한동민이 붙잡은 줄에 두 손을 덥썩 잡아냈다.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잡은 줄에 중심을 붙잡았다. 하지만 폰에서 손을 놓아버린 탓에 핸드폰은 툭.- 떨어지고 몸은 한동민을 향해 기울었다. 아!


"뭐야; 폰 깨지면 너가 책임질..."


여주는 성난 목소리로 한동민을 휙 올려다보았더니 어느새 코앞까지 가까워져있는 한동민의 얼굴에 멈칫. 수상할 정도로 놀이터에는 적막이 흘렀다. 평소와 다른 한동민의 진지한 표정에 잔뜩 긴장감이 감돌았다. 뭐지, 나 뭐 잘못했나. 싶은 오만가지 생각이 겹치면서 왜인지 모르겠지만 여주는 사과부터 박을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미.."


"하지마"


한동민은 단호한 어투로 여주가 뱉으려던 사과를 가로막았다. 하지마? 사과를 하지 말라는 건지. 뭘 하지말라는 건지. 여주는 한동민이 말하는 하지마의 의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주는 한동민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상황 파악이 안되는 김여주에 한동민은 답답한 듯 다시금 입을 열었다.




"걔랑 연락 하지말라고"


여주는 왜? 라는 얼굴로 한동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동민은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좋아해, 그니까 걔랑 연락 하지마"


"응..?"


웃기고 있네. 좋아해? 그니까 걔랑 연락하지 마? 내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대사 하나하나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게 유치원생이 하는 고백이 더 담백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 김여주 앞에서 붉어지는 얼굴을 보이긴 자존심 상했다. 한동민은 자신의 의지와 반대로 귓가는 이미 터지기 일보 직전이지만 괜히 태연한 척 굴었다. 




"...이것도 장난이야?"


여주는 또 자신이 속고 있는 건 아닐까 물었다.


"장난이면, 못 들은 걸로 하게?"


장난이라고 치기에 씁쓸한 한동민의 얼굴이 밟혔다. 평소 같으면 장난기 그득그득한 한동민인데 오늘따라 진지하게 구는 녀석이 낯설었다. 그탓인지 괜히 한동민이 의식되는 게 여주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하였다.



"..."


둘 사이에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침묵이 사이로 길었던 낮을 보내려는 노을이 졌다.


"가자, 해 진다-"


동민은 붙잡고 있던 여주의 그네 줄을 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덤덤하게 이제 가자며 손짓했다. 


"어, 으응"


그리고 여주는 그런 동민의 뒤를 따라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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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벅처벅.-


나는 그저 조용히 한동민의 뒤에 저만치 떨어져 그의 그림자를 따라갔다. 한동민의 뒤를 밟는 내내 혼자 생각이 많아졌다. 나를 좋아해..? 한동민의 기습 고백에 어떨떨하기만 하다. 그동안 내 감정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한동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에 대해. 친구라는 틀 안에 묻고 있던 감정을 회상했다. 한동민, 내게 장난칠 궁리만 하는 짓궂은 놈이지만 나는 그 녀석의 다정한면도 알았다. 매번 티격태격 하는 우리지만 한동민과 함께 하는 시간들은 매번 아쉽게 느껴진다. 시간이 빨리 흘러 가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인지, 한동민과 함께한 순간에 대한 아쉬움인지. 후자에 가깝다는 것도 알았다. 가끔은 사람 설레게 하는 배려가, 은근히 귀여운 구석도 있는 한동민이 나를 좋아한다니. 갑자기 낯짝이 붉어진다. 그 순간, 남녀 사이 의식해버리는 순간 끝이라던 말이 떠올랐다. 아, 좋아하게 돼버리는 건 한순간이구나.



김여주의 자각이 끝났을 때는 이미 집 앞에 도착했다. "내일 봐" 한동민은 문 앞으로 여주를 보내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여주는 그런 한동민의 앞에서 차마 발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여주는 꾹 다물었던 입술을 꾸물거리다 용기내어 툭.-


"연락 안 할게"


"?"


"그러니까, 네가 책임지라고..."


여주는 한동민을 향해 책임을 논했다. 눈치 빠른 한동민은 여주의 대답의 의미를 덥석 물었다.


"어떻게?"


장난스럽게 되묻는 한동민의 입가는 번지르르 미소가 잡혀있었다. 한동민은 여주의 입에서 끝까지 확답을 얻어낼 심상이었다. 


"..."


한동민의 페이스에 말린 여주의 얼굴은 홍당무.


"나도 좋아한다고"


한동민은 여주에게 자신이 바라던 대답이 나오자 푸핫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곤 알겠어라는 한동민의 마무리로 우리의 관계에는 달짝지근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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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가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