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을 걷는 시간
민윤기와 내가 나란히 정문을 넘어 계단을 오라고, 같은 반 문을 열었을 때, 반 전체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나는 의아해 민윤기를 쳐다봤지만 민윤기도 이 시선의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뭐야, 반에 무슨 일 있어?”
“그러게. 다들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린 것처럼.”
나와 민윤기는 한 마디씩 건네고 각자 자리로 향했다. 나는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옆자리를 슬쩍 봤다. 내 옆자리는 언젠가부터 쭉 비어있었다. 괜히 씁쓸해진 기분에 자리에 앉은 내게 앞자리에 앉아있던 애들, 심지어 저 멀리 끝과 끝에 위치해 있는 애들까지 몰려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나한테 이런 관심을 보이는지 잘 모르겠다. 제작년 나와 이준의 일 때문에 관심을 잔뜩 받았던 적이 한 번 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잠잠했는데… 나에게 관심이란 그리 좋지 않은 것이었기에 솔직히 조금 긴장됐다.
“여주야, 혹시 이준…”

“야, 입 다물어. 그 새끼를 왜 얘한테 묻냐.”
“구, 궁금한 게 있으니까 그렇지!”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했다. 사람들 입에 이준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거, 정말 싫었다. 아니, 불쾌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중간에 민윤기가 끼어들어 입을 막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피해 교실 밖으로 나왔다.
“… 갑자기 왜 이준을…”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아주 조용하게 읊조렸다. 이준의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될 11월은 아직 멀었는데. 좋지 않은 예감에 얼굴을 찡그렸다.
“야… 나 방금 3학년 교무실에서 이준 선배 봤어……”
“무슨 헛소리야. 그럴리가 없잖아.”
“분명 이준 선배였어, 우리 학교 교복도 입고 있었다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이준이 교무실에 있다고…? 그것도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심장이 아릿해지기 시작해 오른손으로 심장 부근을 감쌌다. 그리고 아까 그 애가 이준을 봤다는 3학년 교무실로 달렸다. 이준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하아, 하…”
숨이 벅차게 달려 끝까지 차오른 숨을 겨우 내뱉은 뒤, 교무실 문을 느리게 열었다. 순간 익숙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이며 어젯밤처럼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나의 인기척에 뒤를 돌아본 남자는 이준이었다.

“어? 그때 놀이공원, 맞죠?”
아니, 내가 이준이라 믿고 싶은 전에도 만난 적 있는 바로 그 남자였다. 놀이공원에서 알바할 때, 나를 미친 듯이 눈물 짓게 만들었던 바로 그 남자. 전정국이다.
“그쪽이 왜…”
“오늘 전학 왔어요. 저번주에 근처로 이사를 와서.”
“아…”
“다행이다, 아는 사람 없어서 걱정했는데.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가 나를 보며 활짝 웃어보인다. 심장이 이상하리만큼 저릿하다. 금방이라도 또 눈물이 차오를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그럴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이준일까 숨이 차게 달려온 내가 너무 한심했다.
“김여주, 너 여기서 뭐…”
민윤기였다. 나 때문에 이상한 분위기가 되버린 반을 정리하고 바로 나에게 온 것 같았다. 처음엔 나에게 쏟던 눈길이 당연스럽게 그 남자에게 향했다. 민윤기도 꽤나 놀란 듯 보였다. 중간에 말을 하다 말 정도로.
민윤기는 무표정으로 한참 그를 응시하다 겨우 입을 떼 인사했다. 그 역시 우리처럼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것만 같았다.
“또 보네요.”
“그러게요.”
“교복… 그래서 학교가 시끄러웠구나.”
우리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이준을 닮은 남자를 보고 나서야 학교가 소란했던 이유를 찾은 모양이다. 하긴 나도 처음에 이준인 줄 알고 그렇게 울었는데…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학교가 떠들썩했던 걸 드디어 납득했다.
“3학년 1반이 어디에요?”
“… 같은 반인데 말 놔요. 반에는 우리랑 같이 가고.”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전정국은 우리와 같은 반이었다. 얼마 전, 이준과 닮은 전정국을 만나고부터 뭔가 제대로 꼬인 듯한 느낌이 든다. 같은 학교에 같은 반까지. 마치 이준의 자리를 전정국이 차지하려는?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나와 민윤기, 그리고 전정국은 아무런 말없이 조용하게 복도를 걸었다. 복도에 나와있던 학생들 모두가 우리를 보며 아니, 정확히는 전정국을 보며 속닥거렸고, 나는 그들의 관심이 싫었다. 그때, 전정국은 모두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라도 챈 듯, 나를 바라보며 그 이름을 불렀다.
“이준…”
“어…?”

“이준이 누구야?”
쿵쿵 심장이 뛰기 시작함과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전정국이 이준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한다면, 모든 게 이상해질 거다. 본인과 닮은 존재, 그리고 지금은 없는 그.
전정국에게 이준의 얘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내가 너에게서 이준을 보고 있다는 말을… 감히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