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걷는 시간

10. 기억을 걷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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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걷는 시간















한바탕 옥상에서의 소동 다음, 나와 전정국은 옥상 바닥에 나란히 앉았다. 교복 치마를 입은 나를 배려해 전정국은 자신의 교복 셔츠를 벗어 내 다리에 덮어줬다. 그걸로 인해 반팔티 한 장만 걸친 전정국을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본 나였다.





“안 추워?”

“괜찮으니까 너 덮어, 치마 입었잖아.”





예전부터 항상 생각했다. 전정국이 나에게 친절한 이유가 대체 뭘까? 우리의 첫만남이 눈물 바다여서 그랬던 걸까, 아님 그냥 내가 안쓰러워서 그랬던 걸까. 전정국에 대한 의문은 매번 가득했는데… 오늘이 돼서야 그 답을 찾았다.

전정국은 날 좋아한다. 아직도 불그스레한 그의 귀가 나에게 확신을 주고 있었다.





“그…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뭔데?”

“아까 저 난간에는 왜 올라간 거야…?”





전정국의 셔츠를 다리에 덮은 채, 묻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천천히 물어보기 시작한다. 첫번째, 옥상 난간에 올라가 걷고 있던 이유. 나는 전정국을 쳐다보며 불안함을 느꼈다.





“나 원래 옥상 좋아해. 난간에 기대서 하늘을 보는 것도, 학교 전체를 내려다 보는 것도. 높은 곳은 항상 매력적이니까.”

“… 앞으로는 하지 마.”

“어?”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 그런 거.”





하늘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은 듯 말하는 전정국을 보며 안심이 됐다. 죽으려는 게 아니었구나… 놀랐던 심장이 좀 가라앉는 기분과 동시에 속에서 뭐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걱정 비스무리한 화?

엄마들이 애들이 다쳐서 집에 오면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을까 싶다. 걱정은 되는데 걱정을 하는 법이 서툴러 화부터 내는 그런 거 말이다. 그걸 나는 지금 전정국에게서 느끼고 있다.





“그러다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저 아래로 떨어져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

“여기서 떨어지면 죽어, 죽는다고! 나는 방금도 네가…!”





전정국 쪽으로 몸까지 홱 돌려 사납게 몰아붙이다 순간적으로 말을 멈췄다. 화를 내는 나를 보는 전정국의 눈이 사랑스러움을 담고 있었기에.





“죽을까 봐… 걱정했단 말이야……”





전정국의 눈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입을 움직였다. 전정국과 계속 눈을 맞추는 동안 어딘가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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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지금 나 걱정해 준 거야?”





전정국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간다. 자신을 걱정했냐는 전정국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심장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 느낌이 뭔지 잘 알고 있다. 이준한테서 이미 한 번 느꼈던 것이기에.

나는 지금 전정국에게 설렜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설렌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정국에게 내 심장이 반응한 건 영락없는 사실이었다.





“아, 아니거든…”

“에이, 방금 직접 말했으면서. 내가 죽을까 봐 걱정했다고.”

“… 그래! 내가 너 걱정 좀 했다! 그래서 뭐, 뭐 어쩔 건데!”





부끄러워졌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한 것 같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같이 지낼 때는 뭔 짓을 해도 무미건조한 감정이, 한 번 설레고 나서는 잔뜩 긴장한 것 마냥 곤두서있다는 게. 내가 괜히 발끈하자 전정국은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얼른 내려가기나 하자. 곧 수업 시작해.”

“자, 잠깐만…!”





전정국이 내 머리를 쓰다듬다 말고, 손짓을 멈추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그런 전정국의 손을 잡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 시간만 나랑 여기 있자. 너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제자리에 다시 앉은 전정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이 너와 나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준의 얘기를 꺼냄과 동시에 나는 너에게서 이준을 봤다는 걸 털어놔야 했다.





“무슨 말인데 그래?”

“그게… 내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쉽게 입을 떼지 못했을 거라고 감히 예상한다. 다 털어놓고 전정국에게 설랬음 모를까, 먼저 설레버린 탓에 나는… 너를 잃게 될까 무서워졌다.

전정국은 입술을 깨물며 약간 불안한 듯 보이는 나를 어떻게 봤는지, 떠는 내 손을 꽉 잡아왔다. 그리고 안심하라는 듯 예쁜 미소를 보여줬다.





“말하기 어려운 거면 굳이 안 해도 돼.”

“… 아니야, 지금 해야 해.”





전정국의 미소를 본 나는 더 굳게 다짐하게 됐다. 나는 이 시간을 절대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전정국이 더이상 불편하지 않게, 신경 쓰이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나는 전정국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들이 너를 가지고 떠들었던 이유, 이준 때문이야.”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것에 대해 미치게 무서웠다. 이준이 죽고, 민윤기를 제외하고서는 단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전정국은 안 그런 척 하지만 이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 보였고, 나는 전정국 앞에서 내게 가장 아픈 기억을 꺼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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