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박원빈, 너 이제 내꺼야

01 어쩌다 버스

고등학교 생활에서 정말 별로 할 일이 없던 나에게, 박원빈이라는 존재는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고, 그 애와 특별한 교류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애가 내 시선에 자꾸 들어왔다.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무슨 이유인지 우리 반이 갑자기 자주 조별 활동을 하게 됐다.

그때 우리 반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반장, 부반장, 학생회, 거의 모든 활동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다 달라붙어서 항상 으쌰으쌰 활동을 했고, 그에 비해 나는 그저 묵묵히 그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그때 박원빈은 그 어느 팀에도 끼지 못하고, 항상 혼자 있는 타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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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박원빈 알아?”

친한 친구들이 나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솔직히 난 그때까지만 해도 박원빈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때 친구들이 말하는 걸 듣고서 조금씩 그 애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박원빈은 그 당시 아무 말 없이 혼자서 책을 읽고, 수업을 마친 뒤에도 항상 혼자 돌아가는 그런 학생이었다. 다른 애들은 다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는데, 박원빈은 그게 싫었는지 항상 혼자였다.

한 번은 교실에서 숙제를 못 해왔던 내가 남은 사람들과 함께 야자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때 박원빈은 혼자 창문 옆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조금 늦게 갔지만, 아무래도 혼자 있는 게 불편해 보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애 옆에 앉게 됐다.

“박원빈, 오늘은 너 왜 혼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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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냥 좀… 혼자 있는 게 편해서. ㅎㅎ”

그때 그 애는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 애가 이렇게 소심한 성격이라 생각조차 못 했다. 그 애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늘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타입이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그 애와 점점 자주 마주쳤다. 하루는 수업 끝난 후, 나는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에 그 애가 잠깐 눈을 마주쳤다.

“사랑아, 오늘 뭐 할 거야?”

“음… 그냥 집에 가려고. 너는?”

“나도 그냥… 집에 가려구.. ㅎ”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왠지 그 애의 말투가 조금 다가왔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점점 박원빈을 더 신경 쓰게 되었다. 그 애가 수업을 끝내고 가는 길을 함께 걷거나, 자주 보게 될 때마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모르게 그 애가 굉장히 불편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또 다시 그 애와 둘이 함께 남게 되었다.

“박원빈, 너 오늘도 혼자야?”

그 애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 안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 애가 더 이상 혼자 있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애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나랑 시간을 보내는 걸 더 편안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애에게 말을 걸며, 점점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보냈다.

“우리 겹치는 시간이 많네 ㅎㅎ 종종 같이 다니자!”

그 애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그 애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 애가 나에게 다가오는 순간이 조금씩 다가올수록, 나는 그 애에게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수업이 끝난 뒤 우리는 함께 학교를 나섰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그 애와 함께 걷는 길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야 해서 급하게 계단을 올라갔지만, 그 애는 내가 앞서가도 천천히 따라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버스를 타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집에 가는 길이었지만 그 애는 내게 먼저 말을 건넸다.

“너, 이 근처 어디 살아..?”

“나는 여기 삼당동 쪽!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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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여기 근처.”

쫌 짤막한 대화였지만, 그 애가 나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게 왠지 좋았다. 버스 안에서 서로 웃으며 얘기하는 동안, 나는 조금씩 마음이 놓였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그 애는 창밖을 바라보며 가끔 내 쪽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조금 떨리고, 조용히 웃을 때마다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버스가 내 정류장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그 애에게 말을 건넸다.

“나 여기서 내려야 해. 너는 어디서 내려?”

“나는 한 정거장 더 가야 돼 ㅎ 아...ㅇ”

"뭐?"

"ㅇ..아냐!! 조심히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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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이는 빨리 가라고 휙휙 손짓을 했다. (쪼금 귀여운 모먼트였다)

사실, 그 애와 헤어지는 순간이 아쉬웠다. 내가 내리기 직전에, 빈이는 나를 잠시 보고 있었다.

“그럼 내일 봐.”

“응, 내일 또 보자 ㅎㅎ”

그리고 나는 버스에서 내리며, 그 애와 헤어졌다. 그 애는 창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고, 나는 대답처럼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고, 나는 그 애와 보낼 시간이 점점 기다려졌다. 

이런 느낌 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