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서 래아
생년월일: 2002.02.19 성별: 여
신장: 166cm 등장 작품: <크로마 드리프트>
머리 색: 검은색, 은색 능력: 염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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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에서 새롭게 알게 된 건 그녀가 밤비와 동갑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거기까지 본 하민은 래아의 과거가 상세하게 서술 되어 있는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내용을 보지 않으려 넘겨버렸다.
그녀가 큐브 공간에서 깨어난 뒤의 일부터 보고 싶어 중간에 멈춰야 했지만 실수로라도 래아가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라도 보게 될까 봐 하민은 스크롤을 멈추지 못했다.
결국 도착한 자료의 맨 아래에는 그녀의 최근 행적이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균열을 닫기 위한 조사 중. - 2025.01.31 22:46~]
최근 내용은 생각보다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아직 자세히 기록할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하민은 스크롤을 조금씩 올리며 래아가 큐브에서 깨어난 시기를 찾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이상하게도 그녀가 큐브에서 깨어나 아스테룸에 오기 전 까지의 내용들이 심하게 손상되어 내용을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 볼 것을 대비해 중요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가려둔 모양새였다.
혹시 위성에서 몰래 하던 일이 이거였던 걸까? 하지만 검색이나 열람 기록에는 분명히 이 파일이 없었어.
수수께끼인 사람을 알기 위해 자료를 보기로 한 거였는데 오히려 더 많은 의문만 얻은 기분이었다. 하민은 포기하지 않고 남은 문장들이라도 차근차근 훑어보기로 했다.
"아스테룸으로의 길이 열렸으나 건너가겠냐는 제안을 거절함.."
손상된 부분 중 가장 최근의 것이었다.
하민이 스타샤드를 모아 개발자와 함께 만든 아스테룸으로 플레이브 멤버들과 자신을 전송할 당시의 일로 보였다.
약 2년 전. 그때는 이미 래아가 큐브에서 깨어난 이후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는 하민 역시 큐브 공간에서 지냈는데 어째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을까?
아스테룸으로 건너가겠냐는 제안을 할 수 있는 건 개발자 뿐이었을텐데 그렇다면 이미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으면서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
뭔가 잘못된 것만 같은 초조한 기분에 하민은 허겁지겁 스크롤을 올려 손상된 부분 중 가장 첫 번째 부분을 찾아냈다.
[ 스스로 큐브에서 깨어나며 일으킨 파동이 생명의 공간 전체를 강타함. ]
"... 2020년 1월 11일..!!! 20년도에 깨어났다고? 5년 전이잖아!"
2020년이면 하민이 큐브에서 깨어나기 약 2년 전이기도 했다. 예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오래전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땐 아스테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래아는 이전의 하민처럼 카엘룸에 가지 못한 채 큐브 공간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개발자가 아스테룸어를 해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 게 하민이 직접 접촉을 시도한 이후였기에 최소한 2년 1개월 동안은 누구도 만나지 못한 채 혼자 있었다는 얘기였다.
깜깜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래아의 큐브 공간에서의 역사는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큐브 공간에서 깨어났다면 개발자가 눈치채고 아스테룸으로 곧장 전송해주었을 테니 분명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했었다.
심하면 칼리고가 들이닥친 그 당일에 깨어났을지도 모른다고.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래아의 말수가 적은 성격이 단번에 이해됐다. 오랫동안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못했을 테니까.
[ 생명의 공간을 돌아다니며 다른 이를 찾아다님. -2020.01.11 2:12~2020.06.30 13:44 ]
[ 홀로 생명의 공간에서 아무런 활동 없이 누워있음. -2020.06.30 13:45~2021.09.02 08:31]
이 이후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손상되어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하민은 집중해서 읽느라 앞으로 쏠려있던 상체를 뒤로 기울여 의자에 기대었다. 눈은 여전히 깨진 글자들로 가득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생각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깨어나 약 6개월을 누군가를 찾아 생명의 공간을 하염없이 떠돌다 결국 포기해버렸을 때, 래아가 어떤 절망감을 느꼈을 지 감히 헤아릴 수도 없었다.
멋대로 죽지도 못하는 곳에서 숨만 붙은 채 1년 하고도 2개월을 보내는 것은 또 어땠을지.
21년 9월 2일 이후의 기록은 알아볼 수 없지만 아마도 쭉 혼자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지난 3년 간 그녀는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어째서 아스테룸으로 오지 않겠다고 했을까.
래아에 대해 알게 됐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모르는 것도 더 많아진 것만 같았다.
지금은 칼리고에 더 집중해야 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하민은 작은 한숨을 내뱉으며 이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는 깨진 자료 창을 닫았다. 그리고 아래에 있던 목차에서 래아의 데이터 코드를 선택했다.
새로운 정보를 기대한다기 보단 그저 혹시 모르니 하는 점검 같은 것이었다. 화면은 금세 알아보기 힘든 글자로 가득해졌다.
".. 잠깐만."
뜻밖에도 래아의 데이터를 보자마자 곧바로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민은 서둘러 균열의 데이터 코드를 찾아 래아의 것과 나란히 두었다.
"이게 대체.."
두 코드의 구조가 일부 일치했다.
일부라고 했지만 사실 거의 절반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데이터 코드를 갖고 있다.
특히, 아스테룸인에게 데이터 코드란 DNA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혈연 관계이거나 서로 관련이 있는 존재끼리는 일부 비슷한 구조를 띄기도 한다.
하지만 균열은 사람이나 외계인도 아닌 정확히 정체가 뭔지도 밝혀지지 않은 존재인데 래아와 데이터가 유사하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이게 뭘 뜻하는 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예삿일은 아니었다.
"..대체 정체가 뭐야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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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지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저녁, 밤비는 혼자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은은한 음악이 나오는 조용한 카페에서 사색을 즐기는 건 그가 제일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기에 쉴 수 있게 되자마자 카페로 온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삼십 분 쯤 지났을까, 일을 하다 와서 인지 금방 피곤해진 탓에 밤비는 일찍 책을 덮고 기지개를 켰다. 하품도 나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책은 다음에 읽는 게 좋겠다.
크게 하품을 하고 나온 눈물 한 방울을 닦고 눈을 뜨자 밖은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러닝이나 할까..
딴 생각을 하며 문득 바라본 창 밖의 가로등도 닿지 않는 어둠 속에 누군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보다도 작은 체구, 래아였다.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확인 해봐야겠다.'
은호에게 소중한 사람이니까.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밤비는 테이블 위에 있는 책을 집어 들고 얼른 카페 밖으로 나갔다.
2월의 공기는 아직도 차가웠지만 해가 막 진 후라 입김이 나올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오늘 조금 얇게 입은 탓에 밤비는 추위에 몸을 조금 몸을 움츠렸다.
성큼 성큼 걸어 래아에게 가까이 갈 수록 그녀의 등이 빠르게 들썩이고 있는 게 보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밤비는 발걸음을 좀 더 재촉해 뛰다시피 걷기 시작했다.
"래아씨, 괜찮아요?"
가슴을 움켜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을 고르려 애쓰던 래아가 고개를 들어 밤비를 올려다보았다. 밤비는 얼른 한 쪽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춰 시선을 맞췄다.
창백한 얼굴은 온통 식은땀으로 적셔져 있었다. 이 날씨에 결코 더워서 난 땀일 리는 없었다.
"괜찮아.. 그냥..."
헐떡이는 숨 사이로 겨우 내뱉은 괜찮다는 말이 밤비에게는 오히려 구조 신호처럼 들렸다.
"업혀요, 예준이 형에게 데려다 줄게요. 전에 의사였거든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모르니 당장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지도 몰랐기에 그저 예준에게 데려가야겠다는 생각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들고 있던 책을 땅에 내려놓고 래아를 업기 위해 그녀의 한 쪽 팔을 자신의 어깨에 올리며 등을 돌렸다.
그러나 제대로 업기도 전에 래아가 떨리는 반대쪽 손으로 밤비의 바짓단을 잡았다. 업히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밤비는 다시 뒤를 돌아 아직 버거워 보이는 래아를 마주 봤다.
"헉.. 허억.. 그냥.. 내버려둬.. 죽을 병...은 아니니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니 유난 떨 것 없다며 고집을 부려 밤비는 어쩔 수 없이 예준에게 가는 것을 포기했다.
래아가 자신을 두고 가라고 했지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밤비는 다만 곁에 있으면서 정말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다렸다.
10분 정도 지나자 점차 래아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는 편해진 게 느껴졌다.
아직 완전히 괜찮아지지 않았는데도 래아는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아직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됐어 움직일 수는 있으니까."
참 어지간하다. 나도 그렇지만 어째 이 사람이 더 심한 것 같네. 이렇게까지 괜찮은 척을 하다니.. 조금은 더 쉬어도 됐을 텐데, 아직도 조금 휘청 거리면서 꾸역꾸역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밤비는 부축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지 오백 번은 더 고민했다.
정말 이대로 혼자 보내도 되는 건지 찝찝함이 몰려왔다.
"은호에게는 비밀로 해줘."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뒤를 돌아본 래아의 얼굴은 여전히 불안해 보이긴 해도 어쩐지 평소보다 조금 부드러웠다.
"알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