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잔상에게

12. 스마트 폰



“여기 계실 것 같았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중앙 제어실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서 있던 래아가 눈짓으로 인사를 했다.

 



하민은 어제 래아와 헤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만나지 않고는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제 위성이나 아지트에 수시로 들르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인 지금, 위성의 중앙제어실에서 래아를 만날 수 있었다.

 



“저희, 아무래도 연락처를 교환하는 게 좋겠어요. 마냥 약속 장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순 없잖아요.”


“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럼 이번에 하나 받아 가요. 마침 여분도 있으니까. 앞으로 아스테룸에서 지내려면 필요할 거에요.”


“…….”

 



래아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지만 하민은 여전히 그녀의 침묵의 의미를 읽기가 힘들었다.


혹시 괜한 오지랖이었던 걸까?

 



“알겠어.”


“가져다 드릴게요.”

 



하민은 구석 쪽 선반 위 상자를 꺼내 가볍게 먼지를 털어내곤 뚜껑을 열어 살펴보았다.


안에는 여러 종류의 스마트폰이 들어있었다.


곧바로 그는 상자를 가지고 래아에게로 갔다.

 



“여기서 고르시면 돼요.”

 



하지만 래아는 상자 안을 조금 훑어보고는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금방 고개를 들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그냥 네가 적당한 걸로 하나 골라줘.”


“음... 그럼 한 손에 들기 편한 사이즈가 좋겠어요. …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색으로 고르세요.”


 


래아는 하민이 집어 든 것들 중 민트색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말없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풋.."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하민의 입술에서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죄송해요. 비웃은 게 아니에요. 그냥….”

 



웃음 소리를 들은 래아가 고개를 들어 저를 빤히 바라보자 하민은 꽤나 당황해 허겁지겁 사과를 쏟아냈다.


원래도 웃음을 잘 참는 편은 아니긴 했지만 래아씨에겐 더 조심했어야 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웃은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 알고 지낸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얼굴이 조금 붉어진 하민이 말을 더 잇지 못하자 래아가 기다리다 입을 열었다.

 


“비웃었다고 생각한 적 없어, 괜찮아.”


“그래도 죄송해요.”



래아는 두 번째 대답을 하는 대신에 하민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봤다.


어쩐지 어색해진 분위기에 하민은 서둘러 뚜껑을 닫고 상자를 원래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정말 이상했다. 분명 처음엔 무뚝뚝하고 조금 오만하기까지 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요즘은….

 




하민은 짧은 상념을 애써 날려 보내고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밤비는 좀 어땠어?”

 



화제를 돌리려고 애 쓸 것도 없이 래아가 먼저 본론을 꺼내자 하민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가끔 시간을 헷갈리는 것 같기는 했는데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다행이네.”


“벌써 무슨 일인지 알아내신 거예요?”


“아니, 그건… 아직이야.”


“그럼….”

 



래아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좋지 않은 징후인 건 맞아. 외부에서 어떤… 영향을 받은 걸로 추정돼. 원인은 개발자가 계속 알아보는 중이고.”


“칼리고 때문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

 

“그 흔적이라는 거, 겉보기에는 그냥 예쁘게 빛나는 작은 문신처럼 보였는데…. 많이 위험한가요?”


 


하민의 질문에 래아가 멈칫하더니 시선을 피했다.


대체 이 질문의 어디가 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건지 하민은 알 수 없어 그런 래아의 눈꺼풀을 그저 말없이 내려다 보고만 있었다.

 



“흔적은… 위험하지만 악화 속도가 느려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어. 하지만….”

 



말을 끝 맺지 못한 채 꾹 다문 입술과 불안한 시선은 대답을 기다리는 하민 마저 초조해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번엔 별일 없길 바라야지.”

 



하지만 앞선 이야기들은 그녀가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 비해서 크게 와 닿지 않는 말이었다.


이것 만으로는 대체 뭐가 어떻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