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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규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그저 힘없이 누워있을 뿐...
Rrrrr ㅡ
그의 전화에 메세지 알림이 울렸다.
아마 높은 확률로 상담가일 것이다.
그래도 범규는 꿋꿋히 두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차라리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얼마나 편리한 일인가...
무기력한 범규는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을 터이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라는 것을
평생 겪어오며 살다가
갑자기 상담가라는 왠 자가
자신의 고통을 헤아려 주겠다거니 뭐니...
어차피 피폐해진 범규의 마음에 남은 것은
한 줌의 재 말고는 뭐가 더 이상 남아돌지 않았다.
똑똑-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상담가인가,
" 형사입니다. 문을 열어주시죠, "
범규는 형사란 말에 눈을 뜨고 결국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
문을 열자, 30대쯤인 어엿한 남성이 우뚝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이 형사임을 증명하는 신분증과 소속을 드러내면서 소개했다.
" 이민우 형사입니다, 수사 본부에서 왔어요.
범규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하러 왔습니다.
잠시, 집에 들어가도 될까요? "
민우는 조심스레 범규에게 양해를 구했다.
" 네.. 들어오세요.. "
범규의 집은 폐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마구잡이였다.
민우는 두리번거리더니 작은 의자를 집어 앉았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근황을 물었다.
" 범규씨는친부 김씨에게 가정폭력 겪었다고 들었어요. 요새 치료 받고 괜찮아지고 있나요? "
" 글쎄요, "
범규는 무덤덤하게 말하며
낮은 자신의 침대에 앉았다.
" 본론부터.. 간단하게 말하죠.
친부 김씨, 예전부터 빚이 많았나요? "
민우는 날카롭게 물었다.
" 그냥...대출이 많이 시급해보였던것 같았어요.
근데..아무래도 제 추측일 뿐이죠 "
" 사실 범규씨 친부 김씨가
마약 유통과 관련되서 최근에 구속됬습니다.
저는 그걸 조사하게 되었고,
그가 전에 가정폭력범이었던 걸 이번에 알았어요. 근데, 아무래도 그가 빚을 많이 졌던 전적이 좀 수수상하게 느껴져서 물어봅니다. "
" 저는 어릴때부터 작은 방에서
감금 생활을 했어요. 그래서 아버지 관련해서는 제가 도움이 별로 되지는 않을꺼예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으니깐..
항상 맞는게 전부라서.. "
" 심증이나 물증이나 다 환영합니다.
심증이여도 어떻게든 유추해내어 물증을 찾아내면 그만이니깐. "
민우는 능숙하고도 여유롭게 말했다.
마치 이런 일들을 많이 겪은 모양이였다.
" 제가 알기론 아버지는 옛날에 도박 원정을 하셨어요. 해외 원정이였을껄요 "
" 도박이라... "
의외의 대답에 민우는 꼼꼼히 범규의 말을 받아 적었다.
" 어디로 갔는지 기억해요? "
" 홍콩, 마카오 밖에 몰라요 "
" 정말 무기징역감이 따로 없군 "
민우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범규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예전의 기억들이 수면위로 조금씩 떠오른 바람에
얼굴 안색이 저도 모르게 어두워졌다.
" 범규씨, "
범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 .. "
" 예전 기억을 떠오르는 게 힘들면
관둬도 좋아요. "
" 상관없어요. 난 이제.. "
난 이제... 어쩌라는 거지..?
범규는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곰곰히
생각해봤다.
난 이제 ....
뭐지...?
지난 날... 아버지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 욕구에 눈이 뒤집혀졌던 내가,
이제는 아무런 소망 없이..
아무런 목적 없는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난 이제 없어져도 좋지 않을까?
죽으면 슬퍼해줄 사람이 있기는 할까?
" 범규씨. "
민우는 나지막히 그를 불렀다.
" 네. "
범규는 대답했다.
" 솔직히 말해봐요.
많이 심적으로 지쳤죠? "
" 네. "
" 그게 표정으로 다 드러나는 거 알아요? "
범규는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내 생각이 다 보이는 건가?
" 범규씨, 혹시 몇살이예요? "
" 17살인데요.."
" 끝나고 햄버거 세트 사줄테니깐,
패딩 입고 나갈 채비하세요. "
갑자기 조사를 마무리하려는 민우였다.
그 말에 범규는 당황했다.
이게 뭔...??
민우는 멍한 범규를 바라보며 피식웃었다.
" 빨리 준비하세요. 시간 많이 못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