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첫 날. 너무나도 떨리는 마음에 어젯밤 늦게 잠들어 버렸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각이란 걸 해버리고
말았다.
"망했다..."
새학기 첫 날부터 빡세게 검사하려는 모양인지 학주가 서있었다. 한 번도 지각해본 적도 없고 벌점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보통 만화에서 보면 담 넘어서 몰래 가던데... 한 번 해볼까."

음 역시 만화는 만화군. 너무 높아. 160인 내 키로는 절대
넘을 수 없다. 누가 받쳐주면 넘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라?
오 마침 키 큰 남자애 한 명이 자나간다. 엥 근데 쟤 머리도 주황색이고 옷도 사복이잖아 ??? 걔다가 슬리퍼? 아휴 쟤는 오늘 학주한테 걸리면 벌점으로 안 끝나겠다.
"저기...!"
오 다행이다 돌아본다..! 어 근데 쟤는.....

우리반 일진이잖아 ?!?!?!?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못 본 내 탓이다. 무섭기로 소문난 일진을 불러버리다니. 근데 벌점 받는 건 죽어도 싫은데... 일단 물어라도 봐야겠다.
"담 넘는 것 좀 도와줄래?"
일진은 나를 이상한 사람을 보듯이 쳐다봤다.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고.. 나도 지금 엄청 쪽팔리니까...
"너 그 상태로 학주한테 걸리면 엄청 혼날 것 같은데 나 담 넘는 거 도와주면 나도 너 넘을 수 있게 도와줄게!"
일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휙 하고 담 위로 올라갔다.
"난 너 없이도 올라갈 수 있거든, 이 땅꼬마야."
땅꼬마 ?!?!? 160이면 작은 키는 아니거든???
160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는 가방을 담 너머로 던진 뒤 담 위로 냅다 손부터 올렸다. 그리고 바로 포기했다 ㅋ
역시 안 되는구만.
"저기 나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나 진짜 벌점은
안 되거든... 소원 하나 들어줄 테니까 제발.."
"하나만 들어줄 거야?"

일진은 힘들지도 않은지 담 위에 아예 쭈그려 앉아서
나에게 물었다.
"소원권 2개..."
그러자 일진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헉 진짜 도와주는 건가??? 내가 멍하니 있자 일진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뭐 해. 올라와."
"고마워! 일진이라더니 넌 엄청 착하구나!"
헐. 금기어를 뱉어버렸다. 일진한테 일진이라고 하면 안 되는데... 나는 이 상황을 무마하려고 일단 아무말이나 했다.
"아.. 그니까 소문이 그렇단 거지 소문이. 난 소문 안 믿어.
넌 정말 좋은 일진 아니 좋은 학생이야, 응."
푸핫.
옆애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하 쪽팔려...
"너 진짜 웃긴 애구나?"

"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아무튼 도와줘서 고마워. 난 더 늦기 전에 가볼게!"
일진은 달려가려는 찰나에 내 가방끈을 휙 잡아 당겼다.
?!?
"소원권. 지금 쓸래."
"어..? 응, 알았어 빨리 말해줘 나 가야 돼서."
"넌 내가 안 무섭구나?"

"응 나 소문 안 믿는다니까. 네가 사람 때렸단 거랑
여자가 많다는 소문 같은 거."
일진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너 전교 1등 맞지? 나 공부하는 것 좀 도와줘.
이거 소원권으로 쓸게."
"응응 알겠어. 나 빨리 가야돼. 수업 늦으면 안 돼서. 안녕!"
아... 그때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그 뒤로 일진은 매
쉬는 시간마다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
.
.
이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