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ㅣ연락 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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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무런 꿈을 꾸지 않은 채 일어났다. 맑은 정신으로 잠에서 깨니 기분이 좋아지는 건 물론, 오늘은 운이 좋을 것이라 직감했다. 일어나자마자 집어든 핸드폰. 웬일인지 남자친구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원래 아침마다 좋은 아침이라며 전화를 해주던 남자친구였는데. 하지만 그 정도는 주말 아침이라 늦잠을 자는 듯하다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모든 걸 계획에 맞춰 살아가던 나는 오늘도 평소와 같은 일상을 사는 듯했다. 주말 아침, 잠에서 깨면 견과류와 과일을 넣어 갈아 만든 주스를 마시고, 스트레칭을 한 뒤 남자친구와 연락을 하며 웃는 사소한 일상. 하지만 오후가 됐는데도 남자친구에게는 연락이 전혀 없었다. 내가 한 연락조차 읽지 않는 남자친구에 점점 불안함을 느꼈다.
내 계획과 일상의 일부인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니 내 계획도 깨졌다.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 ‘연락이 안 올 수도 있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라는 생각을 한지도 몇 시간.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남자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몇 번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집 안.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일러스트레이터인 남자친구가 새벽까지 작업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에 지금까지 자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하도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이웃이 나와 나에게 한소리했고, 기가 죽은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려다 멈칫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전에 남자친구가 나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작업 때문에 조금 늦을 것 같다며 먼저 집에 들어가 있으라고 나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꽤나 오래된 일이기에.
억지로 기억을 짜내려 노력했지만 내 뇌는 멈춘 듯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연락한 기록을 뒤져보기도 하고, 자동으로 녹음된 통화 기록을 듣기도 했다. 솔직히 시간을 때우고 있으면 잠에서 깬 남자친구가 나에게 온 연락을 보고 집에서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만 속절없이 지날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골머리를 앓던 중 생각난 한 가지. 분명 남자친구는 나에게 자기가 그린 일러스트의 생일을 비밀번호로 해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그린 일러스트는 많았고, 그 생일을 전부 눌러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번, 두 번 틀리고 나니 완전히 틀릴 것이 두려워졌다. 집에 있는지라도 확인하고 싶은데, 당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떠오른 방법. 주차장으로 가 남자친구의 차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남자친구는 아주 가까운 곳을 가더라도 차를 끌고 가는 성격이기에 만일 집에 있다면 주차장에도 차가 있을 게 분명했다.
큰 주차장을 몇 바퀴나 돈 결과, 남자친구의 차를 찾았다. 며칠 전 세차를 했다며 신나하던 그의 모습이 상기되었다. 차는 새차인 것처럼 깨끗했고, 세차를 한 뒤 몇 번 타지 않은 듯했다. 그렇다면 남자친구는 지금 집에 있다는 것.
차를 확인하니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차라리 차가 없었더라면 어디 나가서 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제는 예상조차 못한다. 내가 세울 수 있는 가설이라고는 오직 ‘잠’ 뿐. 연락을 자주하던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한 일러스트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를 형상화해서 그린 일러스트라며 그 일러스트의 생일을 비밀번호로 저장했다고 했다. 나는 그게 생각나자마자 바로 남자친구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제 남자친구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손이 떨려왔다. 몇 번 삐끗했지만 마침내 문이 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