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ㅣ나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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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할 사람이 있다면 제발 나를 구원 해주길. 이 늪에서 제발 빠져 나오고 싶다. 아무리 추리를 하고 가설을 세워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제 아무리 대단한 추리일지라도 흠이 있었다. 설명하지 못할.
지금으로써는 당최 ‘왜’를 설명할 수 없었다. 만일 남자친구를 살해한 인물이 ‘나’일지라도. 아니, 나라면 더욱 설명되지 않았다. 내가 대체 왜, 그것도 내가 가장 사랑하고 지지하는 애인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제 꿈에 나와 증거를 말 해준다는 건 알았으니, 추리라도 하는 게 내 일이다. 남자친구도 원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범인 찾는 것을.
하지만 여기서 또 의문이 든다. 대체 왜 남자친구는 범인을 바로 말 하지 않고 증거만 얘기해 내가 추리하게 만드는 것일까. 평소 눈치가 빠른 나는 남자친구의 심리와 생각 맞추는 것을 잘했다. 하지만 꿈 속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남자친구에 전혀 추리할 수 없게 되었다.
대체 나는 누구한테 기대고, 누구한테 기도해야 하는 것인가. 종교가 없던 나도 누군가를 믿고 싶다. 제발, 나에게도 신이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신은 내 남자친구였는데, 그 남자친구마저 없으며 심지어 그 남자친구가 나를 힘들게 하고 있으니. 나의 신이 나를 배신한 채 나를 괴롭게 하는 거나 다름 없었다.
나의 신에게 증거라도 조금씩 받으려면 잠을 자 꿈이라도 꿔야 하는데, 잠도 오지 않았다. 잠도 오지 않고 추리도 더이상 되지 않아 나는 결국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글이나 쓰며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다.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그 때문에 내가 상상을 하며 추리할 수 있는 거니까.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써내려 가려 했지만 내 머릿속은 ‘김태형’으로 꽉 차있었다. 글 쓰는 게 재미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는데 글 쓰는 것도 힘드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제발 반 페이지라도 쓰고 싶었다. 글 쓰는 게 이리도 간절할 줄이야.
나는 결국 글 쓰는 걸 포기한 채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불가능했다. 이미 책 하나 때문에 인생에 꽃이 핀 나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 하나로 나를 돌아선다면, 그만큼 비참한 순간이 없을 것이다. 무참히 밟히는 나와 아무 잘못 없는 책을 바라보며 나는 절벽 아래로 떨어질 테니까.
제발 살인은 아니길. 범죄에 관련된 사건에 연루된다면 나까지 피해를 본다. 내가 피해 보는 건 죽어도 싫은 성격이기에 용납할 수 없었다. 단순히 여행을 갔는데 나에게 연락하지 못한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여러 생각을 하다보니 뇌가 일을 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에 들었다. 이번 꿈에서도 남자친구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남자친구가 웃고 있었다. 입꼬리를 억지로 잡아당겨 웃는 듯했지만, 내가 평소 보던 네모난 입의 미소였다. 나는 점점 그에게로 다가갔다. 멀어지지도 않았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 주었다.
나와 그가 최대로 가까워진 순간. 얼마 안 남은 그때, 남자친구의 표정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환한 미소는 전혀 보이지 않고, 살기 어린 눈빛만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 살기에 짓눌려 뒷걸음질 치려고 하자 그가 내 어깨를 꽉 잡았다. 어깨가 으스러지는 기분이었다. 인상을 쓴 채 신음을 하며 그를 올려다 보자 그가 입꼬리를 한 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나 죽었어.”
“나 죽은 거 맞으니까 부정하지 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