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이야기는 시즌2 3화와 이어집니다.)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던 북동 제국의 밤이 지나고
어느덧 다음 날이 되었다.
"J 가문의 공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백호는 이른 새벽부터 집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하며 아론과 잡담 중이다.
업무를 보기 전에 보고 온 황제의
곤히 잠든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예, 재상님. 남서 제국 J 공작 가의 가주가
우리 제국으로 왔다고 하더군요."
"J 공작 가라면, 꽤 명문가군요."
"예, 제국 최고로 부유하지만
언제나 아랫것들에게 친절하고
가문의 구성원들 모두가 살인을 저지른 일이 없어서
백성들의 지지율이 아주 대단합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한 하인이 말을 전했다.
백호가 예전보다 많이 온화해져
예전보다는 겁내거나 손을 떨지 않아 다행이다.
"재상님, J 가문의 가주께서 찾아뵙는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빨리 온다고?
흠, 들어오시라 하거라."
하인들이 공손하게 문을 열어드리자
소문으로만 듣던 공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재상님.
그리고 아론 공작님. 종현 후작입니다."
그는 소문대로 온화하고 선량해 보였다.
그의 뒤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가 있었다.
이 여자는 어젯밤 렌과 대화를 나누었던 여자다.
"그래, 반갑구나.
그런데 후작 뒤의 분은?"
"아, 하하.."
백호가 누구인지 묻자 여자는 멋쩍게 웃더니
금세 얼굴이 새빨개졌다.
"저, 저는 종현 후작님의 부인이에요!"
"후작 부인이었군, 편히 쉬다 가거라."
"예에.."
후작 부인은 백호가 말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얼굴이 더욱더 새빨개져 갔다.
'낯을 많이 가리는구나.'
정작 백호는 낯가림으로 알아서 다행이지만.
-
"후작 부인, 소문으로만 듣던 백호를 보니 어때?"
"너, 너무 멋지셨어요!"
잠시 후, 렌과 후작 부인은 어제에 이어서 또 만나
목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자네가 백호한테 딴맘이 있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
계획이 성공하면, 백호는 자네가 가져."
"예. 감사합니다, 재상님!"
"곧 여황제가 반응을 보일 거야.
생각만 해도 통쾌하다! 안 그러느냐?"
-
그렇게 렌과의 대화를 마무리한 후작 부인은
몇 주 동안이나 백호를 쫓아다니며
그를 유혹하려 이것저것 시도했다.
계획 실현을 위해.
"...재상님,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뭐.. 오늘도 왔구나."
후작 부인의 인사에도 백호는 심드렁했다.
오직 그의 머릿속에는 황제와 공자만 있는 걸 어찌하는가.
"재상님, 저와 함께 산책을,"
"업무가 많구나."
그 순간 백호가 그토록 사랑하는 황제와 공자가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섰다.
"재상!"
황제가 백호를 부르면서 활짝 웃으며 들어섰지만
후작 부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아바마마-! 뵙고 싶었어요!"
"그래, 우리 공자."
다행히 백호와 공자 둘은 표정이 밝다.
"후작 부인, 잠깐 시간 좀 내어주게."
"..무슨 일이시죠, 폐하?"
"잠깐이면 되네.
재상, 잠깐만 공자를 부탁해요."
-
황제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후작 부인을
산책로로 불러들였다.
"왜 그러세요, 폐하?"
"자네 지금 몰라서 묻는가?
내 아이까지 낳은 재상에게 단둘이 시간을 보내자느니,
함께 저잣거리에 나가 보자느니 하지 않는가.
심지어 자네는 지아비도 있는데도,"
지금만큼은 소심한 황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백호를 건드리다니,
화가 날 만했다.
"폐하, 저한테 하실 말씀은 아닌 듯한데.
민현 폐하께 딴맘을 먹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상상치도 못한 후작 부인의 말에
황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봤자 증거도 없,"
"저는 후작 부인입니다. 게다가 우리 가문은
선량하고 거짓을 모르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 누가 J 가문의 후작 부인이 거짓을 고하겠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심지어 상대는
공자의 아버지가 누군지 이미 속였는데."
후작 부인은 렌에게 배운 대로 한 마디 한 마디
정성스럽게 뱉어냈다.
그 모습은 황제에게는 어떤 무엇보다도
가증스러워 보였다.
"...원하는 것이 뭔가?"
"백호 재상님을 제게 주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