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暴君) , 독을 품다

시즌2 5화 사랑하지 않아

(본 이야기는 시즌2 4화와 이어집니다.)




"...재상을 달라니?"


"저는 오래전부터 그분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후작 부인의 아름다운 외모와 어리버리해 보이는
첫인상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을 법한 말이 나왔다.


"재상은 내 약혼자이네."


"알고 있습니다.
허나 재상님을 제게 주시지 않으면
황제가 함부로 외도를 저지른 죄로
자리를 박탈당하시는 데다가

민현 폐하께서 살아계시지 못할 겁니다."


사실 황제 자리 따위는 황녀 시절 때나
갖고 싶어했지, 이젠 필요없었다.
하지만 민현이 위험해진다면 말이 달라지지.


"재상님은 제게 주시고, 폐하께서는
민현 폐하와 떠나십시오, 그러면 되는 거 아닙니까?"


"...."


"말이 없으시니, 승낙의 뜻으로 알겠습니다."


후작 부인은 평소에는 볼 수조차 없었던
가증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렌의 처소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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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 왔어?"


방금까지 벌어진 일을 알 리 없었던 백호는
그저 평소처럼 환히 웃으며 황제를 반겼다.


"어마마마, 주신 책 다 읽었어요!"


아버지를 닮아 영특한 공자 또한
황제를 반가워하며 사랑스럽게 웃었다.


"...공자야, 잠깐 민현 폐하랑 놀고 있어.
어마마마가 좀 바쁘구나."


"민현 폐하요? 좋아요!
아바마마도 같이,"


"백호야, 넌 나랑 얘기 좀."


아쉬워하는 공자를 뒤로 하고
백호는 황제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황제, 갑자기 왜 그래?"


"너, J 가문의 후작 부인 말이야,"


"아, 미안. 걔가 너무 귀찮게 하는 바람에,"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막상 말을 하려니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해야만 했다.


"너, 후작 부인의 정부로 들어가."


"..뭐?"


백호는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순간 농담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황제가 농담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금방 인식했다.


"..걔의 남첩으로 들어가라는 말이잖아? 내가?"


"으응."


"미쳤어? 너랑 나 약혼한 사이잖아.
게다가 걔네 쪽은 후작 가고, 난 재상이야.
더 높은 지위인 내가 정부로 들어가다니."


"어차피 약혼은 비밀리에 했잖아.
그리고 후작 가의 단물을 다 빨아먹고 난 후에
결혼해도 늦지 않아."


"너,"


"왜? 너도 그랬잖아.
날 이용해서 민현 폐하와 결혼시킨 후에
제국을 번영시키려 했잖아.

지금, 이것도 제국을 위한 일이야."


백호는 대화 도중
 너무나도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황제의 모습을 발견했다.


"..네 뜻이 아니야."


"뭐?"


"누가 시켜서 이러는 거지, 맞지?"


어릴 적부터 궂은 일과 아픈 마음을 달고 살았던
백호에게 이 정도 낌새를 알아채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누구야, 이런 일을 시킨 사람."


백호는 대화를 이어나가던 도중
허리춤의 진검을 뽑아 다듬기 시작했다.


"누구냐고."


"시킨 거 아냐."


"...뭐라고 했어."


"누군가가 시킨 거 아니야. 내 뜻이야.
제국이 번영하면 결혼하자.
그때까지만 참아줘, 응?"


"..야,"


"후작 부인, 널 마음에 들어하더라."


"하아.."


백호는 한숨을 작게 내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이제 날 더는 사랑하지 않는구나."


"...."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정부로 보낼 수가 없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난 여전히 너를 사랑하는데."


백호는 씁쓸하게 웃어 보인 뒤
문 밖으로 향했다.


"정부로 들어갈게."


이 말 한 마디를 남긴 뒤 밖으로 나섰다.


-


백호가 밖으로 완전히 나간 후에,
황제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백호가 다른 사람의 정부가 된다는데
왜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심지어 왜 그런 와중에도
민현의 얼굴이 떠오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