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밀조밀 포장마차가 들어앉은 나름 이름 알아주는 상권 가운데도 센터를 차지한 호프집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자기들끼리의 담소가 옆 식당에도 들리는 것을 보니 잔뜩 들뜬 상태임이 분명했다. 나는 그 왁자지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천지훈을 위하여. 그들의 건배사였다. 왜 하필 천지훈이냐? 그는 선한 이였다. 늘 정의로운 마음으로 악인을 처단하고 공익을 위해 싸웠다. 휴머니스트. 그래, 그는 휴머니스트였다. 일반적인 휴머니스트보다 조금 더 확고했고 자기 고집이 쎘을 뿐 영락없었다.
그렇다면 천지훈을 위하는 이는 선한 이인가? 그렇다. 악한 자라면 선한 자를 위하는 마음이 물씬 담긴 소주잔에 취해 고성방가를 내지를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왜 선한 이를 위하는 선한 이에게는 무관심한가. 그것이 세상 이치다. 여태껏 그렇게 굴러왔으며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함께 뛰어갈 것이다. 나는 수긍했다. 커다란 반박을 제기하기엔 난 미약했으며 누군가의 건배사가 될 만큼 위대하지도 못했다.
속으로만 반문을 거듭했다. 천지훈은 정말 누구길래. 천지훈은 정말 마땅히 선한 자일까? 아아 어렵도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명제가 거짓임을 증명하는 편이 훨 쉬울 지도 모른다. 마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꼭 들어맞는 사실보다는 남아있는 사실이란 표현이 옳은 것처럼. 천지훈이 악한 마음을 품은 적은 없는가? 그는 오로지 이타적인 정의심에 불탔는가? 맹세코 단 한번도 자신을 더 위했던 적은 없는 것인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저 위대한 건배사에 이름이 올라가고자하는 욕망이 정의를 자초한 것이라고. 그렇기에 역의 형태로 치환될 수 없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