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ncenzo 03 꿩과 닭 이야기
w. 스몰낫t
집배원이 녹이 슬어 표면이 거칠어진 우편함에 우편 두개를 밀어넣었어요. 저는 그 앞으로 다가가서 뒷짐 진 손에 꼭 쥐고 있던 답신을 불쑥 내밀었고. 집배원은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는데 힐끗 본 그 얼굴은 매번 우리 동네에 걸음하던 집배원과는 닮은 구석 하나 없었어요. 그냥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던 거죠.
코도 더 오똑하니 이목구비의 주관이 뚜렷했고 눈썹도 짙은 게 강한 인상착의를 남긴데다 한 달 새 길렀다고 하긴 어려울만큼 빛을 받아 붉은 빛이 살짝 감도는 곱슬거리는 장발이었어요. 키도 한 달 전 집배원보다 반 뼘은 더 위인 것이 인물이 훤칠하니 남자도 꼬시겠더라고요. 그 새로운 집배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내민 우편을 받아들곤 허락도 채 떨어지기 전에 멋대로 봉투를 뜯는 거 있죠.
그 덕에 나름 정성 들인답시고 밀봉까지 마친 편지지는 뜯긴 자국이 이유없이 씁쓸하게 남았어요. 안에는 제 서투른 필적으로 응하겠다는 답변이 적혀 있었을거예요. 그걸 보곤 집배원은 얄따란 입술 꼬리를 씩 올려 웃더라고요. 어딘가 불쾌한 사랑스러운 상당히 이질적인… 그런 유난스런 미소있죠? 그런 비스무리한 결의 웃음이었어요.
이래도 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긴 했었는데 그 남자는 뭐랄까, 얄팍한 술수로 남을 꿸 그럴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 육감일 뿐이죠, 물론. 그럼에도 그 집배원은 무엇인가 아는 눈치였기에 그저 멀뚱멀뚱 다음 행동을 기다렸거든요.
"이름이?"
"…….태 호요. 외자예요."
새 집배원이 물었고 전 망설이다 결국 솔직하게 답 했어요. 괜히 큰 화를 부르고 싶지 않다는 게 까닭이라면 까닭인거죠. 집배원은 느릿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무얼 생각하는 지 고민하고 있는 찰나 손을 쭉 뻗어 내밀었어요.
"가자. 데려다줄께."
어디를요? 하고 물으려다 끝말은 속으로 삼켰거든요. 입을 벌리려는 도중에 짐작이 확신이 되는 탓에.
처음 타 본 오토바이는 생각보다 썩 근사했어요. 트럭, 중형자, 소형차 할 것 없이 사이사이를 가르면서 가장 빠르게 질주했고 노란불이 깜빡이는 순간에 휙 하고 지나가는 아찔함이 좋았어요.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상쾌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휘황스러웠고요. 그냥 한 순간이 영화 같았어요. 이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같았던 그런.
거기다 새 집배원은 나름 자상한 축에 속했던 것 같아요. 여태껏 악질중에 악질만 골라 만난 탓인지는 몰라도 이상적인 '형'의 모습을 본 뜬 것 같은 사람. 평범한 집배원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닐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저는 그냥 형, 하고 불렀어요. 싫다는 내색 없이 웃어줬고요.
그 형이 닭하고 꿩 얘기를 해줬는데 정말이지 많이 배운 사람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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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 들어봤어?"
새 집배원이 물었다. 태호는 형이라고 일컫고 싶은 그런 자 등 뒤에 살포시 기대 누운 채 이내 생각에 잠겼다. 들은 적이 있던가? 그랬다. 대답 대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푸슬한 머리카락과 자켓이 부벼지는 소리는 바람에 잠겼다.
"그럼 꿩과 닭의 차이는 뭔 줄 알아?"
"……. 꿩이 더 큰 거 아니에요?"
확신은 아니었고 그저 조심스런 추측이었다.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던 난감한 질문에 제법 당혹스러웠다. 못 배운 티 내는건가. 은근한 조바심에 손끝이 입술을 향할 무렵 새 집배원의 옅은 웃음소리가 귀에 꽂혔다. 금방이라도 싱그러운 미소가 눈 앞에 뚜렷히 그려지는 소리였다.
"비슷해. 꿩은 희귀하기도 하고 또 야생동물이잖아. 제멋대로 원하는 만큼 날아다녀."
귀 기울여 들었다. 사람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매력적인 중저음이었다.
"근데 그거 알아? 닭도 실은 날 수 있는 거. 사람 손 안 타고 자연의 보살핌 속에 길러진 닭은 날 수 있대."
"진짜요?"
딱히 의심스러워 되물은 건 아니었다. 적당한 리액션 중 하나를 골라집은 것 뿐.
"응."
새 집배원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둘은 말 없이 상쾌한 바람과 얼굴을 마주할 뿐이었다. 입을 벌리고 있으면 이가 시려울 정도의 쌀쌀한 바람을 지나면서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상당히 철학적인 내용이었다. 의미를 파헤치는 데에는 제법 곤혹스런 기간이었지만서도 끝내 확신의 답은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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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건 사적인 내용이에요. 지금 상황과 별다른 연관도 없기도 하구요. 아무튼간에 그렇게 왔어요, 저는.
그리곤 머릿속에 꿩과 닭 이야기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