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단편

레몬

w. 해찬




윤정한의 머리는 물이 빠진 연한 노란색, 길이는 목을 가렸다. 교복도 단정하게 제대로 입고 다닌 적이 한 번도 없었더랬다. 무슨 짱구처럼 집에 같은 옷만 수십 개 쌓아두는지 겨울이던 여름이던 교복 안에 항상 검은색 티만 입고 다닌대. 노는 건 쌩 양아치처럼 놀면서 사람은 그다지 나쁘지 않아.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라 되려 담배꽁초나 줍고 있지. 입에 항상 물고 있던 건 담배가 아니라, 레몬 맛 사탕이래. 윤정한의 부모는 본 사람이 없대. 고등학교 입학식에도 어째 윤정한의 부모로 보이는 인간들이 나타나지 않더래. 항상 옆에 붙어 다니는 여자애는 윤정한과 전혀 반대되는 사람이더라. 단정한 교복과 새카만 머리카락. 근데 또 걔는 머리가 짧아. 그래도 닮은 거 하나 꼽자면 맨날 걔도 똑같이 레몬 맛 사탕 물고 다닌 다는 거. 공부 성적부터 옷차림, 성격까지 닮은 거 하나 없는 애들이 왜 붙어 다니는지 몰라. 그 모범생 여자애도 윤정한에게 물들었는지 가끔 수업 시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학교에 안 나오기도 하더라. 아, 이름도 많이 닮았더라. 윤정의.



































교복 똑바로 안 입고 다녀? 이번이 도대체 몇번째야, 윤정한.

그래도 이제 머리는 혼 안내네. ㅎㅎ

넌 사람 짜증 나게 하는 데에 뭐 있냐?

미안. 화내지 마아.







예쁘장하게 생긴 눈을 곱게 휘접어 웃어. 매일 아침 이러고 있으니 어찌 내가 안 넘어 갈 수가 있겠니. 결국 얼굴에 홀라당 넘어가 한숨을 쉬며 도리질 하고 있으면 입에 사탕이 쏙 들어온다. 신맛이 확 퍼지는 게 레몬 맛이야.





또 레몬 맛 사탕이야?

으응.

레몬이 그렇게 좋아서 머리도 그렇게 염색한 거야?

네가 생각하기 나름이지. 근데, 우리 지각이야. 빨리 들어가야 해~





또야. 또. 윤정한이 나에게 걸리는 날이면 지각을 면하기는 어려워 결국 사탕을 굴리면서 천천히 들어가. 윤정한 덕분에 중학생부터 착실히 쌓아온 내 생활기록부는 다 날아간 지 오래임을 깨달아서 아예 그냥 막 살기로 작정을 했다. 이 양아치를 또 마냥 미워할 수는 없어. 나 좋다며 따라다니는 애를 어찌 내치겠냐고, 양아치 같이 놀다가도 나에게 맞춰보겠다고 공부도 좀 해보고 행실도 단정히 해본 애한테 뭘 어째. 본디 천성이 나쁜 애는 아닌걸. 착해빠진 윤정의는 결국 또 윤정한을 수긍하고 말아.










윤정한의 집을 찾기는 참 쉬웠다. 까마득한 높이의 경사를 올라가면 보이는 작은 교회 뒤에 있는 집이었으니. 마실 거라곤 물아닌 술 밖에 없는 집이라 그 집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술 냄새가 확 끼쳐. 교회 아주머니들은 하나같이 그 집에서 큰 소리가 날 때면 혀를 쯧쯧 차며 동정을 하곤 했다. 윤정한은 그 동정이 싫어 되려 양아치처럼 굴었대. 머리 색을 노란색으로 빼고, 교복을 풀어 헤치고 다니고. 행동은 양아치처럼 굴면서도 제 아비 같은 사람이 되긴 싫어 술과 담배는 멀리했다. 그래도 제게 오는 동정의 시선은 떨쳐지지 않아.









윤자 정자 의자. 저와 이름이 비슷한 이 아이는 매번 교문 앞에서, 교실에서 마주쳤다. 날카롭게 생긴 눈매로 옷이며 머리며 이게 뭐냐고 화를 내면 또 그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더라. 윤정의가 웃을 때 생기는 보조개에 윤정한은 푹 빠져버리고 말아. 윤정의는 모범생이었으니 윤정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보려 행실도 바르게 해보고 공부도 해봤으나 역시 제 성격에 맞지 않지. 결국 윤정한의 방식대로 굴기로 해. 레몬 맛 사탕을 입에 쏙 넣어주면 안 그래도 큰 눈 더 크게 뜨지. 윤정의는 어이가 없어 뭐하냐고 물으면 곧이곧대로 대답해. 너 꼬시는 중이라고. 그러면 또 착한 윤정의는, 얼굴에 약한 윤정의는 말간 볼에 홍조 띄우네.









원체 무뚝뚝한 윤정의는 윤정한을 툭툭 튕겨내면서도 싫다는 표현은 하지 않아. 한평생을 공부만 하고 살아온 걔는 윤정한이 꼬시면 금방 넘어가지. 다만 윤정이는 꼭 아프면 애가 물러지더라. 이럴 때는 윤정한이 홀라당 넘어가고 말아. 윤정한은 윤정의가 절대 다른 사람 앞에서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안 아픈 게 무조건 더 베스트지만.











정한아아

왜?

나 너무 아파아..









배 부여잡고 끙끙, 머리 부여잡고 끙끙, 보건실 가면 그만이지만 그날따라 윤정한에게 더 앙탈을 부리고 싶더라. 겨울에 태어난 윤정의는 유독 더위를 잘 먹는 아이고 지금은 7월이었다. 안 그래도 올여름 지옥 같은 더위를 자랑한다 그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역시나 더위를 먹었어. 하필 생리통과 겹쳐 정신을 부여잡고 있기도 힘겨워 윤정한 팔 부여잡고 끙끙댄다. 윤정한은 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평소 아프단 말도 잘 하지 않고 감정표현도 없는 애가 제 팔 부여잡고 아프다 하니.





보건실 가자.

으응..





눈치 빠른 윤정한은 얘가 걷기도 힘들어하는 거 금방 눈치채. 그럼 조심스레 묻지.



업어줘?

괜찮아. 여기 사람도 많은데 무슨. 빨리 보건실 가자아..





지나가는 학생 붙잡고 이들이 하는 대화가 어떻냐 물어보면 퍽 연인들의 대화 같다고 대답하겠다. 윤정한은 자신보다 20cm는 더 작은 윤정의가 너무 소중해서 자신에게 사랑을 알려준 이 아이가 너무 좋아서 더 소중하게 대하고 더 다정하게 대하지.



윤정한의 가정사를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윤정한의 아비는 허구헌날 술을 입에 달고 사는 알코올 중독자요 어머니는 윤정한을 낳아 놓고선 도망친 나쁜년이였다. 자신을 거둬줄 마땅한 친척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없었던 윤정한은 사랑을 몰라. 사랑보단 분노, 분노 이후엔 동정을 배운 아이야. 글보다 먼저 배운 건 몸을 지킬 방법이었고. 게다가 아버지가 사채까지 써가며 도박에 발을 들인 이후엔 집에 잘 들어가지 않아. 그냥, 저와 가장 친한 홍지수의 집에서 지낼 뿐이야.



집 앞 교회 아주머니들은 몸 곳곳에 멍이 들어 다니는 윤정한에게 말씀을 하곤 했다. 신은 네가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주시니, 조금만 더 버티면 분명 좋은 일이 올 거라고. 윤정한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신이란 작자는 자신을 과대평가한 게 분명하니까. 윤정한은 신을 믿지 않았지만 가끔 이런 기도를 하곤 했다.



오로지 나만 지옥 구렁텅이에서 구원해달라고.





윤정한은 집에 굴러다니는 레몬 맛 사탕을 항상 가지고 다녀. 집에 레몬 맛 사탕이 그리 많은 이유는 윤정한의 아비가 담배를 끊어보겠답시고 샀다가 장렬히 실패한 흔적임이 분명해. 윤정한은 레몬의 떫은 맛과 신 맛을 좋아했다. 또 가을에 태어났음에도 여름을 좋아해서 여름을 닮은 건 레몬이라서.





윤정한은 열여덟 평생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었을 뿐더러 해본 적도 없었다. 사랑 그딴 건 개나 주라지. 그래도 사랑은 해보고 싶은 걸. 되도 않는 사랑놀음은 해봤다. 윤정한의 예쁘장한 얼굴에 좋다고 달려드는 여자 몇 명 골라서 사귀어 봤는데, 그냥 그렇더라.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요. 근데 윤정의가 딱 답이 아니겠니. 윤정한에게 진짜 사랑을 가르쳐 준 건 윤정의지.

























눈을 뜨니 팔 옆에 노란 머리가 자고 있더라. 폐부에 들어서는 공기가 눅눅하고 교복은 약간의 땀으로 젖은 게 곧 비가 올 모양인 듯싶어. 시간은 이미 5시를 훌쩍 넘긴 뒤야. 보건 선생님은 여태 안 오셨나.





윤정하안. 일어나.





툭툭 건드려 깨우면 잠귀 밝은 윤정한은 금방 일어나지.





집 가자.

몸은 좀 괜찮아졌어?

으응, 아까보단. 조금 있으면 비 올 것 같은데 어서 가자.





집 가잔 소리에 윤정한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져.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두운 표정은 금방 지우고 방긋 웃으며 말해.





그래, 집 가자. 일어나. 어어, 조심하고.





침대에서 내려오다 넘어질 뻔한 날 잡아준 윤정한에게 본능적인 의문이 들지. 얜 왜 이렇게 나에게 잘해줄까. 어느새 입에 배어버린 레몬 향을 곱씹으며 생각해. 그러나 윤정의도 사랑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아.









윤정의는 대가 없는 사랑은 없다는 말에 너무나도 일찍 수긍해버린 아이였다. 대한민국의 잘나가는 기업 딸로 태어남은 생각보다 더 부담이 큰일이야. 좋은 성적은 필수요 제 원래 성격까지 굽혀가며 살아야 하니. 그리 살아도 사랑 많이 받으면 문제는 없겠다. 정의의 아버지는 일찍이 외간 여자와 바람이 나 가정에 관심을 거둔지 오래, 정의의 어머니는 사치에만 관심을 들이부은 지 오래. 말 그대로 자신만을 바라보는 평범한 가정의 사랑은 꿈도 꾸지 못했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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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또미완이죠!! 얼레벌레 김해찬은 일을 저질러만 놓고 마무리 지을 줄을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