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단편

불온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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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 소재 다수 포함
욕설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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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온한 여름                       







"이 썅년이!"
"뭐? 이 인간말종 새끼가 -"


아뿔싸, 또 시작이구나.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나는 귀에 이어폰을 꼽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간절하게 빌었다. 

정말 신이 있다면, 나를 구원 해 달라고. 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구렁텅이에 빠진 이들을 구원 해주고, 죄가 있는 자들을 심판하고. 단지 그뿐이지.

허상에 대고 죽을 듯이 빌었다. 나도 천국에 가고 싶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떠받들어대는 천국에 가고 싶었다.

"야! 너 나와봐!"

나는 헛된 기도를 잠시 접어두고 방을 나갔다. 

"왜요."
"왜?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니 애미년이 그리 교육 시키디?"
"뭐요? 자식한테 말투가 그게 뭐예요!"

나는 미간을 구겼다. 싸우려면 지들끼리 싸울 것이지, 매번 나를 불러내 꼭 논쟁을 한 번씩은 더 한다. 그리고 또 서로 때리고, 나도 때리고. 

"인상 안 펴? 어디서 배워먹은 싸가지야!"

굴러다니는 술병, 내 이마를 그 빌어먹을 손가락으로 또 계속 툭툭 치시는 아버지. 나는 술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신이시여, 저는 아마 이러면 천국에 가지 못하겠죠?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까짓거 지옥에나 갈게요.

엄마가 날 껴안았다. 술병의 반쪽을 어머니가 들고 있었고 나버지 반쪽은 어디갔는지 알 수 없었다.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너, 너.."
"오늘 이 일은, 너에겐 없었던 일로 하자. 엄마가 한 일로 하자."

엄마, 제가 사람을 찔렀어요. 분명 어렸을 적엔 작지만 따뜻했던 엄마의 품이 이젠 한 없이 작아져 엄마가 날 껴안는게 아닌 내가 엄마를 껴안는 꼴이 되었다.


"엄마, 나는 천국에 가고 싶었어요. 꿈과 환상이 가득하다는, 신의 낙원에.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고."

엄마의 덜덜 거리는 손이 내 뺨을 조용히 감쌌다. 울지 마요, 엄마.

"어서 가. 규리야. 어서."

엄마는 당장 가방에 내 생필품이며 옷이며 모든 걸 쑤셔 넣었다. 그리고 날 현관문 밖으로 떠밀었다.




                       불온한 여름



"허억-"

규리야! 최범규가 내게 소리쳤다. 언제나 이 꿈은 내 기분을 좆같게 만든다. 내 아버지를 찌른 꿈. 내 딴에는 죽으라고 찌른 것이었는데 부족 했는지 치료를 받고 되살아나 날 잡아 족치겠다며 지랄을 틀었다. 내 어머니는 나 대신 죄를 뒤집어 쓰고 깜빵에 들어갔고.


"울지 마 규리야. 또 그 꿈이야?"

최범규가 가볍게 내 눈을 쓸었다. 내게 느껴지는 그의 체온이 한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물론 최범규의 손은 항상 차가웠다만.

"범규야, 넌 내가 사람을 찌른 걸 알면서도 왜 나랑 아직도 친구를 해?"
"동정심."

어렸을 때부터 봐온 오랜 친구의 동정심. 단지 그뿐이라고 최범규는 말했다.

"그렇구나. 동정심.."

응, 알았어.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눈은 찌푸리고 입꼬리는 억지로 올린 괴상한 표정이었다.




                                                불온한 여름       


"규리야, 일어나!"    

최범규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뜨니 그제서야 후텁지근한 열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어.."
"학교 가야지."

최범규가 방문 앞에 기대서는 팔짱을 끼고 내게 잔소리를 하는게 퍽 우리 엄마 같았다.

"아.. 학교 가기 싫은데."

여름이 제일 싫다. 날씨는 더럽게 뜨거우면서 좋은거 하나 없는게 너무 이기적이라 싫어.

나는 미적미적 일어나 검정색 런닝 위에 간단히 교복 셔츠를 걸쳤다. 학주가 보면 지랄할지도 모르겠다만 나도 살아야지.

"또 그렇게 입었냐."
"응. 도무지 더워서 살 수가 있어야지."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어제 내가 최범규에게 들었던 답은 이미 머리에서 지운지 오래였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범규도 기억에서 지운 것 같았고.



"..우리 뛸까?"

최범규가 핸드폰을 힐끔 쳐다보더니 내게 말했다.

"으, 싫은데.. 지각이야?"
"응. 2분 남았,"
"뛰어."

나는 최범규의 손을 잡고 죽어라 뛰었다. 최범규의 손이 뜨거웠다. 분명 범규의 손은 항상 얼음물에라도 담가놓은 것 마냥 차가웠는데.

"거기 너네 둘! 지각! 그리고 넌 여자애가 옷 꼬라지가 그게 뭐야?"

학주가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다시 한번 제 아비가 매번 자신에게 했던 행동이 떠올랐다. 나에게 불만이 있을 때 마다 손가락으로 몸 어딘가를 툭툭 치는 행위.

"하지 마세요."

나는 결국 참다 못해 학주의 손을 낚아챘다. 까짓거 벌점 좀 주라지. 

"그래요, 선생님. 안 그래도 지각인데 더 늦겠어요.."

옆에 서 있던 남학생도 거들었다. 쯧, 학주가 혓바닥을 차며 내 손을 뿌리쳤다.



                             
            불온한 여름        



어느날 강규리가 내게 울며 찾아왔다. 제 아비를 찔렀다며. 자신의 손으로 아비를 찔렀다며 엉엉 울었다. 매번 어머니에게 심한 말을 하고 때리고 해도 그래도 아비는 아비인지 규리는 잘못되면 어쩌냐며 걱정했다. 

나는 자주 출장을 나가시는 부모님 덕에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갈 곳이 없다는 규리를 우리 집에서 살게 했다. 

규리는 항상 그랬다. 천국에 가고 싶다고. 그 잘난 구원자의 낙원에 발이라도 들여보고 싶다고. 신을 믿음으로써 자신도 좀 여유를 가져보고 싶다고.

나는 그런 규리를 죽도록 사랑한다. 울기만 했다 하면 가슴 한편이 욱신댔다. 나는 신 따위를 믿지 않았다만 규리는 믿었다. 맹신했다. 규리가 날 죽이려 달려들어도 기꺼이 죽어줄 의향이 차고 넘쳤다. 그리고 규리는 내게 물었다. 나는 사람을 찔렀는데, 왜 아직도 친구로 지내느냐고. 나는 제대로 대답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널 사랑한다고 말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방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그래서 난 그냥 동정심이라고 대답했다. 오랜 친구의 동정심. 내 신에게, 감히.








                     불온한 여름 





"범규야, 넌 여름이 좋아?"
"왜?"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나는 학교가 끝난 후 스탠드에 앉아 범규에게 물었다.

"음.. 좋아해. 특히 여름바다."
"왜 여름 바다를 좋아해?"

최범규는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하다 내게 말했다. 

"너 닮아서."
"뭐?"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여름을 싫어하는 내가 여름바다를 닮았다니.

"그냥, 네 분위기가 그래. 네가 여름을 싫어하건 말건." 
"응, 그런가. 너도 그래."

너도 여름을 닮았어. 차게 식은, 불온한 여름. 최범규의 차디찬 체온과는 달리 뜨거운 여름.




                  불온한 여름



"있잖아, 규리야."
"응?"
"나 너 좋아해. 많이 좋아해."

최범규가 내게 말했다. 

"어..?"

최범규는 분명 날 동정할텐데. 날 사랑할리가 없는데. 

"난 신 안 믿는데, 넌 믿을 수 있어. 맹신해."

네가 내 신이야. 최범규는 나지막이 말했다. 신의 낙원을 원하는 내가 최범규의 신이라니, 이질적이었다.

"난 널 위해서 기꺼이, 내 온 몸을 바쳐서라도 네가 지옥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어."

최범규의 사랑고백은 신에게 바치는 일종의 독백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내 추종자를 사랑한다.

"응, 나도 범규야."

나는 최범규를 껴안았다.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신의 낙원은 여기인 듯 싶었다. 그에 최범규는 날 확 안아 올렸다.


더웠다. 얇은 런닝 위로 걸치고 있던 교복 셔츠를 벗어 던졌다.

난 평생 사랑하는 사람과 시시덕 거릴 일이 없을 줄 알았지만 지금 이렇게 잘 놀고 있었다. 잘 놀고 있었는데. 


"딸, 참 즐거워보인다?"
"당신이 왜 여기..!"


최범규가 날 뒤로 숨겼다. 큰 키 덕분인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내 아비의 얼굴도.

"네가 우리 규리 친구구나? 이름이.. 최범규. 최범규.. 그래."

입꼬리가 뒤틀려 올라가는게 눈에 훤히 보였다. 흡사 신에게 덤비러 온 악마마냥, 신의 추종자를 망치러 온 악마마냥.

"규리야. 강규리. 앞으로 자주 보게 될거다. 우리 규리. 이 애비는 규리 많이 보고 싶었다?"
"꺼져. 낯짝도 좋지. 당신이 여길 왜 와!"
"우리 규리야 말로. 나를 찔러 놓고서, 지 엄마를 교도소에 들어가게 해놓고서는."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구역질도 나왔다. 내가 저지른 짓과 저 인간이 저지른 짓이 함께 떠올라 심히 뒤틀렸다.

난 내 아비를 죽이려고 했고, 내 아비는 자신의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 신에게 묻는다면, 내가 저 지옥 끝까지 처박히지 않을까. 

"그만하시죠. 오늘은 가세요."

최범규가 아버지를 쏘아보곤 내 손을 끌고 도망쳤다.







      불온한 여름




"범규야. 우리 아버지가 너한테 해코지 하면 어떡하지."

나는 손톱을 뜯으며 물었다.

에이, 설마. 범규는 손사래를 치며 날 껴안았다. 괜한 걱정 하지 말라고. 막연하게 그냥 괜찮을거라며 말했다.

"괜찮을거야, 규리야."

범규는 내 입술에 입을 맞댔다. 아주 짧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