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말랑이래요
수빈 ver

"야 너네는 지금 고딩이랑 연애 할 수 있어?"
"수갑 찰 일 있냐? 나이 차이가 몇인데.."
"..근데 어렸을 때부터 보긴 했어"
"흠.. 예쁘면 가능"
"지랄.. 됐다 꺼져"
뭐야 이거 네 얘기였냐? 진지한 고민이였어?
그제서야 깔깔 거리며 박장대소 하는 동기였다. 하나도 안 웃긴데. 난 심란해 죽겠는데. 말 없이 소주만 들이키자 앞에 있던 태현이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형, 좋아하는데 나이가 어디있어요. 고딩이면 몇 살 차이도 안 나네."
"너무 어릴 때부터 봐서 지금까지 그냥 동생으로만 봐왔는데"
..요즘 미치겠어 걔 때문에. 또 한 번 안주 없이 소주만 들이키자 태현이가 억지로 고기를 쑤셔 넣어줬다. 그리곤 혀를 차며 말 했다.
"형은 진짜 병신이다 병신.."
"형한테 병신이 뭐야"
"꼰대."
"야-"
***
여주가 간호해준 이후로 거짓말 처럼 몸이 쌩쌩해졌다. 다시 알바도 가고 학교도 가고 일상 생활을 하는데도 존나 이상했다 그냥. 내 일상에 김여주 하나 빠졌다고 나사 풀린 놈 마냥.. 나도 참 웃겼다. 그 때 여주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났다.
"내가 옆에 있는게 그렇게 싫어요? 저도 이제 오빠 안 좋아해요 착각 하지마요 진짜!"
아닌데. 네가 옆에 있으면 미친놈 처럼 입술부터 부딪힐까봐 그랬던건데. 그 생각에 한숨이 끝도 없이 나왔다. 이제와서 들이댄다 해도 여주는 이미 임자가 있어 보였다. 그 때 봤었던 남자. 비를 맞으면서도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그 때.

"무슨 생각해? 아까부터 집중도 못 하고"
"아, 미안. 오늘 회의 끝난거지? 나 먼저 일어난다"
"..얘들아 나도 먼저 가볼게."
카페에서 서둘러 짐을 챙기고 조별팀들과 헤어지던 때 아까부터 불편했던 박수영이 빠르게 따라왔다. 하 씨..
대충 곤란하단 표정을 지으며 박수영을 바라보자 그제서야 내 옷 소매를 잡으며 울상을 지었다.
"너..왜 자꾸 나 피해? 그 땐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미안한데 수영아. 그 얘긴 끝난 거 아니였어? 나도 네 사과 받아줬잖아"
"나는 너랑 다시 잘 해보고 싶은데.. 그 때 이후로 자꾸 피하는게 보이니까 나도 답답해서 붙잡은 거야. 우리 얘기 좀 하자"
"...야 박수영"
우리가 멀쩡하게 대화 할 사이야? 내 말에 박수영이 팔짱을 끼며 특유의 예쁜 미소를 보였다. 아오, 진짜..
거칠게 팔을 뿌리치자 그제서야 머리카락을 휙 넘기며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야! 키스 한 번 했다고 이렇게 벌레 취급 해도 돼?"
"그냥 꺼져 좀,"
시발 짜증나게.. 미련 없이 뒤를 돌아 걸었다. 얼마 전 길거리에서 여주를 발견한 내가 손을 흔드려 하자 박수영이 내 손을 붙잡고 키스 했었다. 그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그 장면을 여주가 봤다는 게 심란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짜증나는 건,
여주에게 답답하게 구는 내 자신이였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시간을 보니 여주가 학교 끝날 시간이였다. 데리러 가면서 얘기 좀 해야할 것 같았다.
***
나는 지금 죽을 맛이다.
"저기 둘 다 진정하구..."

"그쪽 다 정리한 사람한테 제멋대로 찾아와서 뭐하는 거냐고요. 예의를 밥 말아먹었나"

"그쪽도 여주한테 연락없이 찾아 온 것 같은데 누구보고 예의를 운운해요. 할 말 있어서 찾아 온거라고"
ㅅㅂ 이게 무슨 일이야...
기분 좋게 가방을 메고 운동장을 와다다 질주하고 있는데 교문 앞에 익숙한 두 뒷통수가 보였다. 한 명은 연준 오빠 한 명은.. 수빈오빠?!?! 하면서 뛰어갔더니 심상치 않은 살벌한 분위기에 말리지도 못하고 쩔쩔 매는 중이다.
"둘 다 그만하고!.. 나 집에 갈래 그러니까 둘도 얼른 가"
"..하, 그래 가자. 데려다 줄게"
일부러 수빈오빠의 눈을 피했다. 맞아 난 다 잊..지는 못 했지만 정원이 말대로 나 좋아해주는 사람 만나야돼. 그게 맞는 말이다. 일부러 연준 오빠를 재촉했다. 이 자리에 더 있다간 둘이 몸싸움이라도 날 것 같아서.

"김여주!"
"...연준 오빠. 빨리 가ㅈ,"
"좋아해. 좋아한다고!"
"..."
어?
옆에서 연준 오빠가 욕을 중얼 거리는 것 같았지만 너무 놀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뒤를 돌아 수빈 오빠를 봤을 땐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해진 예쁜 눈으로 나를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내가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해 늦게 말 한 것도 미안해"
"..오빠 잠시만"
"나 좀.. 봐주면 안 돼?"

"씨발,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오빠 그냥.. 가자"
싸우지마요..싫어요. 오빠의 팔을 붙잡고 뒤돌아 걸었다. 연준 오빠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짧게 내쉬며 나를 따라왔다.
"..여주야 너 지금 떨고 있잖아"
"아..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너도 참,"
됐다. 데려다줄게 얼른 가자
머리가 아팠다. 수빈 오빠는 괜찮을까? 너무 복잡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게 맞는지. 집 방향에 맞게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정신을 차렸을 땐 다 왔다며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연준 오빠가 있었다.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집에 들어갔다.
나 이제 어떻게 해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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