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

"뒤지고 싶냐고오옥!!!!!
개새끼야악!!!!!!!!!!!!"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왜 둘이!!!!!!!
붙어있는데에에엑!!!!!!!"
"김여주 씨가 다친 바람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 다쳤다고? 정국 씨의 말에 윤기 씨는 급 심각해진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붙잡고 뚫어질 기세로 쳐다봤다. 사실 정국 씨가 윤기 씨 앞에서 이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라길래 설마 진짜 사람 피에 반응이 있는 걸까 싶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다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윤기 씨 표정만 더 심각해질 뿐이었다.
"괜찮아요. 그냥 살짝
베인 것뿐이에요."

"뭘 어떻게 하면 피가 나···.
조심해."
"··· 넹."
뻘쭘해서 옆을 돌아보니 정국 씨는 이미 가버린 후였다. 언제 가셨대. 살짝 열려 이미 부서진 문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저거 또 정국 씨가 고치겠지···. 또 언제 부수게 될지가 의문이었다.
윤기 씨는 부엌으로 가 남은 채소 잔해들을 살폈다. 식칼 두 자루를 양손에 붙들고서 날 바라보았다. 그에 난 그걸로 다친 게 맞는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윤기 씨는 나 대신 채소를 정리했다. 나서서 내가 한다니까 윤기 씨는 다쳤으면서 뭘 하냐며 날 소파에 앉혔다.
"아직 밥 안 먹었어?"
"네, 아직···.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앞으로 요리는 하지 마.
내가 다 쫄린다."
뭐요?! 도도도 달려가 윤기 씨를 살짝 콩 하고 때렸다. 윤기 씨는 하나도 안 아픈 표정으로 맞은 부위를 붙잡고 아··· 아···. 하며 신음했다. 오버한다, 또. 그러고 나서 윤기 씨가 해준 밥을 먹고 같이 낮잠을 잤다. 메뉴는···, 언제나처럼 선지 듬뿍 해장국.

"여주, 일어나."
"조금만··· 진짜 조금만···.
5분만 더요, 윤기 씨···."

"오빠 하면 10분 더 줄게."
"······."
"얼른."
"··· 윤기님."
"일어나."
도저히 오빠 소리는 못 하겠기에 님을 붙여버렸는데 삐진 건지 윤기 씨는 누워있을 시간을 하나도 주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아예 날 집어 들어서 업고 거실까지 걸어갔다. 히익. 자동으로 겁이 났다. 설마 업어치기 하려는 속셈인가.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다르게 윤기 씨는 날 살포시 소파 위에 앉혔다.
"왜, 왜요. 무섭게."

"우리 둘이 중대하게 할 일이 있어."
"뭔데요···?"
다소 진지해 보였다. 잘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졸린 눈을 크게 뜨고 윤기 씨를 바라봤다.
"네가 아직 완전히 내 신부가
된 게 아니라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러 가야 돼."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니까 쉽게 말하자면 혼인신고."
우와 여러분, 축하해 주십시오! 김여주 부모님도 모르게 고작 스물다섯에 갑자기 만난 남자랑 혼인신고하러 갑니다! 벙찐 표정으로 못 믿겠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도리질했지만 윤기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씻고 옷 입으면 바로 나가게 얼른 준비하라고 했다.
아니 그냥 너 내 신부해라! 하면 끝인 거 아니었어···?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일단 씻으래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너무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갑자기 후회가 됐다. 그때 왜 신부가 되겠다고 해서는 이 사단을 만들어···. 어렸을 때부터 연애든 결혼이든 신중하게 오래 생각해 보고 결정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는데, 그게 완전히 깨져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도 알아. 너
지금 혼란스러운 거."
"······."

"싫으면 나 죽여.
그리고 더 좋은 사람 만나."
그런 말을 너무 진지하게 진심으로 말해서 더 어쩔 수가 없었다. 언젠간 프리해지는 날이 오겠지 하며 일단 차에 올라탔다. 이번엔 정국 씨랑 같이 안 가냐고 물어봤더니 윤기 씨는 질투하며 구시렁댔다. 이거 놀리는 맛이 있군.
잠깐 조는 바람에 어디로 가는지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분위기를 봐서는 여기가 평범한 곳은 아니라는 걸 알 수는 있었다. 윤기 씨가 날 약하게 흔들어 깨워 비몽사몽한 상태로 밖을 보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어째 윤기 씨와 비슷했다. 의문스럽던 도중 생각이 번뜩였다. 아, 사람이 아니구나.
"무서워?"
"··· 살짝요."

"걱정 마, 무슨 일 안 생길 거야.
내가 너 지킬 거니까."
차에서 내리자 성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건물이 살짝 멀리에 보였다. 아마 저기에서 혼인신고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갈 때까지 무조건 윤기 씨의 손을 놓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윤기 씨도 절대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표정이 안 좋은 걸 보니 괜히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이곳에는 우리 말고는 차가 지나다니지 않았다.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아니, 진짜 다른 세계인 걸까.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지나다니는 뱀파이어들이 나와 윤기 씨를 보며 수군거렸다. 윤기 씨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뱀파이어들이 더 많은 곳으로 가면 수군거림은 더 심해졌다. 아예 눈치도 안 보고 비웃거나 말을 하는 뱀파이어도 있었다.
"전정국 말 사실이었네, 여기까지
살아서 온 거 보면 보통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얼마나 가겠냐. 이따 절차
밟으면서 분명히 죽인다에 한 표."
"그런가. 뭐 그래, 민윤기잖아?"
기분이 나빠 한 마디 해주려 그들에게 가려고 했지만 윤기 씨가 날 막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참아, 나 괜찮아 여주야."
"······."
차분하게 날 달래는 모습에 더 화가 치밀어올라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윤기 씨는 그런 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래, 이미 상대할 가치도 없는 것들이었어. 굳게 마음먹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수군거림을 이겨내며 걸으니 어느새 성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근데 혼인신고를 하기엔··· 너무 거창한 건물 아닌가. 도청 같은 데라고 생각하면서 윤기 씨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큰 문 앞에 문지기가 있었지만 윤기 씨의 얼굴을 보고 손쉽게 안으로 들여보내준 덕분이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내부는 정말 고대 시대 같았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니 큰 방 하나가 보였다. 그 안엔 뭔가 지위가 높아 보이는 여자가 크고 높은 의자 위에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이제 확인하셨습니까? 전 근
1년 동안 항상 진심이었습니다."
"기껏해야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으니까. 이제야 신부가
되었는데 내가 널 어떻게 믿지?"
"··· 황태후께선, 제가
그리도 못 미더우십니까."
"그걸 알면서도 또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가 뭐더냐.
벌써 다섯 번째란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몸을 부들부들 떠는 윤기 씨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섯 번째는 뭘 의미하는 말일까.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여기 뱀파이어들이 윤기 씨에게만 유독 안 좋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싶었다. 문득 정국 씨의 말이 떠올랐다. 언제 변할지 모른다는 그 말이.
"그 아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라.
그럼 나도 생각은 해보지."

"이번에도 죽일 거라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럼 당장 이 자리에서
증명해 보아라. 네가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게."
황태후는 날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호위관 하나가 내 팔을 들어 칼로 팔에 상처를 냈다. 곧 상처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칼을 바로 윤기 씨 눈앞에 주어졌다. 윤기 씨의 동공이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 안 돼···. 결국 윤기 씨가 칼을 집어 들고 말았다.
"저, 정신 차려요, 윤기 씨.
이 사람들한테 또 당할 거예요?"
"······."
"내가 윤기 씨한테 뭐가 돼도
상관없어요. 나 사랑한다면서요."
"······."
"··· 윤기 씨···. 제발···."

"··· 넌 연아가 아니야."
연아···? 생각할 시간도 없이 윤기 씨는 칼을 내 목에 갖다 대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이게 마지막인가 싶어져 눈을 꼭 감았다. 황태후는 그럴 줄 알았다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반년 넘게 잠수타다 돌아왔습니다 헤헷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