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신부

12 . 뱀파이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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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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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여주 씨."





정국 씨는 통화가 종료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다름에 달려왔다. 정국 씨를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정국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어떠한 일이 있는 표정이었다.





"민윤기 씨,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왜요?"





"......"





정국 씨는 무슨 말을 하려다 결국엔 입을 닫았다. 만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불안했다. 다신 볼 수 없을 거라는 말 외엔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제발 알려달라고 해도 정국 씨는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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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자격을 박탈하는 방법
알려줬을 때, 기억하십니까."





"하지 마요···. 싫어요, 나···."





"신부의 손으로 직접
뱀파이어를 죽여야 한다는 거."





"싫어···, 진짜 싫어···.
 할 거야···."





정국 씨는 내 말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흡혈귀 법 제19조, 혼인 시에 계약을 파기하고 싶은데도 신부가 직접 뱀파이어를 죽이지 못할 때 다른 이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민윤기 씨는 그걸 원할지도 모릅니다. 윤기 씨보다 정국 씨가 더 매정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지.





절대 안 된다고 정국 씨에게 개처럼 매달렸다. 혹시라도 윤기 씨가 죽어버리면 나도 따라서 죽겠다고 울고 불며 소리쳤다. 하지만 정국 씨 또한 쉽게 내뱉은 말 같지는 않았다. 김여주 씨가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정국 씨의 목울대가 작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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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고 해서 민윤기 씨를
다시 볼 수는 없습니다."





"윤기 씨 어디 있는데요. 윤기
씨한테 보내줘요,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에요?"





얼마나 매달린 건지 입고 있던 옷의 소매가 말려 올라가 있었다. 정국 씨는 우연하게 나의 맨 손목을 바라보더니 그 상태로 굳었다. 열여덟 살 때 생긴 긴 흉터였다. 과한 시선에 주춤하며 소매를 다시 내리려 했지만 정국 씨에 의해 팔을 붙잡혔다.





"··· 주신고등학교."





"··· 네?"





"주신고등학교 2학년
6반 김여주."





"그걸 어떻게···."





와락. 정국 씨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날 끌어안았다.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쿵쿵쿵.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정국 씨는 날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꽉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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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





"여주야···."





여주였다. 틀림없이 여주였다.





내가 왜 널 못 알아봤을까.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널··· 여주 널···. 그저 이름만 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예전과 이렇게나 닮아 있는 널 어떻게 내가 못 알아볼 수가 있었을까. 이내 난 여주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오빠야, 정국 오빠."





"··· 설마···."





"왜 아무 말도 없이 가버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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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정국 씨의 말에 상대를 나에게서 떼어놓고 눈코입을 모두 찬찬히 살펴보았다. 안경을 벗어서 몰랐던 것일까. 오빠는 여전히 똑같았다.





"내가 어떻게 널··· 몰라봤을까···."





"··· 오빠···."





"지, 진짜 보고 싶었어 여주야···.
진심으로 보고 싶었어···."





오빠는 다시 날 껴안고 끅끅대며 서럽게 울었다. 아버지의 사업 때문이었다. 값이 오르는 주식에 너무 많은 돈을 써버린 탓이었다. 예상외로 금방 망해버린 주식에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도 서슴지 않다 결국 빚을 갚느라 은행 빚이 두 배로 불어났다.





그제야 내 편이 생겼는데, 날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났는데. 오빠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그 이후 현생을 돌보기 바빠 어쩔 수 없이 연락이 뚝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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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떠났어 여주야."





"··· 뭐라고요?"





"민윤기 너 버리고 갔어. 다신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어."





"··· 윤기 씨가 그럴 리 없어요.
어떻게 날···."





"네가 상처받을까 봐 얘기 못 했어,
미안해···. 나도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





오빠의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작정하고 떠난 거야. 이렇게 된 이상 이젠 놓아주는 게 맞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 상황을 외면하기 위해서 내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렇게 가버린 윤기 씨가 미웠다.





"내가 네 옆에 있을게.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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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 여주야."





좋아해, 많이. 네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정국 오빠는 조심스레 입을 맞춰왔다. 감긴 내 눈 사이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굳이 오빠를 밀어내지 않았다. 지금 그런 걸 따지기에는, 윤기 씨가 너무 미웠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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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네 탓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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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가서 행복하게 살아. 너
또 울면서 오면 이번엔 안 받아준다."





"갈게, 나중에 또 친구들이랑 모이자."





"응. 잘 가."





그날 이후 정국 오빠와 같이 살게 되어 석진이네에서 나오게 되었다. 석진이는 내가 가기 전 무슨 말을 하려던 것 같았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다. 신경이 쓰였지만 석진이는 날 진심으로 아껴주는 친구이니 믿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 널
잊어본 적이 없었어."





"진짜요?"





"응. 넌 모를 거야, 내가
너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리 이제 행복하기만 하자. 내가 너 꼭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 오빠는 운전을 하며 신호가 멈춘 사이에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개구지게 웃었다. '정국 씨'로 볼 땐 마냥 어렵고 감정 없는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정국 오빠'로 보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오빠는 7년 전과 똑같았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 수줍어하지만 어떨 땐 진짜 오빠 같은 사람이 되어주는. 이런 오빠의 모습 때문에 기대었던 것인데 과연 내가 지금도 오빠에게 기대도 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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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따로 쓰니까 걱정 마.
아, 아니.. 당연한 거긴 한데."





"네?"





".. 그냥 그렇다고! 선
절대 안 넘을 거야. 진짜로···."





삽시간에 오빠의 귀가 붉어졌다. 못 참고 푸흐흐 웃음을 터트리며 홍당무가 되었다며 귀를 만지니 오빠는 깜짝 놀라 토끼 눈을 하고서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급히 집으로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이젠 정말 행복해도 되겠다는걸.

















윤기는 어디로 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