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정국 오빠는 날 끔찍이도 아꼈다. 내가 뭘 하든 꼭 내 옆에 붙어있었다. 그러고는 항상 말했다. 내가 눈앞에 안 보이면 너무 무섭다고.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다고. 난 그런 오빠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도리질하며 그런 생각 말라고 등을 쓰다듬었다.
어쩌면 오빠의 쉼터가 나일지도 모른다. 7년 전 내가 오빠에게 기댔던 것처럼, 오빠도 나에게 기대고 있는 것이다. 뱀파이어 한 명의 매니저 역할을 하며 탑의 관리자로 일하는 건 꽤나 힘든 직업이었다. 전에는 윤기 씨와 탑에 꼭 붙어있어서 몰랐는데, 탑 관리자는 참 많은 일들을 했다. 그중에서도 사람의 시체를 보는 일이 워낙 많은 것 같았다. 하긴 뱀파이어와 관련된 일이니까. 오빠는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수척해 보였다. 하지만 내 존재의 이유로 인해 순식간에 밝은 웃음을 지으며 안겼다. 나 또한 정국 오빠를 놓을 생각이 없었다.

"사랑해."
"······."
"근데 이 말 항상 내가
먼저 하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까 너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해준 적이 없네. 나도 사랑해요, 한 번만 해주면 안 돼? 먼저 해달라는 건 안 바랄게. 섣불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오빠는 이 짧은 시간 안에 사랑한다는 말을 수백 번 해줬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혼란이 와서 자리를 피해버리곤 했다.
"······."
"여주야."
윤기 씨한테는 잘 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정국 오빠와 알아온 시간이 더 많은데도 내가 바라보고 있던 쪽은 윤기 씨가 아닐까 했다. 그리고 항상 받는 쪽은 나였고 '나도.'라는 말을 하는 것 또한 나였다. 그런데 전과 똑같은 이 상황 속에서 왜 난 오빠를 똑같이 대할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윤기 씨를.
윤기 씨, 윤기 씨, 윤기 씨······. 아.

"··· 알겠어, 내가 더 노력할게."
"··· 미안해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알아. 너 아직 정리하기엔 좀 이른 거.
내가 좀 서둘렀던 것 같아."
"오빠···."
괜찮아, 난 서로 같은 마음일거라는 거 믿어. 그 말을 끝으로 날 안고서 나지막하게 사랑한다고 전하는 오빠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오빠가 상처를 받을까 봐 겁났다. 어떻게 해서든지 오빠를 안심시켜야 했다.
"··· 오빠."
"응?"
쪽.

"······."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나 오빠 안 싫어해요. 오빠는 내 행동에 귀엽다며 다시 날 꼭 안았다. 오빠의 마음이 상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 시각 윤기는 미국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가자 무서울 만큼이나 파란 하늘이 그를 반겼다. 그러고는 언젠가 연아와 여행을 왔던 때가 생각이 났다. 좋은 추억 많이 쌓자면서 엄청 돌아다녔었는데···. 윤기는 싱긋 웃으며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안녕 윤기~ 오랜만이야."
(안녕 윤기~ 오랜만이야.)

"그래요, 잘 지내셨어요?"
(그래, 잘 지냈어?)
"물론 나야. 너도 그랬어?
신부의 말을 들어보세요
이름은 김여주예요?
(나야 물론이지. 새로 맞은
신부 이름이 여주랬나?)
미국 뱀파이어 제국에서 일하는 보안관이자 매니저 크리스였다. 크리스는 윤기가 미국에서 살기로 결정한 것을 가장 먼저 들었고, 꽤나 친한 사이였던 둘이었기에 그는 윤기를 맞으러 공항까지 달려왔다.
여주의 얘기에 민감한 윤기는 살짝 놀랐지만 아닌 척 행동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허허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긴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야."
(맞아, 하지만··· 이젠 아니야.)
"··· 또 실수했나요?"
(··· 너 설마 또 실수한 거야?)
"그냥 그런 거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하지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은 약해 보이네요."
(그래도 너무 상심해 하지는 마.
너 많이 쇠약해 보여.)
크리스는 우울해하는 윤기를 애써 위로하며 어깨를 두어 번 토닥였다. 그렇게 크리스의 차에 탄 윤기가 어디로 가냐 묻자 다시 활기차진 크리스는 일단 저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며 엑셀을 밟았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윤기는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더 이상 여주를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한 후였다.
"한국 황후의
"그렇다면 성질은 여전히 똑같은가요?"
(한국 황태후 성질머리는 여전해?)

"그래, 그녀는 쉬운 사람이 아니야
바꿀 사람을 찾으세요."
(응. 쉽게 변할 인물은 아니니까.)
"그건 사실이에요."
(뭐··· 그렇긴 해.)
황태후의 얘기에 윤기는 자신과 여주의 사이가 끊어져 버린 그날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윤기의 주먹에 힘이 불끈 쥐어졌다. 당신만 아니었어도 여주는······. 그러면서도 윤기는 완전히 황태후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여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 상황에서 연아의 이름을 불러오지 않았을 테니까.
"잘 부탁드려요
잠깐 나랑 같이 갈래, 크리스."
(잠시 동안이지만 잘 부탁해, 크리스.)
윤기는 이제 더 이상 신부를 맞지 않을 계획이었다. 어차피 연아를 못 잊을 거라면 더 이상 피해를 보는 신부는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평생, 미국에서 머무를 예정이었다.

"그래도 여주야, 네가 날
죽인다면 기꺼이 죽을게."
하지만 미국에서 보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엔 여주가 보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게 뻔하니까. 그동안 지은 죄를 속죄한다고 생각하지 뭐.
우리 윤기 미국 갔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