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신부

15 . 뱀파이어 신부
















photo

15

















"잠깐."





윤기가 여주를 찾아왔던 날, 결국엔 집 밖으로 나간 윤기를 붙잡은 석진이 노란 포스트잇으로 된 쪽지를 건네었다. 010-1204-XXXX. 김석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윤기가 석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photo
"···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거니까. 내 번호예요."





"······."





쾅. 다리에 힘이 풀린 윤기의 손에 꽃이 들어가 있는 통과 쪽지가 남겨졌다. 연아야 나 진짜 어떡하지. 윤기가 통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무릎에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photo









'윤기야. 내가 네 곁에서 없어지면···
그땐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





photo
'무슨 소리야, 난 너밖에 없어.'





'나 진지해. 꼭 나보다 너 더 사랑해
주는 여자 만나서 질투할 만큼
행복하게 살아.'





"······."





꿈이네. 잠에서 깬 윤기가 하얀 조명으로 밝아진 천장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분명 전에 연아가 했던 말이었어. 연아가 죽기 전 행복했던 때에 했던 말이었다. 그땐 마냥 넘겼는데 이제 와보니 연아는 꽤 진심이었던 것 같았다.





짧은 시곗바늘이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체 몇 시간이나 잔 거야. 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으며 거실로 나오니 식탁에는 윤기가 환장을 하는 선지가 가득했다. 크리스가 차려준 듯한 식사에 아무 의심 없이 의자에 앉은 윤기가 포크를 들었다.





'그럼 윤기 씨는 진짜 저기에
있는 선지만 먹고살아요?'





아, 왜 또. 여주에게 처음 뱀파이어라고 밝혔던 날 그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했던 말이었다. 윤기는 머리가 지끈 지끈해져 급히 찬물을 벌컥이며 마셨다. 나 이제 진짜 잊어볼 거란 말이야. 미국까지 왔는데 네가 또 생각나면 반칙이지. 윤기는 선지를 입안 가득 넣고 과할 정도로 세게 씹기 시작했다.





'저, 정신 차려요, 윤기 씨. 이 사람들한테
또 당할 거예요? 내가 윤기 씨한테 뭐가
돼도 상관없어요. 나 사랑한다면서요.'





photo
"아."





여주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 진짜··· 안 보면 미칠 것 같다. 만감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결국 윤기는 풀어놓았던 짐을 다시 캐리어에 집어넣고 집 밖으로 나왔다. 작은 가방 안에 들어있는 석진이 준 쪽지. 윤기는 휴대폰에 석진의 번호를 저장하고는 공항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한국행 비행기요."





운이 좋아 바로 다음 비행기에 탈 수 있었고 장장 1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윤기는 바로 석진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에 도착했다고 알렸다. 다시 와서 진짜 미안한데, 이젠 정말 못 버티겠다고. 석진은 끝내 아무 말이 없었다.










photo










"··· 김석진."





나도 몰랐던 사실을 석진이가 어떻게 알았을까. 애초부터 난 윤기 씨가 외국으로 떠났었는지도 몰랐고,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석진이가 그걸 다 알고 있었을까.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벅벅 닦고 곧장 석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photo
- 응 여주야.





"다른 거 필요 없으니까,
윤기 씨 탑 주소만 알려줘."





- ······.





"빨리··· 너 알잖아···."





- ··· 여주야.





석진이는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너 이럴 거면 왜 나한테 다 알려줬어? 윤기 씨랑 전부터 연락한 사이였단 것도 난 이제 알았어. 근데 너는 나한테 윤기 씨에 대해서 다 얘기해놓고···. 내 말에 석진이의 음성이 이어 들렸다. 미안해. 그리고 이런 친구라서 미안하다고. 석진이는 아직도 내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또 상처를 받을까 봐 무서워서.





photo
- ··· 알았어. 바로 그
사람한테 전화해 볼게.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뚝 끊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로 탑 주소가 적혀왔고, 곧바로 택시를 잡아 탑으로 이동했다.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꽤 먼 길을 가서인지 택시비가 만만찮게 들었다. 그리고 도착한 탑. 전에는 독초가 많았어도 모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가시덤불이 울타리를 타고 내릴 정도로 끔찍하게 변해있었다.





말도 안 돼······. 그래도 윤기 씨가 조금 정리를 한 건지 무성하게 자란 식물들 사이로 작은 길이 뚫려있어 그 길로 통해서 탑 내부로 들어왔다. 윤기 씨가 이 안에 없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있어서인지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니야, 아닐 거야. 윤기 씨는 무조건 이 안에 있어.





"······."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윤기 씨와 눈이 마주쳤다. 매일 밤 딱 한 번만 더 보고 싶던 그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꿈속에서만 아른거리던 그 모습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바로 달려가 윤기 씨를 품에 안았다. 윤기 씨의 등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고, 윤기 씨도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photo
"··· 내가 먼저 가려고 했는데···."





"······."





"네가 먼저 와버렸네···."





살짝 웃으며 말하는 윤기 씨에 울음을 터트리며 그를 더 세게 안았다. 온기 하나 없는 이 품이 왜 이렇게 따뜻한지. 고개를 들어 윤기 씨의 얼굴을 세세하게 살폈다. 윤기 씨는 목에 있는 작은 흉터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윤기 씨가 미안하다며 고개를 푹 숙였고, 그에 난 그의 고개를 들어 다시 눈을 맞췄다.





"근데 윤기 씨 되게
이기적인 거 알아요···?"





"······."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는
생각도 안 해보고···.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요."





photo
"미안해. 진짜 미안해. 너 다치게
한 것도, 속상하게 한 것도. 다 미안해."





풀이 죽은 윤기 씨가 귀여워 풋 하고 웃음을 지어버리고 말았다. 이제야 웃네. 예쁘다. 윤기 씨는 그 말을 끝으로 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우리 이제 더 이상 아프지 마요. 그냥 행복하기만 해요, 윤기 씨.





정원에 시들어 있는 꽃 한 송이가 다시 높게 솟아올랐다.


















재결합 완료 (삐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