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르른 하늘, 하이얀 구름 아래 공기를 가로지르며 나는 나비 한 마리.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는 나비는 아름답고도 신비롭다. 형형색색의 날개와 주변 풍경에 잘 어우러지는 고운 날갯짓. 자신과 닮은 꽃에 앉아 있는 모습까지. 모두 나비를 보며 감탄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해가 저문 후 모든 불이 꺼진 채 칠흑 같은 어둠이 이어지는 밤. 그 시점의 나비는 그저 어둠에 잠식되어 방황할 뿐, 할 수 있는 건 없다. 자신을 밝혀 줄 빛만 기다리며 방황하는 나비는 마치 수면 위만 아름답고 수면 아래에서는 허우적거리며 침묵의 노동을 하는 백조와 같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이 말은 어찌 보면 나비를 향한 말이다. 멀리서 본 아름다운 외형에 이끌려 나비를 직면한다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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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외모에 수수하고 깔끔한 성격, 타고 난 집안과 그에 걸맞은 부. 그러한 외모와 성격, 부 때문인지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붐볐다. 달콤한 꽃에는 날파리가 꼬이기 마련이지만, 그런 날파리에 비해 그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이도 몇 있었다.
누구든 홀릴 듯 고결한 날갯짓을 하는 나비와 그녀는 많이 닮았다. 낮에는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살며 꿀을 먹다가, 밤이 되면 낮을 상징하는 빛을 찾아 방황하는.
그녀는 밤이 되면 무력해진다. 부모의 강압적인 지시 아래, 마치 꼭두각시 인형이 된 것처럼 움직인다. 그녀는 그게 익숙했다. 익숙하고 싶지 않아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그녀는 그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시도하면 할수록 부모의 압박은 강해져 갔다. 통금은 물론, 하루 공부 시간과 루틴 또한 정해져 있으며 모든 일은 부모의 통제 아래 진행해야 했다.
그녀에게 자유란 학교에 있는 시간뿐이었다. 그렇기에 학교는 그녀에게 꽤나 특별한 공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소소한 행복, 잠시나마 자유를 즐길 수 있다는 해방감, 모두가 치켜세워주는 자신감까지. 그녀에게 학교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밝은 분위기에 활기찬 친구들은 그녀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집은 항상 어둡고 침울한 곳이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조차 무거워 떨어지지 않았고,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간 집은 침묵으로 가득 차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집 안은 음기가 찬 듯 온몸과 숨통을 조이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그런 집의 공기가 싫었다. 예쁘게 정돈된 인테리어마저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거실에 크게 걸려 있는 가족 액자는 어색함이 묻은 가식적인 미소만이 맴돌았다. 이게 우리 가족의 실체였다. 대중들 앞에서는 친한 척, 죽고 못 사는 가족인 척하며 뒤에서는 모든 걸 통제했다. 이미지 관리를 빌미로 한 압박은 그녀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나도 나비가 되고 싶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으니까. 매일 원하는 곳을 향해 갈 수 있으니까.”
그녀 또한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녀가 나비와 닮았다는 사실을. 나비 또한 밤에 빛을 찾기 위해 방황하며 힘겨운 날갯짓을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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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그녀는 부모의 강압적인 지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음으로 방황하던 날갯짓의 방향을 전환했다. 햇빛이 쨍쨍해 살 타는 소리가 들리던 낮과는 달리 한여름 밤의 공기는 후덥지근하지만 시원한 향기가 사르르 녹아들었다.
조금씩 부는 살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도 바람에 따라 흔들렸다. 그녀의 표정은 학교에서보다 행복해 보였다. 한여름 밤에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집이 아닌 가벼운 바람이 부는 공원에 있다는 자체가 그녀에게는 경이로운 일이었기에.
공원 벤치에 앉아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살바람을 맞던 그녀의 검지 손가락 위에 아름다운 나비가 살포시 앉았다. 평소의 그녀를 위로해 주는 듯 그녀의 손 위에 앉았다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고귀한 날갯짓을 반복했다.
그녀의 주위를 맴돌다 그 나비는 어디론가 날아갔고, 그녀는 그런 나비를 따라갔다. 나비는 그녀의 속도에 맞추며 나아갔고, 나비와 그녀가 도착한 곳은 꽃이 만개한 공원 뒤, 여름인데도 시원한 바람이 그녀를 스치는 밤바다였다.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물에 비추며 파도가 철썩이는 밤바다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예쁜 광경이었다.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볼 수 없던 별이 이곳에는 아름답게 떠 있었고, 그 별들은 오직 그녀를 위해 떠 있는 것처럼 그녀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처음 보는 밤바다, 그녀를 스치는 가벼운 바람, 그녀를 환히 비춰주는 달과 별, 그녀의 곁을 맴돌며 날갯짓하는 아름다운 나비까지.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한여름 밤의 시원한 향기도, 뒤의 공원에서 바람을 타고 오는 꽃향기도 모두 좋았다.
그녀의 눈에 담기는 모습도, 그녀의 코를 찌르는 향기도, 그녀의 외이도를 타고 흘러 들어오는 소리도, 그녀의 손에 올라온 나비도 전부 그녀에게는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그곳에서 손을 모아 나비와 눈을 맞추며 얘기했다.
“나비가 되게 해주세요. 자유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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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어둠 속에서 환히 비춰주던 달빛은 사라지고, 어느새 선명한 햇빛이 떠올랐다. 눈을 찌르는 햇빛에 의해 눈을 뜬 그녀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레 가벼워진 몸, 너무나도 낮아진 시야.
그녀는 다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팔을 허우적거리자 허공으로 몸이 떠올랐다. 당혹스러운 상황에 그녀는 어찌할 줄 몰랐지만 달라진 시야와 몸에 점점 적응해갔다. 그녀는 자신이 달라진 이유를 알았다. 그녀는 진짜 ‘나비’가 된 것이다. 그녀가 바라던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나비의 어둠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녀가 볼 나비의 어둠은 그녀의 어둠보다 더욱 어두웠고, 처참했다. 강압에 의한 어둠과 실제 어둠의 차이를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곧 알게 될 진실, 어둠을 본 그녀는 날개를 잃고 추락했다.
나비의 어둠은 그녀의 어둠보다 더욱 괴로웠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