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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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어








눈물 때문에 마스카라가 번진 눈, 수많은 생채기가 있는 얼굴, 범벅이 된 피까지. 나는 세면대에서 물을 계속 틀어놓은 채 얼굴과 손에 묻은 피를 벅벅 닦아내고 있었다. 눈물과 피는 번지고, 거울 속에 있는 내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아무리 닦아도 닦이지 않는 피, 정말 미친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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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금발의 머리를 가진 나는 완전히 상반된 검은색 단발머리 가발을 쓴 채 무대에 올랐다. 내가 하는 연극의 컨셉은 ‘뜻밖의 첫사랑’ 하필 상대 역은 나와 안 좋게 헤어진 전 남자친구였다. 우리는 무대에서 진짜 연인인 것처럼 멋지게 연기했다. 하지만 무대 아래에서 우리의 공기는 싸늘했다.

나를 무시한 채 계단을 내려가는 그를 잡으려 했지만 그는 나를 신경도 안 썼다. 나는 결국 그를 붙잡지 못했고, 외로이 허공에 떠도는 손은 아무것도 잡지 못한 채 다시 허공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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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위해 가발을 쓴 채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다 실수로 떨어트려 깨진 화병,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눈물이 맺힌 눈에 초점을 잃은 채 그만 쳐다보던 내 옆으로 화병이 깨졌다. 이건 고의였다.

비참해 바닥난 감정, 헐거운 반지처럼 헛돌기만 하는 감정에 지쳐 깨진 화병을 옆에 두고도 반응 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아도 상관 없다, 사랑이 다 이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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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가로등 아래, 아름답게 흐르는 강 위에서 나는 그에게 안겼다. 환호하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을 맞잡은 채 눈을 맞추고 춤을 췄다. 하지만 그건 모두 검은 단발머리를 했을 때의 일이다. 실제로는 그의 경멸 어린 시선을 받은 채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무대 뒤, 나는 검은 단발머리 가발을 신경질적으로 벗은 채 안쪽으로 들어갔다. 캄캄했던 곳이 살짝씩 환해지며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예쁜 케이크 위에 꽂아져 있는 초는 주위를 환히 밝혀주고 있었다.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밝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나조차도 몰랐던 사실. 축하하다며 얼른 초를 불라는 그들 사이로 보이는 유일하게 밝게 빛나지 않는 그. 내 눈에는 밝지 않은 그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케이크 앞에서 빛나는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 초가 꺼지면 나는 그저 잿빛에 불과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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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고통 받고 있는 실제의 나. 그의 앞에만 있으면 통제가 되지 않아 피폐해진 나의 모습을 담는 카메라. 카메라고 마음이고 모든 게 다 터져버릴 것만 같은 마음이 들 찰나, 그가 내 앞을 지나갔다. 고통 받는 나를 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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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통제가 안 되는 내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무대 위, 나는 검은 머리가 아닌 금발로 무대에 올랐다. 역시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무대 위에서 연극을 연기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울분이 터져 참을 수 없었다.

웃으며 관객들을 보고 있는 그에게 매달리며 나는 포효했다. 눈물을 흘리며 소리도 질러 보고, 그의 팔을 잡으며 안기기까지 했지만 그는 나를 신경 쓰지 않은 채 나를 밀어내기만 했다. 그저 그 연극에서 나는 방해 요소인 듯했다.

내 머리를 아무리 쥐어뜯어도, 그를 아무리 때려도,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나는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 연극이 끝나고, 관객들은 무대로 장미를 던졌다. 나는 날카로운 장미 가시에 찔려 온몸에 생채기가 생겼다. 피가 섞인 눈물을 흘리던 나는 결국 뛰쳐나가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피를 지우려 애썼다.

피는 멈춰도 이미 생긴 생채기는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금발로 연극을 마쳤다. 마스카라는 다 번진 채 얼굴에는 생채기가 많고, 눈에 초점 없이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미소를 보여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