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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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반복되는 일상. 족쇄를 찬 듯 무거운 발걸음과는 달리 가벼운 깃털처럼 상사들에게 끌려다녀야 했다. 그런 일상에 내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주말에 소진된 체력을 수면으로 다시 채우는 것뿐.
밑 빠진 독에 물 채우는 짓, 몇 년 동안 해도 이 짓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햇빛과 마주한 채 걷던 게 언제던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친 일상에 매일 아침은 지옥 같았고, 급히 준비하느라 햇빛을 마주 볼 시간은 내게 사치였다.
그렇다면 달과 별을 마주 볼 시간은 있었는가, 그것 또한 아니었다. 필수가 아닌 야근이 나에게는 어쩐 일인지 거의 필수였기에 밤에도 내게 빛이란 없었다. 그저 내 눈앞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비출 뿐.
눈에도, 마음에도 없는 빛. 이렇게 빛을 잃어가는 마음과 달리 채워지는 도시의 별은 하나, 둘씩 늘어만 갔다. 자리를 찾아가는 퍼즐처럼 내 눈에도 점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본 밤하늘은 감추기만 했던 내 마음의 목소리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어두웠던 내 시간 속에도 작은 새싹이 자란 게 아닐까. 이 새싹은 내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아름다운 꽃이 되어 찬란한 나의 청춘을 깨워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생각이 내 머릿속을 뒤덮었다.
평소 늦게까지 잠을 택하던 주말에 웬일인지 눈이 일찍 떠졌다. 창문을 활짝 열어보니 선선한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 지저귀는 새소리는 내 고막을 간지럽혔다.
그렇게 나는 나를 가두던 잿빛 세상을 등진 채 도시를 달렸다. 사복을 입고 데이트를 하는 청소년 커플,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 성인 남자와 여자가 활보하는 시내를 거쳐 나무들이 줄줄이 서 있는 길까지 나오게 되었다.
길을 잃어버린 눈과 달리 선명해진 내 안의 꿈은 조금씩 더 커져만 갔다. 앞이 보이지 않던 까맣게 번진 어둠도 더는 두렵지 않았다. 피톤치드 향이 내 코를 간지럽히고,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나를 스치는 바람이 내 심장을 간지럽혀 더 힘껏 발을 밟았다.
모든 두려움을 잊은 채 내 발에 묶인 족쇄를 풀어 헤치고 이 바람을 느꼈다. 뒤돌아보지 않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나의 길을 믿었다. 내 길에 목적지 따위는 없었다. 핸들을 잡은 건 나니까, 내가 원하는 어디로든 향했다.
풀이 우거진 공원에 잠시 정차해 내렸을 때 나를 맞이한 건 형형색색의 나비였다. 그 나비들은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향했다. 그저 조그만 날갯짓이었지만 나에게 따라오라 손짓하는 듯해 나도 모르게 이끌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찬란한 푸른빛 바다와 황량한 초원이 함께 있는 곳. 내 귀를 때리는 잔잔한 파도 소리, 바다 특유의 비릿함과 풀의 싱그러운 향의 조화가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더불어 아름다운 꽃도 많아 최상의 삼박자를 이루고 있었다.
여태껏 이곳을 왜 몰랐나 싶은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었다. 아름답고도 휘황찬란한 풍경과는 달리 사람도 없어 힐링하기에 좋았다. 선선히 불어 내 머릿결을 스치는 바람은 나를 더욱 기분 좋게 만들었다. 나비는 왈츠처럼 우아하게 날아올라 내 손가락 위에 앉고, 참새는 내 주위를 맴돌았다.
홀로 자연을 만끽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평소 받았던 스트레스가 모조리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고작 드라이브 한 번으로 이렇게 행복해지다니.
사박사박 지나가는 곳은 모조리 발자국이 찍히는 모래 위를 걸으며 잔잔한 파도 소리에 집중하니 모든 잡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좋은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행복에는 대가가 따르는 것이 아닌지. 지금 내가 행복한 만큼, 어쩌면 지금 행복한 것보다 더 미래의 내가 불행한 것이 아닌지.
순식간에 불안에 휩싸였다. 차라리 평범한 게 좋은데. 한 번 행복하고 죽을 듯이 불행할 거면 스트레스 조금 받고 행복도 조금 받는 게 좋은데.
내 귀에는 더이상 파도 소리와 새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좋은 소리가 나던 모래는 순식간에 아스팔트로 변한 것처럼 딱딱해졌다. 푸른빛이었던 바다는 검게 물들고, 나비들은 버벅대는 날갯짓을 하며 어디론가 날아갔다.
환상 같았다, 내가 지금까지 본 현상과 모습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환상까지 보는 건가라고 생각할 때쯤, 나비 한 마리가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아까 안내자 역할을 해줬던 그 나비였다. 푸른빛의 아름다운 색을 가진 나비.
왠지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나비에게서 무언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오묘한 나비의 모습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하나뿐인 영혼을 뺏긴 듯 나비의 몸짓에 완전히 취해서 숨 쉬는 것조차 잊은 것 같았다. 눈을 뗄 수 없었다. 내 머릿속으로 전달되는 듯한 메시지가 끝나자 나는 비로소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너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상처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행복하다고 해서 불행이 따라오는 게 아니라고.
네 인생이 불행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라고.
되려 행복한 인생을 그 생각이 망치고 있다고.
행복 뒤에 불행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불행 뒤에 행복이 따르는 것이라고.
그러니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언제나 행복할 수 있는 아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