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

패닉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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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공이 뚫릴 듯한 빛과 고막을 찢을 듯한 셔터 소리. 내 앞에 있는 모든 눈은 전부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견딜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 여파 때문인지 순간 외이도를 타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이명 소리에 나는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발작을 일으켰다.

기자들이 웅성대는 소리는 물 안에 있는 것처럼 먹먹히 들리고, 계속해서 이명은 나를 괴롭혔다. 나는 결국 그 자리를 박찬 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있던 회사 관계자, 기자들 모두 나의 행동에 당황했을 것이다. 기자 회견의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나온다는 건, 공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잘 알고 있으니까.

벅차오르는 숨을 한 번에 몰아 쉬어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괜찮다 다독여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물은 숨 쉴 틈도 주지 않은 채 흘러내리고, 심장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듯 요동쳤다.

숨은 가빠오고, 어지러우며 몸이 떨려오지만, 눈을 꾹 감고 어디로든 달렸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니 보이는 건 풀이 우거진 황량한 초원이었다. 있는 거라곤 고작 작은 벤치 하나. 눈물을 겨우 닦은 후 벤치에 앉아 노을이 지는 걸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쯤, 뒤에서 호흡이 멎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야, 저분 피겨 선수 아니야?”

“어… 맞는 것 같은데.”

“그 선수네, 도핑.”

“도핑하고서 뻔뻔히 올림픽 나갔잖아. 으, 소름 돋아.”

“우리나라에 왜 있냐, 같은 국민이라는 자체가 싫어.”

몸이 빳빳해지며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고요함은 시끄럽고, 계속해서 켜지는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자니 미칠 것 같았다. 되려 너무 시끄러운 침묵에 입을 틀어막은 채 도망쳤다.

이제 알았다. 내게 안전한 곳은 없다는걸. 어딜 가든 내 얘기가 들려왔다. 모든 국민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도핑 테스트에 걸렸다는 것. 그건 이슈 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나를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나는 이미 많은 화살과 돌에 맞아 온몸이 찢기고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내 상처는 누구에게도 중요치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이슈였다. 남을 비난할 수 있는 요소가 생긴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은 흥분한다.

나는 지금 그 비난의 중심에 서 있다. 올림픽이 있기 며칠 전, 심적으로 불안정해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신 게 화근이었던 걸까. 가장 믿고 의지하던 친구였는데. 올림픽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술에 약을 탔다는 것. 이미 나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신뢰도를 잃고, 나는 모두에게 신뢰도를 잃었다.

남을 비난할 때는 모두가 한마음이 된다. 내가 우리나라를 망치는 괴물이라도 된 듯 그들은 나를 향해 날카로운 화살을 겨누고 있다. 집 안에 있어도 들려왔다. 한 사람부터 시작해, 이제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나를 향해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떠나라고. 우리나라의 올림픽을 망친 자는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 국민이라고 할 수 없다고. 더는 우리나라의 명성을 망치지 말라고.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가지라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나에게 외치고 있다. 누구는 생목으로, 누구는 청원으로, 누구는 피켓으로. 모두 우리나라의 명예 추락을 막기 위해, 모두 나의 잘못을 비난하기 위해 나를 몰아내려는 연대 의식을 가졌다.

나는 그 수많은 비난 위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내가 저지른 죄는 겨우 친구를 믿고 의지한 죄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오직 나를 향해 화살을 쏘아댔다.

사람들에게 내 존재는 욕망에 사로잡힌 괴물 그 자체였고, 나에게는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의 잣대처럼 괴물이 되어 거짓을 현실로 만드는 것. 두 번째는, 짐승도 인간도 아닌 게 되는 것.

이 중 나에게 득이 되는 선택지는 없었다. 다만, 더 편한 건 두 번째가 되겠지. 억울하긴 해도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번째였다. 언젠가 진실은 밝혀질 테고, 그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의 태도는 변한다.

내 머릿속에 그 장면이 그려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태도가 변한 후가 더 괴로울 것이다. 나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고작 말 한마디에 다시 나를 찬양한다는 것. 그것만큼 괴로운 게 없다. 어차피 그들에게 나의 신뢰도 따위는 없다는 것이니.

결국 나는 두 번째를 택했다. 내게 신뢰가 없는 사람들에게 변명 따위 하고 싶은 마음 없었다. 그저 내 파란 피가 심정을 대신해줄 것이다. 내 몸에서 파란 피가 모두 빠진 후에도 빨간 피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때 눈물을 흘리는 건 누구일지.

나는 그렇게 다시 한번 더, 사람들에게 이슈 거리가 되어 주었다. 그들은 내가 던진 미끼를 물었고, 내게 붙잡혔다. 나는 그들을 놓아줄 마음도, 자신도 없다. 그저 그들이 발버둥 치는 모습만 보며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