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전쟁에 승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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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가르며 울리는 총성. 황폐해진 도시 한가운데 서 있는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고막을 찢을 듯한 총성을 들으며 두려움에 덜덜 떠는 것뿐. 자욱한 연기가 도시를 덮고, 온통 흑백인 세상 속 보이는 빛은 오직 불길.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지금 이 도시가 얼마나 참담한 상황인지 인지시켜 주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전쟁에서 부모님과 친구들을 잃고 혼자 남은 나는,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있다.
끊이지 않는 총성과 폭탄 소리, 이제는 사람 소리조차 내게는 공포가 되어 돌아왔다.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대는 군인을 피해 도망을 치다 생긴 생채기는 흉터로 자리 잡고, 온갖 쓰레기들이 난무하는 바닥을 잘못 디뎌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고통이 나를 덮쳐왔다.
하루의 시간은 느리게 가고, 옛 방법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 답답함만 늘어가는데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보이는 시체들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코를 찌르는 혹렬한 악취에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시체, 총에 맞아 살갗이 다 드러난 잔혹한 장면.
이걸 보고 견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길어지는 전쟁에 피폐해진 정신과 공포감까지 심각한 상태. 여기서 시체까지 더해진다면 미칠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치거나 죽는 게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지 못한다. 죽음이 두려워 이런 끔찍한 전쟁통에서 살아남고 있는 것이니. 가끔 죽음이란 붉은 유혹이 나를 매혹한다. 사후는, 이 끔찍한 추악한 현실보다 평화롭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의 불씨가 깨어나지만 금방 꺼진다.
나는 아직 미래가 창창한 10대 후반이며, 나이가 들어 하고 싶은 게 많기에 절대 이 참혹한 전쟁통에서 죽을 수 없다. 내가 총을 들고 맞서 싸우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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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과일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는 내 모습. 친구들과 학교에서 웃고 떠들며 장난치는 내 모습. 언니가 사주는 맛있는 밥을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내 모습. 조금 지쳤지만,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 결국 성취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까지.
내게 찬란한 순간은 이것보다 훨씬 많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나는 일상에서 많은 행복을 느꼈다. 생생히 기억난다. 작은 행복, 큰 행복까지 모두 다.
하지만 지금은 내 얼굴에서 미소를 찾아볼 수 없다. 전쟁이 시작된 후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일이 없었다. 고작 사소한 먹거리 하나에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면, 지금은 조그마한 초콜릿 하나에 목숨을 걸 정도로 집착을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전 삶은 그리도 찬란했는데, 나는 현재 무엇을 위해 참혹한 환경에서 목숨을 걸며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미 나는 모든 걸 잃었고, 그 모든 건 이제 되돌릴 수 없는데.
떠돌아다니면서도 내 옆에서 점점 죽어가는 사람들. 언론은 이미 전쟁 얘기로 떠들썩하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회생의 길을 걸으면서도 생각한다. 이 길이 정녕 내가 걸을 길이 맞는지.
거의 죽은 상태의 우리가, 과연 이렇게 목숨이 붙어있는 게 정말 살아있는 게 맞는 건지. 머릿속은 온통 의문만 가득 차 있다. 이 전쟁의 끝이 언제일지, 하염없이 공포에 떨며 기다리는 게 이제는 지쳤다.
기나긴 기다림에 지쳐 스스로 머리에 총을 겨눈 사람도 보았다. 그런 용기가 없다면, 살아남을 용기라도 지녀야 한다. 하지만 내 안에 있던 용기도 점점 효과를 잃어간다.
결국 나 또한 그 사람들과 같은 선택을 한다. 적에게 죽을 마음 따위 없으니, 나 스스로 나를 죽이는 선택. 이 또한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죽음이 두려워 피했는데, 나 스스로 나를 죽이는 꼴이니. 살아남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발악해도 이곳은 살아남기 힘들다.
이런 강압적인 전쟁통에서 살아남은 자는 있지만 승자는 없다. 살아남은 자 또한 생채기가 많이 남았을 테니.

서로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소리 없는 총성이 귀에 꽂히는 이곳. 전쟁통과 다름없는 긴장감과 공포가 맴도는 이곳. 서로를 주시하며 승자가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은 다 하지만 승자가 없는 이곳.
이곳에 갇힌 피해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서로를 물고 뜯으며 치열한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은 생채기만 남는 이곳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인 ‘교실’이다.
이곳의 학생들은 교육청 지침에 의해 의무적으로 수업을 들으며 수능과 대학을 향해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 꿈꾸는 일을 하지 못한 채 오직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모토로 꿈을 짓밟히는 수많은 학생들. 이들은 진정한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온갖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으며 치열하게 싸우는 피해자가 됐다가도, 그 스트레스를 다른 학생에게 풀며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그들의 선택이 아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었다가 대통령의 지시대로 무차별적인 폭행을 저지르는 군인처럼,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선택이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는 목표와 늘어나는 생채기에 지쳐 교실과 함께 삶까지 포기한 이도 있다. 하지만 그 힘든 시간을 버티고 당당히 자기 삶을 사는 이도 있다.
누구는 좋은 스펙을 가졌고, 누구는 좋은 집과 차를 가졌고, 누구는 부를 가졌고, 누구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며 처절히 노력했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존경받아야 한다.
이 전쟁에 살아남지 못한 자가 있다.
이 전쟁에 살아남은 자도 있다.
하지만 이 전쟁에 승자는 없다.
패배자 또한,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