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보다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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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이어지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햇빛이 오랜만에 길을 환하게 비췄다. 나는 괜히 마음이 들떠서 평소보다 일찍 카페로 향했다. 낡은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리자, 익숙한 고양이 냄새와 함께 그가 나를 바라봤다.

 

 

“오늘은 날씨가 괜찮네요.”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짧지만, 분명 어제와는 다른 어조였다.

 

 

“그래서… 더 오고 싶었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미묘하게 눈썹을 한 번 올리더니 대답 대신 커피콩을 갈았다. 그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작은 대답 같았다.

 

잠시 후, 커피가 테이블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그 향을 맡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민호 씨, 오늘은 기분 좋아 보여요.”

 


그는 커피 잔을 닦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니, 오늘따라 눈치가 빠르네요.”

 


툭 던지는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얇은 미소가 스며 있었다.

그때 도리가 내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나는 놀라 손을 멈췄지만, 도리는 익숙한 듯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저 아이가 사람 무릎에 잘 안 올라가는데…”

 


민호 씨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럼 제가 오늘 운이 좋은 걸까요?”

 


내가 웃자, 그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운이 좋든가, 아니면… 마음에 드는 거겠죠.”

 

 

순간 그의 말이 가슴에 작게 파문을 일으켰다. 평소보다 조금 길어진 시선, 그리고 금세 시선을 돌리는 그 버릇이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나는 괜히 화제를 돌리듯 물었다.

 


“민호 씨는 여기서 지루하지 않아요?”

 


“고양이들이랑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어요.”

 


그가 대답하며 도리의 털을 정성스럽게 손질했다. 그 손끝이 놀랍도록 섬세해 보였다.

 

그 순간, 가게 밖에서 지나가던 아이가 창문 너머로 고양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민호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더니, 아이에게 조그만 간식 봉지를 건넸다.

 


“고양이들한테 줄래요?”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그 장면을 조용히 바라봤다. 평소 무뚝뚝한 그의 모습과 달리, 사람을 대하는 그 섬세한 배려가 묘하게 따뜻했다.

 

문을 닫고 돌아온 그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잠시 멈칫했다.

 


“왜 그렇게 봐요.”

 


“민호 씨, 생각보다… 되게 다정해요.”

 


그는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그럼 평소엔 아닌 줄 알았나 봐요.”

 

 

나는 당황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표현을 잘 안 하니까.”

 


그는 커피잔을 닦으며 짧게 대답했다.

 


“굳이 말 안 해도, 할 줄 아는 건 행동밖에 없거든요.”

 

 

그 말에 잠시 말이 막혔다. 툭 내뱉었지만 묘하게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진심은 조용히 나를 흔들었다.

 

 

“저… 혹시, 다음에 같이 산책할래요? 고양이들 쉬는 시간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잠깐 정적이 흐르더니,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글쎄요. 제가 좀 귀찮은데요.”

 


분명 거절처럼 들렸지만, 그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가 있었다.

 


“대신, 내가 가고 싶어질 만큼 이유가 생기면 생각해 볼게요.”

 

 

그 대답은 나를 웃게 했다. 츤데레 같은 그 말투, 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건 언제나 그의 행동과 그 눈빛이었다.

창밖으로 다시 햇빛이 비쳤다. 비가 멈추고 난 뒤의 공기가 더 선명해 보였다. 오늘의 민호 씨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