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보다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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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드문 마을에 오랜만의 맑은 날이었다. 유리창을 타고 들어오는 햇살이 카페 안쪽까지 스며들었고, 고양이들은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느라 분주했다. 나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햇빛 드는 날엔 산책 나가도 좋겠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던 그 문장.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민호 씨,”

 


그가 커피를 내리던 손을 멈췄다.

 


“산책… 오늘 갈래요?”

 

 

그는 예상보다 오래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골목을 따라 걷는 길, 생각보다 조용했다. 민호는 앞서 걷지도, 옆에서 말 많이 하지도 않았다. 그저 딱 반 걸음 뒤에서 내 속도를 맞췄다. 도리는 카페에 두고 왔다. 대신 우리가 지나가는 곳마다 다른 고양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 자체가 고양이에게 허락된 공간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오래 살았어요?”

 

 

“오래됐죠. 떠났다가 다시 온 거니까.”

 

 

툭 던지듯 말했지만, ‘다시’라는 단어가 걸렸다. 그가 이곳을 한 번 떠났었다는 사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 어쩌면 묻는 게 두려워서.

 

잠시 걷다 멈춘 자리에 오래된 평상이 있었다. 햇살에 데워진 나무 냄새가 났고, 민호는 조용히 그 위에 앉았다. 나는 그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살짝 거리를 두고.

 

 

“사실 요즘… 민호 씨 덕분에 좀 괜찮아졌어요.”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말없이, 입술을 한 번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작게 내뱉듯 말했다.

 

 

“그런 말… 쉽게 하면 안 돼요.”

 

 

나는 순간 숨이 멎었다. 그 말이 무례한 것처럼 느껴졌다기보단, 그의 목소리가 낯설게 떨려서.

 

 

“미안해요, 불편했으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그런 말, 예전에 믿었다가 좀 오래 걸렸거든요. 잊는 데.”

 

 

그 말의 의미는 물을 수 없었다. 말수가 적은 사람은, 아주 오래 준비된 말만 꺼내는 법이니까.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햇살은 부드러웠고, 새소리와 고양이 발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사람한테 기대하면 안 되는 건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이번엔 내 쪽을 바라보았다. 햇빛에 비친 그의 눈은, 아주 잠깐 흔들렸다.

 

 

“기대하는 쪽이… 항상 손해보더라고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 민호를 불렀다. 마을 주민 같았다.

 

 

“오랜만에 밖이네? 요즘은 사람 좀 받나 봐?”

 

 

장난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민호는 웃지 않았다. 그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만 가요. 고양이들 밥 줄 시간이에요.”

 

 

그날, 돌아오는 길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거리감이 다시, 조용히 떠올랐다.

 

 

*

카페 문을 열자 도리가 달려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아이를 안고 앉았다. 민호는 말없이 고양이 사료통을 챙겼다. 나는 도리의 등에 손을 얹고, 민호의 등을 바라봤다. 툭툭 내뱉는 말, 조심스러운 움직임, 그리고 너무 쉽게 멀어지는 뒷모습. 그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게 어려운 이유, 어쩌면 오늘 조금 보인 것 같았다. 도리는 내 무릎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날 밤, 나는 괜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민호 씨, 나 그런 말… 정말 쉽게 한 거 아니었어요.”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었던 하루. 하지만, 마음 한켠엔 짙은 먹구름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