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나는 카페에 가지 않았다. 비도 내리지 않았고, 바람도 잠잠했다. 그런데도 발걸음이 자꾸 머뭇거렸다. 그날 산책이 끝난 뒤의 민호 표정이, 자꾸 마음에 남아서.
'그런 말… 쉽게 하면 안 돼요.'
툭 내뱉은 그 말이, 마치 내 마음을 부정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고양이 인형은 여전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도리가 눌러 앉지 않도록 맡아 달라고 했던 그 작은 부탁. 그 부탁 하나에 담겨 있던 조심스러움이, 이제 와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며칠 만에 다시 찾은 카페는 여전히 조용했다. 익숙한 종소리, 그리고 고개를 돌린 민호의 짧은 인사.
“…왔네요.”
나는 웃지 않았다. 그도 웃지 않았다. 우리는 오랜만처럼, 다시 처음처럼 어색했다. 도리는 먼저 나에게 다가왔다. 그 낯익은 무게가 무릎 위에 얹히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런데도 민호는 한 마디 말도 없었다. 커피를 내리는 손길조차, 평소보다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잠시 후,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날, 제가 뭔가 실수했나요?”
그는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아니요. 그냥… 제가 불편했어요.”
“음.. 그럼 제가 아니라, 제가 한 말 때문에요?”
민호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따뜻하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어요. 예전에.”
그 말에 나는 숨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멀어졌고,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그 말 듣고,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더 잘하려고 했고, 더 많이 다가갔고…"
"근데 결국, 그 사람이 떠나면서 그랬어요.
‘너한텐 기대했다가 더 외로웠다’고.”
그는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다 말라 있었다.
“그날 이후로 누가 나한테 따뜻하다는 말 하면, 겁나요.
진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릴까 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말을 많이 한 날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깊은 상처였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민호가 조용히 내 쪽을 바라봤다.
“당신이 그런 말을 했을 땐, 그때처럼 아프진 않았어요."
"조금… 고맙기도 했고.”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 눈빛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그럼 왜 그날 갑자기 선을 그었어요?”
그는 작게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기대하면… 또 무너질까 봐요."
"미안해요. 무서웠어요,"
"근데… 그날 이후로는 오히려 내가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괜히… 당신이 안 오는지 신경 쓰이고.”
그 짧은 고백에, 나는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조금이라도 멀어지지 않으려 애쓰던 내 감정이, 조용히 그의 말에 기대기 시작했다.
카페를 나설 때, 민호는 잠시 문 앞에서 멈춰섰다.
“내가 예전엔, 사람을 참 좋아했던 사람이었어요.”
그가 처음으로, 자기를 설명했다.
“근데 한 번 아프고 나니까… 다시 좋아하는 게 어려워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자꾸 그게 무너지려고 해요.”
나는 고양이 인형을 품에 안은 채, 조용히 말했다.
“민호 씨가 무너지는 거라면, 제가 그 옆에 있을게요.”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끄덕임에 담긴 용기.
그건 확실히, 어제의 그와는 달랐다.
도리는 유리창 안쪽에서 졸고 있었다.
고양이보다 조심스럽고, 고양이보다 따뜻한 사람.
나는 그 사람을, 다시 알아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