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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자꾸 들려오는 소리는 최연준과 그 남미새 얘기뿐이었다. 듣기 싫어도 들려오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다. 아무리 헤어졌어도 어떻게 최연준 네가... 후... 말을 말자.

짝지는 아까부터 뭘 하는지 칠판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나는 내 자리에 앉아 있다가 짝지가 뭘 하는지 궁금해서 다가가 봤다.
"뭐 해?"
"아, 심심해서···"
짝지가 하고 있던 건 다름 아닌 그림 그리기였다. 그런데...
"나야?"
"응, 네가 멍 때리면서 가만히 있길래 그려봤어."
얜 그림도 잘 그리네. 근데 내가 저렇게 웃고 있진 않았을 텐데...
최연준 생각하느라 웬 성난 킹콩 한 마리가 보였을 텐데, 그림 속의 난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요즘 계속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길래... 웃는 모습 보고 싶어서."
"내가 짝지 하나는 잘 뒀네."
고마웠다. 이렇게 날 생각해 주고 있는 건 짝지뿐인 거 같아 감정이 복잡해지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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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지? 어서 모둠 만들어."
염병할. 갑자기 모둠 활동을 한다는 선생님에 짜증이 난다. 내 모둠에 최연준이 있는데, 짜증이 안 날 수가 있나. 하필 내 앞자리라 모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행 따위 제발 개인으로 하자고요, 선생님!!
"....."
"어... 음, 주제 뭐로 할래?"
침묵 그 자체인 상황에서 입을 먼저 연 건 짝지였다. 문제는 회의를 내 짝지와 최연준의 짝지만 하고 있다는 점. 나와 최연준은 굳어진 표정으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럼 내가 발표할게. 그리고···"
대충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으로 조용히 멍 때리고 있었을까. 최연준 짝지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연준이랑 여주가 자료 조사 같이 하면 되겠다."

"뭘 해...?"
내 눈치를 보는 짝지에게 배신감이 느껴졌다. 아니! 너!! 내가 쟤랑 무슨 사이인 지 알면서!! 왜! 나랑 쟤를!?
"사다리 타기로 역할 정한 거잖아... 하하..."
최연준의 짝지도 최연준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아무래도 나랑 최연준이 이렇게 붙을 줄은 몰랐었나 보지.
"ㄴ, 내일까지 자료 조사한 거 나한테 보내주면 돼..."
심지어 내일까지라고? 참나. 내가 쟤랑 같이 할 거 같아!? 혼자 다 해버리고 말지!
때마침 종이 치는 순간 나는 교실 밖으로 나갔다. 계속 최연준의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있자니 주먹이 날아갈 거 같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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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서 말해 볼까? 연준이 보고 나랑 바꾸자고."
내가 나오자 같이 쫄쫄 따라나온 짝지. 얘가 무슨 죄가 있겠거니 싶고, 운도 지지리 없는 내가 참 싫다...^^
"됐어, 그냥 내가 다 해버리면 그만이야."
"내가 도와줄까?"
"네가 PPT 제작이잖아. 힘들게 뭐 하러 도와줘. 내가 잘 해볼게."
"그래도..."
시무룩한 짝지. 너랑은 연관 없는 일인데,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거냐. 최연준이랑도 친한 놈이...
"내가 기깔나게 끝내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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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딴 개싸가지가 다 있어!?"
혼자 하기는 개뿔. 학교에 남아서 과제를 최연준과 같이 하게 생겼다. 그 와중에 같은 반이면서 내 면상은 꼴도 보기 싫은 지, 톡으로 얘기하는 최연준이 얄미웠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네, 미친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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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어 간다지만 왜인지 나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 것만 같았다. 다들 시든 시금치 마냥 하교를 하는데, 나만 잔뜩 쌩쌩한 채로 하교는커녕 최연준과 마주해야 한다.
"내가 이 부분 조사해 볼 테니까, 넌 이 책에서 중요한 거 정리해."
"....."
대화도 섞기 싫었던 나는 대꾸 하나 없이 할 일을 했다. 이거에 집중하고 있으면 최연준은 신경 쓰이지 않겠지.
"요즘 최수빈이랑 계속 붙어 다니더라."
"뭐?"
"취향이 바뀐 건가."
"뭐라는 거야; 알아듣게 말해."
날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말하던 최연준은 고갤 들어 날 빤히 쳐다봤다. 전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 새끼가 좋아?"
"미쳤냐? 네가 무슨 주제로 그딴 식으로 말해?"
"...넌 평생 모를 걸. 걔가 어떤 놈인지."
어떤 놈이든 간에 너보다는 낫다는 건 알아. 난 걔처럼 맑고 순수한 애 못 봤거든.
"착각하지 마. 걔보다 내가 더 널 잘 알아. 순진한 척 구는 여우 새끼를 너무 이뻐하지 않는 게 좋을걸."

"야, 너랑 나 헤어졌어. 네가 뭔데 참견질이야."
"....."
일그러져 들어가는 네 표정에 속이 시원했다. 그런데 넌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도대체 왜? 네가 날 버렸고, 네가 선택한 길 아니야?
왜 그렇게 힘든 표정을 짓고 있는 건데, 최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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