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죽박죽한 감정. 자료 조사는 다 끝내지 못한 채 집으로 도망치듯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최연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짜증을 불러오면서 내 마음 한 켠이 쓰라리듯 아파졌다.
우리는 헤어졌고, 헤어짐을 바란 건 너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 걸까. 이제 와서 다시 내가 좋아지기라도 한 거니? 아님 뭘 같잖은 미련이라도 생긴 거니? 네가 날 놓아 놓고?
"진짜 짜증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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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준 등교 안 했대."
"헐, 왜?"
"담탱 말로는 아프다는데?"
미간이 좁혀졌다. 지가 뭔데 아프고 난리야... 아팠으면 내가 아팠지.

"무슨 일 있어?"
눈치 하나는 드럽게 빠른 짝지. 언제 온 건지 내 옆에 찰싹 붙어서는 내 상태를 살핀다.
"...딱히."
아프다는 최연준이 신경이 쓰린다고 말하면 얜 어떻게 반응할까.
'넌 평생 모를걸. 걔가 어떤 놈인지.'
갑자기 최연준이 한 말이 떠올랐다. 도대체 이 둘은 무슨 사이인 걸까. 친구라고 말하는 짝지와는 달리, 최연준은 내 짝지를 싫어하는 표정이었다.
"네 바로 옆에 내가 있잖아. 나한테 기대."

"다른 사람 말고."
다른 사람? 네가 생각하는 다른 사람은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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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려보니 하교 시간이 되었다. 짝지와 함께 같이 하굣길을 걸었을까. 내 발걸음이 멈췄다.
"...?"
"먼저 가. 나 들를 곳이 있어서."
"같이 가. 나 할 거 없어서 시간 남아 돌아."
"아냐, 오래 걸릴 수도 있어서 그래. 내일 보자."
손을 흔들며 방향을 틀어 걷기 시작했을까.

"연준이 보러 가는구나."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그 방향... 연준이 집 방향이잖아."
"...아냐. 내가 걔네 집을 왜 가."
"그럼 왜 글로 가는데? 아파트 단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잖아."
"....."
애꿎은 입술을 깨물었다. 잘 아프지 않던 애가 학교를 안 올 정도로 아프가는 건 많이 아프다는 거겠지. 나도 걔한테서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떡해. 외동인 걘 지금 혼자 집에서 아파하고 있을 텐데. 부모님도 집에 늦게 들어오시거나, 잘 안 들어오시는 걸 뻔히 아는 내가 그를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나도 안다. 그냥 내가 바보인 거.
"내가 알아서 할게.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거니 넌. 내가 걔를 보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인 거야...

"그래. 내가 무슨 자격으로 널 붙잡겠어."
"...내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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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아픈 지 몰라 이것저것 약들과 죽을 사 걔네 집 앞까지 도착했을까. 막상 도착하니 후회가 된다.
...그래. 나야말로 무슨 자격으로...
아니 잠깐만. 내가 뭐 못할 거 있나? 내가 헤어지자고 했어? 참나~ 나는 너네 부모님께서 널 너무 걱정하시는 걸 아니까 도와주려는 거뿐이야! 그런 거라고!
나는 약과 죽을 문 고리에 걸어 뒀다. 그리곤 폰을 꺼내 들어 연락을 짧게 남겼다. 약과 죽 문에 걸어뒀으니까 먹으라고.
언제 가는 읽겠지 싶어서 빨리 이곳으로 벗어나려 등을 돌렸을까. 제법 다급하게 열리는 문소리에 다시 뒤를 돌았다.

"...진짜 너야?"
얜 또 몰골이 왜 이래. 싸우기라도 했는지 상처가 이곳저곳 보였다. 그런데 눈은 또 애가 왜 이렇게 풀렸는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이 보인 나는 최연준을 붙잡았다.
"뭐야. 몸은 또 왜 이렇게 불덩이야."
"진짜 여주네..."
"야, 정신 안 차려?"
내 어깨에 고갤 숙이는 최연준. 어바리 까던 나는 최연준을 떼어냈다. 그리곤 걜 끌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뭐 이리 추워..."
집 안은 싸늘했다. 나는 커튼을 치고 보일러를 틀었다. 그리곤 자꾸만 멍하니 날 쳐다보는 최연준을 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혔다.
"...갈 거야?"
"닥치고 있어."
난 사 온 죽과 약을 가져왔다. 아무것도 안 먹었을 게 뻔해서 죽부터 먹으라며 건네줬다.
"나 팔에 힘이..."
"개수작 부리지 말고 먹어라."
"응..."
죽 먹는 최연준을 조용히 쳐다보다 상처 약을 찾아 발라주기 시작했다. 원래 이 집엔 약 같은 게 없었지만, 아파도 약을 먹지 않는 최연준 때문에 내가 사다 뒀었다. 물론 내가 먹으라거나, 발라 주지 않으면 사용하질 않지만.
그래도 사다 둔 덕분에 상처에 약을 바를 수 있었다.
"죽 다 먹으면 이 해열제 먹어."
나는 약을 올려 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가지 마."
"....."
안 그래도 아픈 널 보면 마음이 이상해 죽겠는데, 네가 그렇게 나와버리면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나 혼자 있기 싫어."
외로움이 많은 애인 걸 알고 있다. 나와 사귀고 있을 땐 날 아예 끼고 살았지. 난 네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노력했고.
"최연준."
"그렇게 부르지 마... 원래 부르던 대로 불러줘."
아프니까 제정신이 아니기라도 하니? 네가 지금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런데 너는 왜 날 보며 눈물을 참고 있는 거야? 네가 왜.
울고 싶어야 되는 건 나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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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