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홈타운

국가 비상사태

어찌저찌 뜬눈으로 아침까지 누워있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벙커에 마련된 간이침대라 썩 편하지는 
않았으나 잠깐 쉬기는 좋았다. 
짙게 깔린 다크써클을 문지른 태현도 침구를 
정리했다. 

"범규 형 어제 좀 잤어요?" 

"한숨도 못잤다." 

"저도요.." 

태현은 침울하게 맞장구쳤다. 하긴 이 개같은 
상황에 잘 자는게 이상하지. 
그래도 연준 형은 자긴 잤는지 혈색이 나쁘지 않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자던가. 
 둘다 퀭해가지곤." 

"형은 어떻게 그리 태평해?
 나는 불안해 죽겠구만." 

"불안해하면 뭐 해결되는거라도 있냐? 
 그냥 기다려보는거지." 

와, 저런 튼튼한 멘탈이 부러운걸. 나도 저렇게 
편하게 말할수 있으면 좋을텐데. 

"!!어 잠깐만, 얘들아 와봐." 

간이침대 한켠에 걸터앉은 연준이 나와 태현에게 
와보라고 손짓했다. 
휴대폰 속 뉴스 화면에서 단상 앞에 선 대통령이 
말하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부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동시에 비상계엄을 
발령하는 바입니다. 현 시간부로 모든 행정, 
의료 서비스 등은 군에서 통솔, 관리할 것이며 
이를 거부할시 군과 정부는 강제 집행을 할수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저희 정부는 
최선을...' 

연준이 한숨을 쉬었다. 국가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니, 더더욱 믿기 어려웠다. 
이건 이제 아파트 주민들만의 악몽 같은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재난.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우리 진짜 좆된거지?" 

"아마."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한 우리는 각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때, 

--투쾅!!! 

거친 파열음이 들렸다. 밖으로 나가보니 우리 
옆방 문이 너덜하게 뜯겨나가있다. 
그리고 문을 부순 사람은... 

"아아아아 붉은 달들이 나를 부른다" 

이해할수 없는 소리를 하며 비틀거렸다. 
주변은 공포와 비명, 절규가 어지럽게 섞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도 두려움을 느끼며 주춤거렸다. 

"이 분 왜이래요?" 

"모르겠어요. 어제 괴물들한테 공격당하고 
 난 후에 계속...!!" 

목덜미가 싸늘하게 굳었다. 바이러스 감염이라도 
된건가?

"아아 그들에게 가야 해..." 

바닥을 기어다니다 벌떡 일어난 그 남자는 
벙커의 문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설마, 
밖으로 나가려고? 

"안돼!! 잡아요 빨리!!" 

내가 소리치며 따라가자 같은 방의 사람들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저 인간이 정신이 나갔나 
왜 나가려고 하는건데! 
숨을 몰아쉬며 뛰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아아아 붉은 달이시여" 

열린 문 틈새로 빨간색 손이 남자를 확 낚아채어
목을 꺾었다. 

"허억." 

옆에 선 여자가 황급히 숨을 들이켰다. 
나는 우선 천천히 벙커 문을 닫았다.
우리 아파트 벙커 내에서, 처음 사망자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