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결말은?

#16화

“내 남친도 아니면서 너가 무슨 상관이야.”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해버렸다. 한번 해버리면 절대 멈출 수 없는 그런 기대.

“내가 너 친구니까.”

그래. 우리는 친구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근데 나는 왜 너 입에서 너가 친구라고 말하니까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너가 나를 친구로 여기는 건 알고 있었고 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친구면 친구답게 행동해.”

마음에도 없는 말이 나왔다. 아니 완전히 맘에 없는 말은 아니였다. 저 말은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이었으니까.

“친구답게? 친구답게 지금 너 걱정해주고 있는거잖아!”

태형이 화를 냈다.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친구로도 지내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밤에 편의점 갈려고 나왔을 때였어.”

그래서 말 해주기로 했다. 저 선배랑 친해지게 된 이유를 말하면 우리 둘 사이는 갈라지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

내가 아프기 전날 밤.
배가 고프기도 하고 라면이 먹고 싶어 밤에 편의점에서 나왔다. 물론 눈이 부은 채로.
컵라면과 음료수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삼천원입니다.”

삼천원을 결제하고 라면을 먹을 생각에 신나게 봉투를 흔들며 빨리 집에 가기 위해서 골목길로 들어갔다.
어두운 골목길이라 무서운 마음에 지윤이와 전화를 하며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꺄아아악!!”

깜짝 놀란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공포 영화를 못 보는 만큼 어두운 골목길에서도 겁을 먹고 소리를 지르는건 당연했다.

“아아.. 미안 놀랐어?”

“뭐야! 무슨 일인데!!”

전화 넘어로 들여오는 지윤이의 목소리와 당황한 목소리로 말하는 어떤 남자였다.
그 남자는 몸을 숙여 핸드폰을 나에게 건네 주었다.

“어어..”

“전화 받아~”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 배려해 준 남자에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뭐야 뭐야? 어떻게 된건데?”

지윤이의 질문에 나는 빠르게 상황 설명을 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안녕? 놀래킬 생각은 없었는데.”

자세히 보니 김석진 선배였다.

“제가 겁이 많아서요.”

“그래? 그럼 집까지 대려다 줄게 가자.”

나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앞장서 걸어가는 석진선배. 무서운 것 보다는 차라리 괜찮다고 생각했고 그 뒤로 석진선배는 어색하지 않게 계속 말을 걸어주다 보니 친해졌다.

***

친해진 이유를 말해주며 해실해실 웃는 여주였다.

“무서웠으면 나 부르면 되잖아.”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앞으로 나 불러. 그 선배랑 둘이 있지 말고.”

너가 그 선배 이야기 하면서 웃는거 기분 나빠라는 말도 나올려 했지만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너가 뭔데.”

여주와 눈이 마주쳤다.

“너가 뭔데 그러냐고.”

똑같은 질문을 하는 여주에 나는 마음속으로 ‘너를 좋아하니까’라고 대답했다.

“친구니까.”

아까 처럼 다시 친구니까 가능하다고, 친구니까 괜찮다고 나 혼자 정당화했다.

“…”

여주는 아무말 없이 나를 째려보다 자신의 집쪽으로 걸어갔다.
또 다시 우리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깨진건 다름아닌 여주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야.”

여주가 나를 불렀다. 여주를 쳐다보니 여주는 나에게 뒷모습만 보여줄 뿐이었다.

“우린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친구라는 말로 우리 둘 사이를 이해시키려고 하지마.”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창피함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소연이랑 잘 되면 나한테 친구라면서 참견하지마. 그러다 소연이가 오해한다.”

여주는 고개를 돌리고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나는 봤다. 여주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을..
저 눈물을 닦아주고 싶지만 방금 전 여주가 한 말이 있기에 주먹을 꽉 쥘 뿐 닦아주지 못했다.

“그럼 가라..”

여주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또한 저 말에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안아주고 싶었다.
여주를 향해 한발짝 발을 내딛었지만 여주는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애꿎은 내 손만 아까보다 더 세게 피가 날 정도로 꽉 쥘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