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이와 단 둘이 길을 걸으며 집까지 대려다 주는 건 소연이를 처음 봤을 때 부터 생각했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석진 선배와 같이 집에 한여주가 신경쓰였다.
“태형아...?”
소연이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왜 그래?”
잔뜩 불안해 하는 듯 보이는 소연이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자 소연이는 뒤를 돌아봤다.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아..”
소연이의 말 한마디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아파트 입구 앞이어서 사람이 있으면 잘 보일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데?”
내 말에 소연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저기 태형아.. 이미 눈치 챘을 수도 있지만.. 나 너 좋아해!”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러운 고백으로 인해. 또한 내가
여주와 소연 두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소연이의 고백을 받아주었다가는 상처만 줄 것 같았다.
“우리 만난지 몇주도 안 된것 같은데..”
싫다는 말을 돌려 말했다.
“그게 뭐 어때.. 너도 나 좋아하잖아.. 우리 사귀자..”
하지만 그 말도 못 알아 듣는 소연이에게 살짝 정이 떨어졌다. 하지만 저렇게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소연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뒤를 돌아 한발자국 땠다. 그러자 나의 옷 소매를 붙잡는 소연이었다.
***
이렇게 말했는데도 계획대로 되지 않자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심정으로 김태형의 옷 소매를 붙잡았다.
“나는.. 알겠다고 말 안 했는데..”
최대한 고개를 푹 숙여서 말했다. 그러자 김태형은 뒤를 돌아 나를 보았다.
“그리고.. 너가 나 차면...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건데...?”
솔직히 저 말은 내가 할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민이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김태형과 사귀는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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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에게 고백한 뒤로 이주정가 흘렀다. 김태형과 나는 사귀고 있다. 김태형은 한여주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또한 김태형과 내가 사귀는 것은 비밀이었다.
“어! 여주야!!”
김석진 선배와 하하호호 웃고 있는 한여주가 보였다. 한여주에게 은근 슬적 김태형과 사귄다는 말을 하고 실수인척 입을 막으면 자연스럽게 옆에 서있던 민윤기와 이지윤, 지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줄 것 같던 한여주는 어디가고 아무런 표정도, 말도 없이 나를 쳐다봤다.
“어 안녕.”
짧게 인사를 받아 준 한여주였다.
“여기서 무슨 얘기 해?”
한여주는 인사를 받아주면 내가 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질문을 하자 티가 안나게 인상을 찌뿌린 후 나를 쳐다봤다.
“너 김태형이랑 사귄다는 얘기.”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알았지 밖에 없었다.
“어? 무슨 소리야..?”
“그냥 말해본 건데 진짜인가 보네.”
한여주의 옆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째려봤다.
“소연아!”
타이밍 좋게 새로 사귄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아하하.. 먼저 들어가 볼게.”
나는 나연이를 대리고 반 안으로 들어갔다.
***
백소연과 김태형이 맨날 같이 집에 가는 모습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정말로 사귄다는 듯한 얘기를 듣자 심장이 쿵 하고 발 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백소연 뭐야? 너가 김태형 좋아하는거 쟤한테 말하지 않았어??”
화내고 싶었지만 화를 낼 수 없는 나를 대신해 지윤이 화를 냈다. 그러자 박지민과 민윤기가 지윤이의 말을 거들었다. 지윤이 화가 난다는 듯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교실문을 힘차게 쾅 소리가 날 만큼 열고서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백소연 너 진짜 어이없다.”
지윤이의 말에 시끄러웠던 반은 조용해졌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윤아..”
그러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하는 백소연.
“모르는 척 하는거니?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거니? 나는 전자같은데.”
백소연 대신에 임나연이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지금 무슨말을 하는거야.”
그리고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너는 빠져.”
저렇게까지 화가 난 지윤은 처음이었다.
“너 여주가..!”
나는 빠르게 지윤이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나중에.. 내 마음이 정리 되면.. 그때..”
굳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를 밝힐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
지윤은 백소연을 매섭게 째려 본 후 작은 목소리로 최대한 빨리 말하라고 말하고는 자기 반으로 돌아갔다.
“왜 저래.”
임나연이 말했다. 그리고선 백소연을 데리고 나갔다. 생각해보니 내가 먼저 백소연에게 다가갔고 친해지는데 한달 반이 걸렸었다. 하지만 임나연과 백소연이 친해지는 데는 백소연이 먼저 다가갔고 한달도 안되서 이주만에 친해졌다. 어떻게 보면 백소연이 나를 속였을 수도 있다.
***
나연이가 나를 대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여자 화장실이었다.
“아까 보니까 여주랑 옆에 있는 애들이 너 죽일 듯이 째려 보던데.. 그리고 교실에서는 또 뭐고..?”
갑작스러운 나연이의 질문에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사실대로 말할까도 싶었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내가 나쁜년이 되는 것 같았다. 지민이를 꼬시려면 이건 정당한 것이다. 즉 내가 아닌 한여주가 나쁜 년이 되면 된다는 것이다.
일단 말하기 전에 화장실 안을 빠르게 훑어 보았다. 한여주와 친한 친구가 있으면 분명 내가 하는 말이 한여주의 귀에 들어가면 지민이 나를 피할지도 모르니까.
“그게.. 한여주도 김태형을 좋아하거든... 내가 여주랑 좀 친했잖아.. 그때 내가 먼저 태형이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여주가 태형이는 자기가 가지겠다고 해서...”
나의 말을 듣고는 표정이 어두워진 나연이었다.
“그리고 아까도 자기가 먼저 김태형 좋아한다고 말 했는데 왜 뺐어 갔냐고 뭐라고 할려다가 양심에 찔려서 친구 입 막은 거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연이는 나를 믿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한테 먼저 한여주가 나쁜 년 처럼 말하면 한여주가 하는 말은 거짓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때 변기 칸에서 문이 열리더니 각각 다른 칸에서 여자 두명이 나왔다. 우리반 여자애들, 이주동안 한여주와 친해진 여자애들 다미와 가현이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설마 한여주가 다미와 가현이한테 말을 했을까 싶었다.
“…”
화장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너 방금 한 말 진짜야?”
다미가 한 말로 보아 다행이 말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진짜야...”
가현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만 들리는 소리로 말했다.
“너 거짓말 잘한다.”
그 뒤로 가현과 다미는 화장실을 나갔다. 한여주가 말했다고..? 믿을 수 없었다. 지가 뭔데... 나는 이제부터 한여주가 한 말은 거짓말이고 내가 한말과 생각이 진실이라고 믿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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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작가를 용서해주세요ㅠㅠ
손목보호대를 끼고 있어서 오타가 날 수도 있어요 그냥 웃으며 넘어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