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덜비

“올라와서 자라니까? 바닥 불편하잖아“
”자라.“
”내가 그렇게 싫냐?“
"…"
눈을 질끈 감았다. 개가 짖을 땐 무시가 답. 전남친과 동침하게 된지 벌써 닷새가 지났다. 이재현이 현재 왕자의 몸으로 미쳐 날뛸수록 미안해졌다. 존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내일은 Z나라 가야지. 몸을 뒤척이며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이 곳에 오고나서 공주의 방을 뒤져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내 방도 아니고 남의 방을 뒤진다는 생각에 건들 생각도 안 했는데 이러다 내가 스트레스 받아 쓰러지게 생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음 진짜임.
“재현아.”
“웅?”
“우리 현실로 되돌아오면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왜?”
“…”
.. 말 건 내가 병신이다. 진짜 잠이나 자야겠다.
.
.
.

“뭐야 왜 왔어?”
”아 내 방에 뭐 좀..두고 온게 생각이 나서.“
”아, 너 안 그래도 시계 두고 갔길래 웬일인가 했어.”
”시계?“
”목숨처럼 갖고 다니더니 그걸 두고 가냐..“
난 느낌이 찌르르 왔어. 시계? 공주가 목숨처럼 들고 다녔다고?
이거다. 갑자기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개빠르게 뛰었다. 이젠 이 좆같은 드레스도 굿바이다!..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현재 왕자랑 인사도 못했네.
보모랑..주연이랑. 그리고 여전히 이름 모를 첫째, 둘째 오빠들과
아침마다 존나게 지저귀던 새들까지.. 그리울 거야 모두
오랜만에 방에 들어가보니 다시 봐도 아찔한 크기에 침대 위 보석함이 올려져 있었다. 덩그라니 있는게 이상했지만 덥썩 집어올려 열어보니 딱 봐도 낡아보이는 시계가 들어있었다.
조심스레 손목에 찼다.
이제 눈 감았다 뜨면.. 나는..
“…”
뭐야 시발.. 그대로잖아.
원래 영화 같은 거 보면 이 대목에서 다시 돌아가던데.
그래 원래 인생이 이렇게 호락호락하면 재미가 없지. 근데 지금까지 좆같았던 인생 한 번이라도 재밌으면 안되냐?
“김여주.”
이제는 환청까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 이재현이였다.
주변을 두리번 거려도 분명 이 방 안에는 나밖에 없는데..
이거 상사병인가
“김여주 정신 차려봐.”
..어?

“너 괜찮아? 나 알아보겠어?”
“..엥?“
”너 이거 몇 개로 보여.“
”..한 개.”
“내 이름 기억해?”
“이재현..”
“하, 다행이다.”
방금까지 서있었던 내가 차디찬 침대에 누워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내 자취방 천장과 나를 흔들어 깨우는 이재현.
아니 이재현이 아닌데 얘?
“기다려. 물 떠다줄게.“
”…현재 왕자야?“
”그것까지 알아봐? 멀쩡하네 너.“
”너가 왜 여기있어? 나 돌아온 거야? 어떻게 된 거야?”
“하나씩 물어봐.”
이 좆만한 자취방에 현재 왕자는 익숙한 듯 냉장고를 뒤져 생수릉 꺼내들었다. 가만보니 옷차림도 편해보였다. 일단 건네주는 물을 꿀꺽꿀꺽 마시면서도 생각 정리가 안됐다 .

“공주는 원래대로 돌아갔을 거야.“
”…너는?“
”…나는 아직.“
”어떡해. 지금 네 몸에 들어가서 난리 피우고 있는데..“
재현이 픽 웃었다. 웃음이 나오냐고. 그치만 나도 차마 가라는 소리가 입 밖에 안 나왔다. 그냥.. 오랜만에 보는거니까. 조금이라도 같이 있으면 좋으니깐.
”…야“
나 그냥 여기 있을까?
침대에 걸터앉은 현재 왕자가 담담히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내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것도 아니면서. 라고 말 할 뻔.
사실 안 갔으면 좋겠다. 물론 내 바람이지만.
“가야지.”
“안 가면.“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건데.”
“이대로 가면 다시는 못 보잖아.“
“…”
고개를 푹 떨군 재현이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가만히 그를 지켜보자니 내가 한마디 해야지 싶었다. 왕자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동안 전남친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있을텐데 어떻게 가지 말까라는 소리를 늘어놓지. 정말 이재현은 씨발..
“…김여주.“
“…“
“울어?”
“…눈이 따가워서.”
시야가 흐려졌다. 눈이 따갑다는 개소리를 늘어놓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이라도 가서 추스르고 와야지. 후다닥 도망치려다 양 팔이 잡혀버렸다. 눈이 마주쳤다.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있던 게 무색하게 눈물이 흘렀다.
“가지 말라고 한마디만 해. 어려운 거 아니잖아.“
"…"
”너.. 알잖아 이제. 내가 좋아하는 거.“
어떻게 몰라. 나를 이렇게 다정한 눈으로 봐주는데.
”..아니? 그거 착각이야. 넌 공주가 좋은거야. 내가 아니라“
”이게.. 어떻게 착각인데.”
“똑같이 생겼으니까. 헷갈릴 수 있어.“
”지금 뱉은 말에 책임질 수 있어?“
"…"
아니. 나는 백 명의 이재현이 있어도 너만 바라볼 자신 있었다.
결국 이 지경이 됐다. 마음에 두어선 안 될 사람을 품은 바람에
이런 시시한 이별에 가슴이 너무 아파 찢어질 것 같았다.

“난 착각 안 해. 내 감정 내가 제일 잘 알아.“
"…"
“..그러니까 말 해. 제발.“
”이재현.“
..가지 마.
겨우 뱉은 짧은 말에도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번에는 양 뺨이 붙잡혔다. 조심스럽지만 다급하게 내 입술을 무는 행동도 너무나 현재 왕자다웠다.
머리를 감싸던 큼지막한 손이 내려와 나를 당겨 안았다. 가슴이 맞붙었다. 틈 없이 이재현 품에 안겨버렸다. 더럽게 포근했다.
입 안을 가볍게 헤집는 혀. 좁고 차디찬 방 안. 모든 것이 꿈같이 느껴졌다. 이곳이 현실인데도.
“.. 이래도 돼?”
”눈 감아.“
”..아니! 이래도 되냐고. 너 다시 못 돌아가면, 읏, 잠깐만.“
갑자기 든 현실적인 생각에 어깨를 퍽퍽 쳐도 꿈쩍 않는다.
두고 온 주연이와 이제 곧 공주와 혼인하는 전남친 이재현이 걱정 아닌 걱정이 됐다. 야 나라 망하면 어떡해?…

“분위기 드럽게 못 타네. 키스나 마저 하면 안 돼?”
“어 안 돼. 그래도 한 나라의 왕자였잖아 너“
”공주한테 부탁했어. 지금쯤 네 전남친 공주한테 구워 먹히고 있을 걸“
"…"
”이주연 걔도 돌아갈 거야. 백작이 아닌 것 같다고는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어.“
"…"
”그러니까 그만 걱정해. 다 끝났으니까“
안달 난 눈으로 내 입술을 매만지면, 나는 진짜 몸 둘 바를 모르겠거든요. 입술이 가까워져 온다.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스르륵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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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편 마지막 화일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