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내려오면

5화) 노아의 비밀

“서플리 씨, 커피 마셔요?”


그날도 점심을 마치고 식판을 반납하던 플리 앞에 노아가 말을 걸었다.
자판기 앞.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인데, 동전 넣는 손이 조금 서툴다.


“…마셔요. 믹스 커피요”


“역시 달달한 거 좋아하는구나?”


“…엥? 어떻게 알고 계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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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고개를 약간 돌렸다. 살짝 붉어진 귓불.
“…항상 그거 뽑아서 드시는 거...봤.. 아닙니다. 그냥 때려 맞춘거에요.”


뜻밖이었다. 커피 취향을 기억해준다는 건, 소소하지만 묘하게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노아 씨를 잘 몰라서 그랬나? 차가운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커피가 나오는 소리 사이로 둘은 어색한 미소를 나눴다.
작은 투명한 기포처럼, 대화가 천천히 떠올랐다.


“근데… 서플리 씨, 밥 먹을 때 젓가락으로 반찬 순서 정하던데… 습관이에요?”


“오 맞아요! 순서 안 정하면 이상하게 불안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요.”


“된장국 마지막에 드시는 것도 습관인 거에요?”


“맨 마지막에. 클리어해야죠. 게임처럼 ㅋㅋ 헤헤”


“밥 먹는 게 무슨 게임? 정말...ㅋㅋㅋ”


“…밥도 전략적으로 먹는 저를 지금 조롱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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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피식 웃었다.
플리는 눈을 흘기며 커피를 들었다. 살짝 달달한 향이 감돌았다.


“…그쪽도 밥 먹을 때마다 숟가락 엄청 돌리던데요?”


“그건… 그냥. 손이 심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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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암내, 나랑 똑같으면서 태클은..!"


장난스럽게 주고받은 말 뒤, 둘은 작게 웃었다.
커피는 달았고, 대화는 점점 부드러워졌다. 익숙해졌다.





띠링-

노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노아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ㅈ..죄송, 저 먼저 가볼게요.”


“어? 어디 가요? 갑자기? 뭐예요, 무슨 일인데요??”


플리가 놀라서 따라붙었지만, 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급하게 휴대폰을 확인하던 그는, 플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빠르게 건물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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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굳은 표정으로 어두운 사장실로 들어섰다.


넓은 방,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소파.
그 중심에, 정장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머리는 백발에 가까웠고, 눈빛은 차가웠다.





노아는 그 앞에 서서 천천히 말을 뱉었다.

“내가… 나 건들지 말랬지.”


사장은 흥미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노아야, 내가 분명히 말했지. 음악은 하지 말라고.”


“…그 약속은 당신이 강요한 거잖아. 내 의지가 아니라..!”


“강요? 아니지. 네가 받아들였어. 적어도 내 아들놈으로 있을려면.”


노아는 그 말을 듣고 주먹을 꽉 쥐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날 괴롭혀야 속이 시원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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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빛엔 억눌린 분노와 오래된 상처가 동시에 묻어 있었다.
사장은 천천히 일어나 창문 쪽으로 걸어가며, 담담하게 말했다.


“너 괴롭히는 거 아니다.”


"...”


아들 괴롭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이번이 마지막 경고야. 나 건들지 마."


"허허 그거 참 무섭구만? 그래 어디 한 번 너 하고 싶은대로 해봐. 그 하고 싶다는 음악하면 어떻게 되는 지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되겠구나."


노아는 사장을 째려보더니, 결국 문을 발로 박차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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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런 모습은 지 엄마를 닮았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