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여주
━ 네?! 아, 알아요!! 알아요.
사실 모른다. 이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 얼굴은 잘생기고, 마주친 적도 없는데 일단은 거짓말을 했다. 의도는 아니었는데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이 나왔다. 살고 싶어서.
전정국
━ 내가 누군데요.
본인이 누구냐고 물어볼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다급해서 거짓말을 해버렸는데 상황이 되려 꼬여버린 거 같다.
하여주
━ 어··· 그니까, 그게···. 우리 학교에서 만난 적 있잖아요!
날 아는 사람이면 같은 대학을 다니는 거일 수도 있겠다고 빠르게 판단했다. 제발··· 제발 맞기를, 넘어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전정국
━ 맞아요ㅋㅋㅋ 기억하네요. 그때는 진짜 실망했는데, 누나가 나 무시해서.
하여주
━ 내가··· 무시했어요?
도대체 누굴까 기억을 막 되돌리려고 애썼다. 누나라고 하는 것을 보면 나보다 어린 거 같은데 갑자기 열을 받았다. 어린놈이 지금 뭐 하는 짓인지.
전정국
━ 기억 못 하는 거예요?
하여주
━ 네? 아니요?! 기억 못 하긴요.
전정국
━ 나 모르죠, 누나. 왜 거짓말해요.
하여주
━ ······.
전정국
━ 거짓말은 나빠요. 예쁜 누나 입에서 거짓말은 더더욱 나쁘죠.
하여주
━ 잘못했어요···.
전정국
━ 용서를 구할 필요는 없어요. 뒤에서만 항상 누나를 봐왔는데 누나가 나를 어떻게 알겠어요. 그렇죠? 같은 학교인 거는 어떻게 알았어요. 이 누나 가만 보면 똑똑하다니까요.
하여주
━ ㄴ, 내가 어떻게 하면 돼요? 뭐든 다 할게요···.
전정국
━ 음··· 그냥 나랑 같이 살면 되는데. 싫은가 봐요?
하여주
━ ······.
이제 더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힘이 쭉쭉 빠졌고 문을 열어줘도 도망칠 여유가 없었다. 이 남자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나한테 정말 왜 그러는 건지. 오직 본인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나한테 이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졌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는지 복통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과민대장증후군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정국
━ 어디 아파요?
하여주
━ 하··· 하···.
전정국
━ 왜 그래요. 어디 아픈데요!
하여주
━ 괜찮아요, 괜찮아··· 아···! 저 화장실 좀···.
전정국
━ 저기예요!
장난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이미 나의 모습은 너무 힘들어 보였다. 이 남자도 이것까지는 생각 못했는지 우물쭈물하며 나를 걱정했고, 나보다 더 심각하게 놀란 듯했다. 내가 나오자마자 그는 나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나를 부축했다.
전정국
━ 병원 갈까요? 응? 병원 가요, 빨리.
하여주
━ 괜찮아요. 과민대장증후군이에요. 금방 나아져요.

전정국
━ 나 때문인 거죠···? 그거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그러는 거 맞죠?
하여주
━ 잘 아네요. 제가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그래서 자주 있는 일이에요. 엇!!
이 남자 걱정을 단단히 했는지 나를 안아 침실로 가 침대에 나를 눕혔다. 그리고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는 옆에 무릎 꿇고 앉아 나를 계속 쳐다봤다.
하여주
━ 나 진짜 괜찮은데···.
전정국
━ 미안해요···. 이렇게까지 할 의도는 없었는데 누나 오래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진짜 누나 스트레스받게 할 생각 없었는데 미안해요···.
하여주
━ 이중인격이에요? 아···! 후··· 진짜 나한테 왜 그런 거예요?
전정국
━ 누나는 학교에서 인기도 많고, 예뻐서 내가 다가가기에는 버거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누나가 내가 항상 있는 골목에 나타난 거고 장난치려던 게 이렇게 됐어요···.
하여주
━ 나 솔직하게 무서웠어요···. 나는 진짜로 처음 보는 사람이고 다짜고짜 집에 날 가두는데. 으윽··· 후··· 나 이제 집에 보내줄 거예요?
전정국
━ 비 온다고 해서···. 아마 지금 비 올 거예요. 우산도 없는 거 같던데 비 맞고 갈까 봐···.
하여주
━ 정말요? 비 온다고 했어요?
그는 침실 창문 커튼을 걷어 밖을 보여줬다. 그의 말대로 밖은 비가 포슬포슬 내리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있었는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마음이 정말 따뜻한 친구였다.
전정국
━ 우산 있는 거 주고 보내주고 싶었는데 밤이 너무 늦었잖아요. 그 남자가 누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떡해요. 그땐 진짜 못 도와줘요.
하여주
━ 아 전 남친···.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고마워요, 그런 생각 해줘서.
전정국
━ 오늘은 그냥 자고 가요. 내일 밝을 때, 사람 많을 때 안전하게 가요.
하여주
━ 음··· 그럴게요. 고마워요.
전정국
━ 아까는 욕해서 미안하고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늦었는데 얼른 자고요. 전 나가서 잘게요.
하여주
━ 아··· 알겠어요. 잘··· 자요.
전정국
━ 잘 자요, 누나.
그렇게 그는 문을 닫고 나갔다. 갑자기 상황이 시나리오처럼 확 바뀌었는데 나도 뭐가 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그냥 순리대로 따라가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아마 쉽게 잠에 들지는 못할 거 같다.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서 이것을 잊기 위한 방법은 억지로 잠을 취하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계속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잠에 푹 빠졌다. 누가 들어와서 얘기해도 모를 만큼은.
‘똑똑’
‘터벅터벅’

전정국
━ 잘 자네요, 누나.
“나 이중인격 그거 맞아요. 아프니까 참는다.”
***
손팅 부탁드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