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진
— 그날 피고인은 저에게 이렇게 울부짖더라고요. “제가 왜 여기서 살인자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작 살인을 저지른 애는 집에서 발 뻗고 편안하게 있는데 왜, 도대체 왜 내가 이 법원에서 누명을 입어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라고요.
— 피고인의 가족도 매일같이 경찰서에 가서 그 어떤 말이든 해봤지만, 해당 사건을 맡은 경찰은 듣지도 않은 채 한 번만 더 들여다보지는 못할망정 매번 내쫓기만 했습니다.
— 그런 피고인과 피고인 가족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법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법원마저 사건 배정을 이런 식으로 하는데 도대체 이러한 누명을 쓴 많은 피고인은 누가 이 누명을 벗겨줍니까?
— 열여덟 살 소년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자로 덮어 씌어버리는 경찰, 검찰, 법원. 경찰의 사건 조작, 검찰의 보도 방해, 법원의 이해할 수 없는 사건 배정, 재판의 개입, 거래. 도대체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재판장
— 변호인.
김석진
— 이게 지금,
재판장
— 변호인! 지금 변호인은 재판부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김석진
— 재판장님,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죄 없는 열여덟 살 소년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최후 변론 마칩니다.
나는 변호사이다. 지금과 같이 언제나 법 앞에 있어서는 사건에 대한 의지가 넘치고 논리적인 변호 실력으로 높은 승소율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모든 변호사 중 제일 높은 승소율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변호사가 아닐까.
오늘처럼 이렇게 억울하게 누명을 쓰며 재판까지 받게 되는 사람들은 내가 지켜주고 싶었다. 내가 이 누명을 벗겨주고 싶었다. 꼭 무죄를 입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재판관님께도 심한 말을 곁들게 됐다. 그만큼 내 의지는 강인하다. 방청객들과 피고인 가족들은 모두 눈물을 훔쳤고 나 또한 정말 피고인만큼 간절한 마음에 눈물이 눈에 가득 고인 채로 변론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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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 선고하겠습니다. 주문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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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고인 아니, 열여덟 살 소년과 그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재판을 완벽하게 마치고 법원을 나왔다. 사실 내 변론이 조금 심하다고 생각하긴 해서 유죄를 받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상태였는데 무죄를 선고받아 정말 후련한 마음으로 바깥 공기를 마시며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는 숨을 내쉬고 있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톡톡 쳤다.
.
서여주
— 저기···.
김석진
— 어, 왜 그러세요?
서여주
— 혹시 시간 있어요?
김석진
— 왜 그러시죠?
서여주
— 끌려서요, 김 변호사님이.
김석진
— 네···? 중요한 거 아니면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서여주
— 아직 고백도 안 했는데 거절이라뇨···.

김석진
— 저 그렇게 시간 널널한 사람 아닙니다.
서여주
— 소문대로 정말 철벽이시네요.
나는 아까 재판 때 김 변호사님의 변론을 듣고 감동을 하고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최고의 변호사가 오늘 변호를 한다길래 재판을 방청하고자 재판을 봤는데 역시나 오늘의 재판은 최고였다. 그야말로 그 잘생긴 얼굴의 최고의 변호, 반해버렸다.
그런데 김 변호사님은 철벽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래서 저 완벽한 사람이 여친도 없고 처음 보는 나에게마저도 저렇게 철벽을 치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못한 이 김 변호사님의 철벽을 뚫고 싶어졌다.
김석진
— 아셨으면 그만 가주십쇼.
서여주
— 그럼 갈 테니까 번호라도 줘요.
김석진
— 안 줄 거 다 알잖아요.
서여주
—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해서라면요?
김석진
— 뭐라고요···?
서여주
— 정말 변호사 도움이 필요해서 이러는 거라면··· 번호 주실 거예요?

김석진
— 무슨 일 있어요?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눈빛으로 김 변호사님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철벽을 치던 김 변호사님의 인상을 찌푸리던 얼굴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변하며 나에게 대했다. 변호사의 따뜻한 기질은 변하지 않나 보다.
서여주
— 있다면··· 번호 주실 거냐고요.
김석진
— 번호 줘요···.
김 변호사님은 의심 반, 걱정 반이 섞인 얼굴을 하며 본인의 휴대폰을 나에게 건넸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김 변호사님이 끌려서 다가갔는데 변호사가 끌렸던 건 나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며 살아와서 트라우마가 꽤 컸다. 그 당시 나와 엄마 모두 너무 힘들었는데 변호사를 선임할 방법도 없었다. 엄마가 이혼하셔서 현재는 엄마와 나 둘이 살고 있다. 그래서 많이 크고 성숙해진 나는 어렸을 적 일 때문에 그런지 재판에도 계속 참석해 관심이 생기게 됐고 그래서 변호사란 직업이 나에겐 정말 특별하고 끌리는 직업이다.
서여주
— 고마워요···.
김석진
— 미안해요···.
서여주
— 뭐가요?
김석진
— 힘든 일 있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철벽 쳐서.
서여주
— 괜찮아요. 무작정 들이대는 사람한테 무슨 일이 있는 줄 누가 알았겠어요.
김석진
— 편할 때 얘기하고 싶을 때 전화해요.
서여주
— 지금은 사실 좀 괜찮아졌어요. 어렸을 때 얘기라. 절차적으로 변호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번씩 혼자 술 마실 때나 보고 싶을 때 전화해도 돼요? 아, 이건 안 되려나···.
김석진
— 전화해요. 혼자 술 마실 때, 보고 싶을 때 말고도···. 그런데 혼자 술 마실 때는 불러요, 나갈게요. 괜히 혼자 마시면 좀 외롭다.
서여주
— 나 불쌍해 보여요?
김석진
— 연민, 동정 그런 거 아니에요···!
서여주
— 그런데 왜 나한텐 철벽이 뚫렸어요?
김석진
— 그냥··· 도와주고 싶어요. 직업병인가 봐요.
서여주
— 그게 연민이고 동정 아니에요? 김 변호사님 철벽 약점 하나 찾았네요.
김 변호사님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싫지 않았다. 김 변호사님이 동정, 연민 무엇이든 그냥 내 옆에 있어 준다는데 그거면 된 거 아닐까?
김석진
— 그럼 연락해요.
서여주
— 시간 널널한 사람 아니어서 벌써 가는 거예요?
김석진
— 아···.
서여주
— ㅋㅋㅋ 가세요. 바쁘실 텐데 제가 너무 많이 붙잡아뒀네요.
동료
— 김 변!!
법원에서 바른 정장 차림으로 나오며 김 변호사님을 부르는 저분들은 김 변호사님 동료로 보였다. 동료분들은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당황스러운 눈빛을 하고는 김 변호사님을 쳐다봤다.

김석진
— 그런 거 아니에요.
동료
— 그런 거 아니긴? 김 변 철벽이 이렇게 예쁘신 분한테는 뚫리는 건가?
김석진
— 아, 아니래도. 그냥 의뢰인 분이에요.
서여주
— 의뢰인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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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 중 재판 내용의 일부분은 드라마를 인용함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