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여주
— 의뢰인 아니잖아요.
내가 한 수 더 붙였다. 졸지에 철벽이 쉽게 부서진 사람이 됐으니 얼마나 민망하고 당황스러울까. 내가 말을 하자 김 변호사님 동료분들은 약 올리듯이 “축하해, 잘 해봐라.” 등 응원을 하시고는 다시 갈 길을 가셨다.
김석진
— 왜 그랬어요?
서여주
— 변호사가 거짓말은 하면 안 되죠.
김석진
— 아, 그래도 그렇지···.
서여주
— 나랑 진짜 잘해볼 생각이에요?
김석진
— 네?!
서여주
— 아니면 그냥 흘리듯 넘겨요. 왜 이렇게 흥분하실까.
김석진
— 그럼 그쪽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졸지에 커플이 됐는데?
서여주
— 전 원래 김 변호사님께 마음 있어서 오히려 더 좋은데요? 그리고 그쪽 아니라 저 서여주예요.
김석진
— 그래요, 서여주 씨. 미안해요, 너무 흥분했네요.
서여주
— 가봐요. 다음에 연락할게요. 잘 가요.

김석진
— ···들어가요.
은근 김 변호사님 귀여운 구석도 있다니까. 나는 봤다. 아까 김 변호사님 동료분들이 응원의 말을 해주시고 갈 때, 김 변호사님 귀가 시뻘게졌다는 것을. 그렇게 김 변호사님과 헤어지고 혼자 카페로 와 나의 일상을 즐겼다. 커피를 시키고 창가 쪽에 앉아 노트북을 꺼내 들어 김 변호사님을 검색해 나오는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여주
— 잘생겼네···.
김 변호사님과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사진만 바라보고 있다가 아까 받은 김 변호사님 연락처를 들어가 넋 놓으며 전화를 누르려고 하던 중 카페 알바생이 내 쪽으로 와 말을 권했다. 잠깐 놀라 손을 움직이는 바람에 전화가 걸어진 지도 모르고 알바생과 얘기를 나눴다.
김태형
— 또 오셨네요?
서여주
— 네? 저 여기 또 온 거 어떻게 알았어요?
김태형
— 평범한 얼굴은 아니잖아요.
서여주
— 아, 제가 좀 웃기게 생기긴 했죠.
김태형
— 아뇨ㅋㅋㅋ 예쁘게 생겨서 눈에 밟혔어요. 그런데 김석진 변호사 아시나 봐요?
서여주
— 아, 네. 혹시 아세요?

김태형
— 당연히 알죠ㅋㅋㅋ 제 형이에요.
서여주
— 네?!
놀라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예쁘다며 다가온 카페 알바생과 내가 반한 김 변호사님이 형제라니. 이게 흔한 일은 아니다. 정말 놀랐고 당황스러워 말도 잘 안 나왔다.
김태형
— 김태형이에요. 같은 김 씨. 그런데 제 형이랑은 무슨 사이에요?
서여주
— 네? 아··· 그···.
김태형
— 형이랑 친해지기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친해졌어요?
서여주
— 그냥 어쩌다가···. 친해진 거라곤 할 수 없죠. 그냥 말 조금 섞어본 정도?
“그럼 좀 섭섭한데요, 여주 씨?”
갑자기 어디선가 김 변호사님 말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고개를 휙 돌려 뒤를 보기도 했지만, 그는 어디도 없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다시 이 동생분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중 다시 말소리가 들렸다.
“전화요.”
서여주
— 어! 잠시만요.
김태형
— 네, 받아요.
그리고는 휴대폰을 봤다. 그때 전화가 걸려 있던 것을 확인하고 동생분께 예의를 갖추고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서여주
📞 뭐예요? 놀랐잖아요.
김석진
📞 전화는 여주 씨가 걸었는데요?
서여주
📞 제가요?
그때 아까 내가 망설이던 게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잘못 눌린 것을 알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안 그래도 바쁜 사람한테 민폐 끼친 건 아닐지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서여주
📞 아, 미안해요. 잘못 눌렸나 봐요. 바쁠 텐데 미안해요.
김석진
📞 아··· 다행이네요. 난 또 전화 걸어놓고 아무 말도 없어서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요. 중간에 제 동생 말소리 들리고 안심했다고요.
서여주
📞 저··· 걱정했어요?
김석진
📞 그럼 사람이 전화해놓고 말을 안 하는데 걱정 안 해요?
누가 나 이렇게 걱정해 주는 게 처음이라 괜히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혼자 수줍어하고 있는데 이건 완전 놀림거리가 되어 버렸다.
김석진
📞 너무 수줍어하지는 말고요.
서여주
📞 뭐예요?! 지금 나 보고 있어요?
김석진
📞 걱정돼서 왔어요. 앞에.
김 변호사님의 말이 끝나고 앞을 보니 김 변호사님과 눈이 마주쳤고 그가 손을 흔들며 나에게 다가왔다. 약간의 미소도 섞이며 말이다. 처음 얘기한 그때의 얼굴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얼굴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지.
서여주
— 바쁜데 여기까지 왜 왔어요.
김석진
— 지금은 별로 안 바빠요. 그나저나 제 동생이 여주 씨 예쁘다고 했죠.
서여주
— 다 들으셨구나···.
김석진
— 제 동생은 그냥 무시하세요. 제가 철벽 친 것처럼. 금사빠라 아무 여자나 다 좋아한다니까요.
서여주
— 김 변호사님과는 완전 정반대네요ㅋㅋㅋ
김석진
— 그래도 금사빠보단 철벽이 낫죠.
서여주
— ㅋㅋㅋ 그런가요?

김석진
— 제 동생한테 관심 있어요?
서여주
— 네? 그럴 리가요. 전 당신한테 관심 있다고요, 김 변호사님한테요. 몇 번을 말해줘야 이해할래요?
김석진
— 아···. 그런데 서여주 씨.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무슨 감정이에요?
서여주
— 네···? 갑자기 물어보면···. 음··· 설레고, 보고 싶고 이 두 개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김석진
— 여주 씨.
서여주
— 네?
김석진
— 당신한테 설레고, 헤어진 후로 보고 싶었는데.

“그럼, 나··· 여주 씨 좋아하는 겁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