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 안녕하세요. 많이 기다리셨어요?
박여주
— 엇, 아니요. 금방 왔어요.
오늘은 친구의 제안으로 카페로 소개팅을 나오게 됐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되게 차갑게 생겼는데 수트를 딱 차려입고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아직까진 나쁘진 않다. 인사밖에 안 하긴 했지만.
박여주
— 음료는 아이스티 시켰는데 괜찮아요?
김태형
— 오 저 커피 안 마시는데 센스 넘치시네요.
박여주
— 아··· 저도 커피를 안 마셔서요.

김태형
— 푸핫ㅋㅋㅋ
박여주
— 왜··· 웃으세요?
김태형
— 어ㅋㅋㅋ 아 미안해요ㅋㅋㅋ
박여주
— ······.
되게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나를 보고 너무 환하게 웃으셔서 내 얼굴에 뭐가 묻은 건가, 내가 뭘 잘못 말한 건가 싶었다. 몹시 당황했다.
김태형
— 아, 제가 좀 웃음이 많아서요. 너무 예쁘시고, 말하는 게 귀여워서 부끄러움의 웃음이니 오해 마세요.
박여주
— 아··· 원래 웃음이 많으신 거구나.
김태형
— 당황했죠.
박여주
— 네··· 좀···.
김태형
— 그래서 얼굴이 이렇게 생겨도 소개팅에서 맨날 점수 깎였어요. 지금도 그럴까 봐 불안하고요.
박여주
—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웃는 게 예쁜 사람을 좋아해서.
김태형
— 저 웃는 거 예뻐요?
박여주
— 네? 어··· 예뻐요.
김태형
— 푸핫ㅋㅋㅋ
박여주
— 진짜 웃음이 많으시네요ㅋㅋㅋ
정말 웃음이 많으신 분인 거 같다. 웃는 걸 보니 나도 괜히 웃음이 막 나왔다. 진짜 막 얼굴은 차갑고 무뚝뚝하게 생겼는데 반전으로 웃음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딱 소개팅 생각하면 설레고 부끄럽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뭔가 되게 편했다. 긴장하고 있었는데 긴장도 조금씩 풀렸다.
김태형
— 웃음 많은 거 혹시 불편하지는 않으시죠?
박여주
— 아니요? 전혀요. 웃음 많은 사람을 보면 저도 막 행복해져서.
김태형
— 와··· 진짜 다행이네요. 저 또 차일까 봐 조마조마했거든요. 참아보려고 하는데 너무 예쁘셔서 감출 수가 없었어요.
박여주
— 그럼 안 웃긴 상황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막 웃음이 나오는 거예요?
김태형
— 네, 보시다시피. 이것도 병인가 봐요.
박여주
— 뭐 웃음 많은 게 안 좋은 건 아니니까요.
김태형
— 여주 씨라고 했죠? 사전에 이름만 알고 와서.
박여주
— 네, 맞아요. 태형 씨 맞으시죠?

김태형
— 네네···.
박여주
—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김태형
— 나 여주 씨한테 좀 반한 거 같아서요ㅋㅋㅋ
박여주
— 네? ㅋㅋㅋ
진짜 태형 씨 나를 보고 반한 모습이 눈에 딱 보인다. 예쁘다는 소리를 벌써 두 번이나 하고 반했다는 말도 이렇게 쉽게 나오는 거 보면. 나를 좋다고 해주니까 어느새 나도 태형 씨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김태형
— 혹시 나이가···.
박여주
— 아 스물넷이에요. 태형 씨는요?
김태형
— 내가 더 나이 많네요. 말 놓을까요?
박여주
— 몇 살이신데요?
김태형
— 맞춰봐요.
박여주
— 스물셋···?
김태형
— 제가 더 나이 많다니까요? ㅋㅋㅋ
박여주
— 아? ㅋㅋㅋ 아, 미안해요.

김태형
— 긴장했나 봐요ㅋㅋㅋ 아, 겨우 웃음 참았는데ㅋㅋㅋ 제가 어려 보였어요?
박여주
— 아··· 그만 놀려요···.
긴장이 좀 풀린 거 같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상한 말실수를 해서 나만 엄청 쪽팔리고 부끄러워서 볼은 붉어졌다.
박여주
— 그럼 한 서른.
김태형
— 와··· 놀렸다고 복수하는 거예요?
박여주
— 복수 아닌데요···.
김태형
— 뭐라고요? ㅋㅋㅋ 스물여덟이에요. 우리 딱 네 살 차이. 설레는 나이 차이 아닌가.
박여주
— 설레요?

김태형
— 오··· 훅 치고 들어오기···. 난 설레는데, 여주는?
박여주
— 와··· 너무 가까워요.
나에게 되물으면서 얼굴을 가까이하는데 진짜 심장 터질 뻔했다. 그 잘생긴 얼굴을 그렇게 막 가까이하면 내가 죽지···.
김태형
— 푸핫ㅋㅋㅋ
박여주
— 아··· 그만 웃어요. 웃는 사람 싫어지려 그래.
김태형
— 아, 미안해요. 그만 웃을게ㅋㅋㅋ 아니ㅋㅋㅋ
박여주
— 진짜 이 정도면 내가 그냥 웃긴 거 아니에요?
김태형
— 그런가? ㅋㅋㅋ
이젠 막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이게 무슨 소개팅이야. 진짜 저 해맑은 웃음 때문에 내가 미칠 거 같다.
김태형
— 그래도 좋잖아. 웃는 사람 좋다며.
박여주
— 은근슬쩍 말 놓네요.
김태형
— 난 아까 놓자고 했는데? 얼른 ‘오빠’라고 불러봐.
박여주
— 근데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이거 소개팅 맞죠?
김태형
— 응ㅋㅋㅋ 맞아. 그럼 나 이제 본격적으로 꼬셔도 되는 거야?
박여주
— 에? 아니요, 하지 말아요.
김태형
— 왜, 나 여주 너 꼬시고 싶은데.
박여주
— 이미 넘어간 거 같으니까 꼬시지 말라고요.
김태형
— 아, 뭐야ㅋㅋㅋ 이렇게 쉽게 넘어온다고?
박여주
— 그래서 싫어요? 갈까요, 나? 저 지금 바로 갈 수 있는데.
김태형
— 예쁘게 생겨서 엄청 까부네.
박여주
— 오빠도 까불잖아요.
김태형
— 어? 방금 오빠라고 한 거지, 그렇지?
나도 모르게 어느새 편해져서 오빠라는 소리도 그냥 막 나왔다. 진짜 완전 엉망진창인 소개팅인 거 같다. 약간 편한 오빠를 만난 거 같은 느낌이랄까.
박여주
— 네, 오빠.
김태형
— 헐··· 좋네.
박여주
— 근데 나 좀 설레고 싶은데.
너무 장난기 많고 웃음 많고 해맑은 오빠여서 살짝 실망한 건 맞다. 그래서 속마음이 이렇게 나와 버렸다. 소개팅이라 하면 막 설레고 떨리고 그런 심정이 정상인 거 같은데. 너무 서로 웃기만 하다가 금방 지칠 거 같았다.
김태형
— 오케이. 내가 해볼게.
박여주
— 오빠 연애 별로 안 해봤죠.
김태형
— 안 해본 게 아니라 다 차였다니까?
박여주
— 아··· 그렇죠. 미안해요ㅋㅋㅋ
김태형
— 차인 거 이렇게 긁네···. 안 그래도 맘 아픈데.
박여주
— 캑캑··· 캑···.
김태형
— 뭐야, 괜찮아? 잠깐만!
.
김태형
— 여기 물.
박여주
— 아··· 고마워요. 죽을 뻔했어요ㅋㅋㅋ
음료를 마시다가 사레에 걸려 계속 기침을 했는데 태형 오빠가 웃음기가 확 사라지면서 물을 갖다주며 걱정했다. 그냥 사레 걸린 게 다인데.
김태형
— 웃음이 나와, 지금?
박여주
— 에이··· 그냥 사레 걸린 거예요. 왜 이렇게 걱정해요. 내가 막 설레고 싶다니까 이러는 건 아니죠?
김태형
— 아니거든. 그냥 음료 마시지 말고 2차로 나랑 밥 먹으러 가자.
박여주
— 그래요? 그래도 이거 아직 다 안 마셨는데.
김태형
— 너 또 사레 걸리면 나 간 떨어질 거 같아.
박여주
— 에ㅋㅋㅋ 그럼 어디로 갈 건데요?
김태형
— 음···. 생각만 해도 설레는 곳?
박여주
— 밥 먹는데 설레는 곳이 있어요?

김태형
— 우리 집. 내가 요리 좀 한다고 말 안 했나?
오늘 소개팅 중에 가장 떨리는 세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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