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여주
— 도련님 오셨어요?
김태형
— 저 바로 나갈 거예요, 집사 누나.
김여주
— 어디 가시려고요?
김태형
— 저 PC방 가려고 하는데 지금 엄마 없죠.
김여주
— PC방이요? 사모님 없으신데 그래도 걸리면···.
김태형
— 괜찮아요, 안 걸려요. 저 친구랑 공부하고 온다고 해줘요.
나는 이 태형 도련님 집의 집사이다. 고3인 도련님과 나는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많이 친근하다. 그러다 보니까 도련님이 자주 이렇게 나를 이용하시고는 한다. 자꾸 말은 안 듣고 말썽만 피우고 다닌다.
김여주
— 아, 도련님! 잠시만요. 이번은 진짜 걸려요. 저번에도 걸릴 뻔했잖아요.
김태형
— 에이, 안 걸린다니까요. 저만 믿어요. 갔다 올게요.
김여주
— 아, 진짜 잠시만요···! 안 돼요, 가시면.

김태형
— 누나, 내 제안 거부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죠?
김여주
— ······.
태형 도련님의 제안을 거부하면 정말 큰일 난다. 정말 어떤 일을 저지를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도련님이기에 더 무섭고 큰일이다. 고3인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매일 놀러 다니는데 ‘언제 철이 들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태형
— 정 나 못 보내겠으면··· 누나도 같이 가요.
김여주
— 저요?
김태형
— 네, 누나랑 같이 가면 더 의심 못 할 텐데 그럼 나도 좋고, 누나도 좋고. 쌤쌤 아니에요?
김여주
— 아··· 안 돼요, 그래도.
김태형
— 진짜 계속 거부하네. 나가요, 얼른.
내가 계속 도련님을 말리자, 도련님이 내 손목을 강제적으로 확 잡아 밖으로 같이 나가게 됐다. 힘이 어찌나 세던지 뿌리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도련님이랑 PC방을, 그것도 단둘이 가게 됐다.

김태형
—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바로니까 차는 없어도 돼요. 걸어가요.
김여주
— 도련님···.
김태형
— 왜. 무서운 거예요? 엄마한테 걸릴까 봐?
김여주
— 당연히··· 무섭죠···. 걸리면 저 바로 아웃이라고요. 이제 갈 곳도 없는데···.
김태형
— 진짜 집사 누나 걱정도 한가득하다. 걱정 말아요, 절대 안 걸리니까. 근데 게임은 할 줄 알아요?
김여주
— 아니요? 전혀 못 하는데···.
김태형
— 음··· 그럼 뭐 어때요. 옆에서 구경해요.
김여주
— 얼마나 할 거예요? 오래 할 건 아니죠?
김태형
— 오래 해야죠. 그래야 엄마도 공부 열심히 하고 오는 거로 알 테니.
김여주
— 헐··· 전 그동안 도련님 게임을 하는 것만 들여다보고 있으라는 거예요?
김태형
— 싫으면 뭐 다시 들어가고 좋고요. 들어가면 더 걸릴 테지만.
김여주
— 갈 거거든요···?
도련님은 피식 웃으며 나를 내려다봤다. 정말 도련님 말대로 조금 내려가니 어느새 PC방에 도착했다. 학창 시절에도 게임 못 해서 옆에서 구경만 하곤 했는데 이 일을 또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도련님은 익숙한 듯 PC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아 모니터를 켰다.
김태형
— 누나도 모니터 켜요.
김여주
— 왜요?
김태형
— 정말 구경만 할 거였어요?
김여주
— 저 게임 못 하는데···.
김태형
— 그냥 이참에 나한테 배워가요. 그리고 여기 사장님이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자리 차지하는 거 싫어해서 어쩔 수 없어요.
김여주
— 아···.
일단 그렇다고 도련님이 말하긴 해서 여기마저 쫓겨날까 봐 방금 도련님이 모니터 켠 것을 보고 따라서 모니터 전원을 켰다. 나에겐 정말 낯선 곳이었지만, 도련님은 집처럼 편해 보였다.
김여주
— 나 속이고 솔직히 여기 많이 왔죠.
김태형
— 오~ 어떻게 알았지?
김여주
— 그렇게 자연스러운데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예요?

김태형
— 그렇네요ㅋㅋㅋ
도련님의 저렇게 해맑게 웃는 모습은 거의 처음 본다. 집에 있을 때는 얼음처럼 딱딱해보였다면 집 밖에서는 얼음이 녹아 물처럼 자유로워 보인다고 해야 할까.
김태형
— 일단 음식부터 시켜요.
김여주
— 저기,
김태형
— 아, 누나! 안 와본 티 내지 말라고요ㅋㅋㅋ 여기 누르면 주문할 수 있어요.
그러고는 도련님이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와 마우스 위에 있는 내 손 위에 본인의 손을 올려 마우스를 움직였다. 난 그 상태로 몸이 굳었다.
김여주
— 신기···하네요···.
김태형
— 갑자기 왜 이렇게 굳었어요ㅋㅋㅋ 시켜요. 오늘은 내가 오자고 한 거니까 제가 쏠게요.
김여주
— 에이, 아니에요. 제가 사야죠.
김태형
— 그냥 제 말 들어요. 계속 거부하려고 그래.
김여주
— 알겠어요, 알겠어. 도련님 말 들을게요.
김태형
— 맛있는 거 시켜요.
나는 무슨 레스토랑 뺨 치는 수많은 메뉴를 보고 놀랐다. 그렇게 나는 제일 익숙해 보이는 라면과 핫도그를 주문했다. 그러고 도련님의 모니터를 보니 도련님은 진짜 음식 고르는 솜씨부터 달랐다.
김여주
— 햄버거, 김치볶음밥, 라면··· 다 드실 수 있는 거죠?
김태형
— 그럼요. 누나는 두 개만 시킨 거예요?
김여주
— 나름 많이 시킨 거예요.
김태형
— 하긴 누나는 몸이 조그만해서 조금밖에 안 들어가겠다.
김여주
— 딱히 듣기 좋은 말은 아닌 거 같네요.

김태형
—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은 아니니까요.
김여주
— 헐··· 도련님. 이러기에요?
김태형
— ㅋㅋㅋ 게임 못 하겠으면 옆에서 노래라도 들어요. 이거 헤드셋 끼고. 게임은 음··· 아닌 거 같아요.
도련님이 헤드셋을 빼서 내게 씌어주었다. 그건 아무리 내가 많이 안 와봤다고 해도 내가 혼자 할 수 있는데. 되게 오늘따라 나를 잘 챙겨주었다.
김여주
— 근데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었어요?
김태형
— ······.
김여주
— 네? 안 들리는데.
김태형
— 이거 끼고 있으니까 안 들리죠ㅋㅋㅋ
김여주
— 방금 되게 바보 같았겠네요···. 그래서 뭐라고 한 거예요?
김태형
— 딱히 좋은 일 없다고요.
알바
— 음식 나왔습니다.
김태형
— 감사합니다.
남자 알바생이 음식을 전부 가져다 주었고 나는 잘생겼길래 그냥 한 번 알바생에게로 눈이 갔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잘생기면 계속 눈이 가는. 딱 그런 거였지, 마음이 있어서 보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랬더니 도련님이 불편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