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음악대학 다음으로 들릴 대학교는 경희대였다. 한빛의 차를 타고 경희대에 도착한 둘은 도착하자마자 실용음악과가 어디 있는지부터 알아냈다.
“오늘은 왼쪽 손등에 흉터가 있는 여학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태형 씨, 오늘 느낌 좋으시다고 하셨잖아요.”
둘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크지 않은 소리로 화이팅을 외춘 뒤, 경희대 실용음악과로 향했다.
허락을 받고 실용음악과 반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학생들이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보컬 전공 학생들은 목을 풀면서 노래를 불렀고, 피아노가 전공인 학생들은 악보를 보면서 번갈아 피아노를 쳤고 그 외 다른 전공의 학생들도 모두 열심이였다.
서울대 음악대학에서 했던 것처럼 학생들의 이름 명단을 부탁해서 받은 태형과 한빛은 여학생들을 나누어서 왼쪽 손등에 흉터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다행히도 여학생들 중에서 오늘 결석한 학생은 없었다. 한명 한명씩 찾아보았지만, 왼쪽 손등에 흉터가 있는 여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절망하려던 그 순간 태형 쪽의 마지막 여학생의 왼쪽 손등의 중간 정도의 크기에 나비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태형은 여학생에게 문신에 대해서 물었다.

“이 나비 문신은 왜 하신 거죠?”
“아, 이거 흉터 때문에 한 거예요. 손등에 있는 흉터가 보기 싫었거든요.”
“한빛 씨, 이 학생의 왼쪽 손등에 흉터가 있었데요. 그 흉터를 가리기 위해서 문신을 했데요.”
한빛이 여학생에게 물었다.
“흉터는 어느 정도였는지, 말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한빛의 질문에 대략 이 정도의 길이의 흉터였다고 여학생은 말해주었다.
“이름이 뭐죠? 전공이 어떻게 됩니까?”
“제 이름은 하예나에요.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입니다.”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태형과 한빛은 예나를 다른 강의실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여기에 온 이유를 숨김 없이 모두 말해주었다. 왼쪽 손등에 흉터가 있는 사람을 찾은 이유도 평범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닌 가수 서울을 찾기 때문이란 걸 알려주었다. 태형이 예나와 마주 보고 앉고는 얘기를 시작하였다.

“자, 하예나 씨.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을 찾으러 오셨다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우리가 찾는 사람은 얼굴 없는 가수로 유명한 가수 서울입니다.”
가수 서울이라는 말에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한 예나가 입을 열었다.
“가수 서울을 찾으러 왔다고요...?”
“전 KBC 기자 서한빛이라고 합니다. 얼굴 없는 가수 서울의 정체를 밝히려고 눈에 쌍심지 킨 한국의 언론사들 보다 먼저 가수 한빛을 찾기 위해서 이곳으로 찾아온 겁니다. 방금 전부터 저희가 왼쪽 손등에 흉터가 있는 사람을 찾은 이유는 가수 서울의 왼쪽 손등에 선명한 흉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가수 서울의 노래 영상을 자주 보는데, 문신은 없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하예나 씨, 손등의 그 나비 문신은 언제 하신 겁니까?”
태형의 질문에 예나는 서슴없이 답했다.
“부모님의 반대로 못하고 있다가 한 이주일 전 쯤 겨우 허락을 받고 했어요.”
예나의 답변을 들은 태형은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짓고서는 말했다.

“가수 서울의 영상이 안 올라온지가 한 이주일 정도가 되었던데, 혹시 그 나비 문신 때문에 안 올리신 겁니까?”
태형의 말에 두 눈이 동그래진 예나는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설마 지금 제가 가수 서울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말이 안 될 것도 없죠. 요즘 가수 서울을 찾는다고 떠들썩한데, 그 흉터로 자신을 찾아낼까 봐 문신을 새긴 일 수도 있잖아요.”
태형의 말에 기가 찬 예나가 앉고 있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나비 문신은 정말로 흉터가 보기 싫어서 한 거 뿐이고, 전 가수 서울이랑 아무 관련이 없어요.”
“만약에 정말로 가수 서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음성 확인 검사를 해주시겠습니까?”
“제가 왜 그런 검사를 해야 하는 거죠?”
조금 화가 나 보이는 예나를 진정 시키려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한빛이 입을 열었다.
“저희의 말이 좀 거칠었다면 사과를 드리고 싶어요. 이 분이 다름이 아니라 탐정이라서 이러는 거니까, 예나 씨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탐정이라는 말에 물론 예나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였다. 한빛은 계속해서 자신이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
“탐정이 원래 추리를 해서 사람을 찾는 걸 예나 씨도 잘 아시겠죠? 그래서 거침없이 말하는 거니까, 기분 나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가수 서울이 자신을 들어내지 않는 대에는 무슨 사정이 있겠죠. 그래서 저희는 가수 서울을 찾아서 인터뷰를 하려고 해요. 세상에 자신을 밝히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고 얼굴이 안 나오게 한 기사를 낼 생각이에요. 그러면 다시는 가수 서울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눈에 쌍심지를 키고 달려드는 기자들이 없을 거예요. 제발 도와주세요.”
한빛에 말에는 진심이 담겨져 있었다. 남을 그냥 설득하려는 거짓된 말이 아닌 진심이 가득 담긴 말.
이 말은 태형에게도 안 말이지만, 한빛이 가수 서울을 찾으려고 하는 이유는 예나한테 한 말이 사실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싫어하는 한빛이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은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한빛의 진심 어린 말에 마음이 흔들린 예나는 생각을 해보겠다고 한다. 예나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한빛에게 주고 한빛은 예나에게 자신의 번호를 주었다.
“예나 씨 연락 기다릴게요.”
가벼운 인사를 건넨 예나는 강의실에서 나갔다. 예나가 나간 뒤, 태형과 한빛만 남게 된다.
“하아... 저 말 실수한 거 맞는 거죠?”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태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빛에게 물었다.
“네. 이번에는 태형 씨가 좀 심했어요. 태형 씨는 착하고 따뜻한 분 같은데, 일만 하면 추리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커지는 것 같아요.”
잠시 말을 멈춘 한빛은 다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태형 씨도 알다싶이 한국은 아직 탐정이라는 직업이 생소한 나라에요. 소설에서만 읽었던 탐정이 현실에서는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 느낌대로 추리한 것을 바로 말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하시다가 정리해서 좋게 말하는 건 어떨까요?”
한빛은 정말로 속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항상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짧은 말 한마디라도 늘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말했다. 혹시 내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지 않을까, 말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으니, 말을 할때에는 언제나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했다.
태형은 자신을 생각해주는 한빛의 진심이 담긴 조언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면서 대답하였다.

“한빛 씨 말대로 그래야겠어요. 저도 모르게 일에 몰두를 하면 사람의 마음은 생각을 안하고 막 내뱉는 나쁜 습관이 생겼더라고요. 고마워요, 한빛 씨.”
순수한 미소를 보인 태형에 한빛은 자신도 모르게 같이 웃어주었다.
태형에게는 사람을 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탐정이라는 직업으로 일을 할 때에는 조금 무서워 보일지는 몰라도 살기 힘든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진짜로 순수 그 자체의 사람이었다. 한빛의 조언을 솔직하게 받아드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태형은 다른 누군가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자신에게 자신감이 넘치고,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쉽게 눈물을 흘린다. 그만큼 그는 순수하고 좋은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