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형 씨...!괜찮아요?”
“한빛 씨...어떡해요...? 김풀잎 씨가 거절했어요...저희한테 남은 마지막 희망인데...”
태형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빛을 바라보았다.그런 태형한테 이런 시련을 주게 한 사람이 자신이라서 한빛은 너무나도 미안했다.그래서 한빛은 태형을 자신의 품에 안았다.자신이 태형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했다.
“태형씨는 꼭 가수 서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너무 속상해 하지 말아요.우리 꼭 김풀잎 씨를 설득할 수 있을 거예요"
한빛의 품에 한참을 안겨있던 태형은 이대로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 먹으면서 풀잎한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받는 사람2013년 10월 6일 13분
안녕하세요,김풀잎 씨.방금 통화했었던 탐정 김태형이라고 합니다.김풀잎 씨가 음성 확인 검사를 거절하셨지만,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서 이렇게 문자 남김니다.이주일 동안 가수 서울을 정말로 열심히 찾았습니다.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싫어하는 가수 서울의 진짜 이유를 물어보고 얼굴이 안 나오게 인터뷰를 해서 한국의 모든 언론에 뿌릴 생각입니다.그래야 다시는 가수 서울을 찾겠다고 눈에 쌈심지를 켜지는 않을 겁니다.김풀잎 씨가 가수 서울이든 아니든 김풀잎 씨의 음성 확인 검사가 필요합니다.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김풀잎 씨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장문의 문자를 풀잎에게 보낸 태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제발 김풀잎 씨한테 답장이 와야 할텐데..."
"태형 씨의 진심이 김풀잎 씨한테 전해졌을 거예요.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
한빛의 말에 태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여전히 풀잎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시간을 허무하게 보낼 수 없는 태형은 가수 서울이 드라마 OST를 불렀던 회사도 찾아가 보고 했었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프로듀서님도 가수 서울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했다. 가수 서울의 매니저와 은밀하게 노래를 주고 받았다고 하셨다. 매니저랑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거래하는 특급 비밀이라서 알려줄 수 없다 해서 결국에 태형은 아무런 성과 없이 사무소로 돌아왔다.
"휴우..."
탐정이 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찾아봐 왔지만,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은 태형에게 가수 서울이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으로써는 풀잎의 연락이 그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하지만 큰 문제는 만약에 풀잎이 음성 확인 검사를 허락하고 했다고 해도 가수 서울이 아니라면 더는 서울을 찾을 실마리가 없었다. 한빛에게 꼭 가수 서울을 찾아주고 싶은데,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하기 싫었다.

한빛도 태형과 같은 마음으로 풀잎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무슨 고민 있죠?"
"이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다 고민 하나씩 안고 살아가는 거지."
한빛의 말에 공감이 된 정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누나 말이 맞네요. 고민이 없다는 사람은 고민이 없는 게 아니라 숨기는 거겠죠."
"그런데 나랑 이렇게 말 나누고 있어도 괜찮은 거야? 지금 시기면 일이 넘쳐 날 텐데."
"안 그래도 회사에 안 들어오는 어떤 한 사람 때문에 일이 산더미네요."
일부러 한빛의 양심이 찔리게 말하는 정국이다. 그에 장난스러운 말투로 한빛은 말한다.
"그래, 내가 대역죄인이네요. 미안합니다, 정국 기자님"
"하나도 안 미안한 말투인데요?"
"진짜로 네가 없었으면 난 정말로 기자를 그만두었을지도 몰라. 항상 고맙고 미안해. 내 마음 알지?"
"제가 선배한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인데, 왜 제 마음은 안 받아주시는 건데요?"
정국은 한빛과 같은 회사에 같이 일한 지도 어느새 4년이 되었다. 그만큼 한빛은 정국을 많이 아꼈고 정말로 좋아하는 동생이자 후배였지만, 그 이상 그 이하는 아니였다. 정국에게 한빛은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한빛은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내색 하나 안 하고, 딱딱해 보이지만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챙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한빛을 4년 동안 혼자서 마음에 품고만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일부러 선배가 아닌 누나라고 부르면서 티를 냈었는데, 한빛은 그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었다.
"정국아, 넌 정말로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나는 너의 아픔과 상처들을 안아줄 수 없어. 너는 나 말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한빛은 최대한 정국이 상처를 받지 않게 말을 돌리면서 거절했다.
"선배는 끝까지 제 마음을 상처 주시네요."
정국은 잠시 침묵을 했다가 말을 이어갔다.

"전 선배가 싫은 건 하기 싫어요. 제 마음을 쉽게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천천히 정리 해보도록 할게요. 오늘 일 때문에 선배가 저를 불편해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남긴 정국은 한빛에게 등을 돌리고는 걸어갔다. 정국의 그 뒷모습은 정말로 쓸쓸해 보였다.
